금방 타오르고 식어버리는 나를 바꾸기 위한, 몸과 마음의 경작 일지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늘 냄비 같은 사람이었다.
무언가를 시작하면 불같이 타올랐다가도,
순식간에 재만 남기고 꺼져버리기 일쑤였다.
번아웃은 예고 없이 찾아왔고,
열정은 끈기가 되지 못한 채 증발했다.
인간관계도 그랬다.
누군가를 좋아할 때는
세상 전부를 줄 것처럼 굴다가도,
어느 순간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리는
내 모습이 낯설고 싫었다.
사람을, 일을, 취미를
깊게 애정하지 못하고 겉돌다 끝나는 기분.
그 얄팍함이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특히 아이들의 눈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초등학교 교사로서 이런 나의 기질은
늘 마음 한구석의 짐이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순간의 열정이 아니라,
꾸준하고 은은한 온기일 텐데.
나는 왜 다정함을 오래 품지 못할까.
내 사주가 재성과다의 '기토(己土)'라서,
물기가 많고 화(火)기가 없는
축축한 흙이라서 그런 걸까?
탓을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타고난 게 그래서'라는
핑계 뒤에 숨고 싶지는 않았다.
해답은 의외의 곳에서 찾았다.
뇌과학과 미생물학을 공부하며
나는 충격적인 사실을 마주했다.
인간의 몸은 단일한 개체가 아니라,
30조 개의 인간 세포와 그보다 더 많은
38조 마리의 미생물이 공존하는
거대한 군집이라는 사실.
더 놀라운 건, 내가 느끼는 기분, 충동,
심지어 '의지력'이라고 믿었던 것들조차
뱃속 미생물이 뇌로 보내는
화학 신호에 좌우된다는 것이었다.
행복 호르몬으로 흔히 알려진
세로토닌의 95%가 뇌가 아닌 장에서 만들어진다니.
결국 내가 금방 지치고 관계에 냉소적이게 되는 건,
내 의지가 나약해서가 아니라
내 몸이라는 '토양'이 척박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축축하고 냉한 늪지대에서 밝고 따뜻한
꽃이 피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 아니었을까?
땅을 갈아엎지 않고
씨앗만 탓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의 의지를 탓하는 것을 멈추기로.
대신 나의 '시스템'을 바꾸기로.
나는 나를 통제해야 할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하고 가꿔야 할 하나의
'생태계(Ecosystem)'로 다시 규정했다.
그리고 이 축축한 땅을
처음부터 다시 갈아엎어 보기로 했다.
목표는 뚜렷했다.
더 다정하고 따뜻한 애정을,
아주 깊고 오래 가져가는 사람이 되는 것.
나의 '식어버림'과 '불안'은 뇌과학적으로 보면
편도체의 과민 반응이었고,
전전두피질의 지구력 부족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요동의 근원이 단순히 뇌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신경과학 연구에서 밝혀지듯이,
우리의 장(Gut)과 뇌(Brain)는
미주신경을 통해 끊임없이 소통하는
'장뇌축(Gut-Brain Axis)'으로 연결되어 있다.
장내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수많은 신경전달물질과 부산물은
뇌의 기능과 우리의 기분, 감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장(Gut)이 차갑고 예민하니
뇌(Brain)도 함께 요동쳤던 것이다.
실제로 명리학 관점에서 사주(四柱)를 통해
오장육부의 건강을 이해할 수 있는데,
나는 물(水)은 많고 불(火)은 부족한
'기토(己土)'일간으로 태어났다.
이는 내 장(토 기운)이 본래 차고 습하여
건강하게 기능하기 어려운 기질을 가졌다는 의미였다.
따라서 축축하고 냉한 기토의 기운을 가진 나에게는
장에 따뜻한 화기(火氣)를 불어넣어
미생물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
곧 정서적 안정의 핵심이었다.
결국 내 감정의 기복과 불안을 잡기 위한 핵심은
뇌를 직접 다루는 것을 넘어,
38조 마리의 미생물이 사는 장이라는
거대한 생태계를 먼저 안정화하는 데 있었다.
나는 30조 개의 세포와 38조 마리의 미생물이 사는
이 거대한 우주를 다시 설계하기로 했다.
이것은 단순한 건강 관리가 아니라, 내 삶을 뚫어내고
정신적인 회복탄력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투쟁이다.
나는 매일 정해진 시간, 내 몸이라는
토양에 비료를 주고 햇볕을 쬐인다.
섭취
:따뜻한 물 한 컵 + 천일염 한 꼬집, 종류가 다른 유산균 2알
잠든 사이 소실된 수분과 미네랄을 보충하고(천일염),
장 활동을 부드럽게 깨운다.
이어서 내 몸에 잘 맞는 유익균을 투입해
장 건강의 기초를 단단하게 다지는 하루의 시작이다.
(따뜻한 소금물은 장 활동을 깨우고
수분 흡수를 돕는 데 도움이 된다.)
섭취: 생강농축액, 홍삼진액, 레몬즙을 함께 넣은 따뜻한 차
습하고 찬 기운이 강한 기토(己土) 체질에는
습기를 제거하는 생강과
양기(陽氣)를 보충하는 홍삼이 최고의 궁합이다.
따뜻한 온기(생강, 홍삼)에
신선한 활력(레몬즙)을 더해 균형을 맞춘다.
출근 후 2시간 동안 천천히 마시며 활력을 더한다.
이 따뜻한 차로 몸 안 깊숙이 온기를 유지하며
하루를 시작할 마음의 여유를 만든다.
(※혈당 관리를 위해 기존의 꿀은 제외하고
레몬즙만 첨가. 생강농축액과 홍삼진액도
기타 첨가물이 없는 100% 제품을 넣는 것이 포인트.)
섭취: 동결건조 청국장 20알
텅 빈 위장에 동결건조 청국장 20알을
꼭꼭 씹어 따뜻한 차와 함께 삼킨다.
이 작은 균들이 내 장에서
세로토닌을 부지런히 만들어내길 바라면서.
왜 하필 청국장이냐고?
낫토도 있지 않냐고? 물론 낫토도 좋지만,
청국장이 한 수 위다.
균 하나만 배양한 낫토보다, 자연 발효된 청국장 속에
훨씬 다양한 유익균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위산에도 끄떡없고 장 끝까지 살아간다.
하지만 아무리 좋아도
매일 냄비에 찌개를 끓여 먹을 순 없는 노릇.
그래서 '동결건조'를 택했다.
동결건조 제품은 생청국장을 그대로 얼려 말린 거다.
균은 대부분 그대로 살아있고 과자처럼 편하게 먹을 수 있다.
일본 와사비 과자 비슷한 식감에 은은한 청국장 향이 난다.
쉬는 시간에 이걸 오독오독 씹고 있으면
아이들이 참새같이 몰려온다.
청국장이라 냄새난다고 피할 것 같지만,
역한 냄새 없이 고소한 과자 같아서인지
"선생님, 저도 주세요" 하며 손을 내민다.
심지어 받아먹고는 맛있다며 또 달라고 보챈다.
(2학년 아이들인데 이걸 좋아해서 내심 놀랐고,
청국장을 맛있게 먹는 모습이 귀여워서 기특하기도 했다.)
아이들 입에 조금씩 더 넣어주고,
내 입에도 툭 털어 넣는다.
이 질긴 균들이 척박한 내 뱃속 깊이 들어가
튼튼한 뿌리가 되어주기를.
그래서 내 마음이, 내 하루가 조금 더 단단해지기를.
그런데 최근, 꽤 큰 시행착오를 하나 겪었다.
장내 미생물을 챙기겠답시고
아침, 점심, 저녁 매 끼니마다
김치와 청국장을 크게 한 주먹씩 먹어댔더니
(덕분에 급식소 영양 선생님은 날 김치맨이라고 부른다^^;)
밤에 도통 잠이 오질 않는 거다.
몸은 피곤해 죽겠는데 뇌만 말똥말똥한 고문같은 밤들.
알고 보니 문제는 '과유불급'에 있었다.
발효 음식 속의 '티라민'과 '히스타민' 성분이
뇌를 각성시킨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과하고,
또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독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전략을 수정했다.
"청국장과 김치는 해가 떠 있는 점심까지만."
여기에 나름의 안전장치(?)도 하나 더했다.
식후 루틴에 히스타민 분해를 돕는 비타민 C와,
티라민 분해를 돕는 비타민 B2를 추가한 것이다.
결과는 정말 놀라웠다.
먹는 시간을 조절하고
분해 효소만 조금 보충해 줬을 뿐인데,
밤에 거짓말처럼 다시 잠이 쏟아지는 거다.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내 몸을 상대로 한 이 생체 실험(?)이
비로소 정답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깊은 안도감이 들었다.
여기에 최근 깨달은 또 하나의 중요한 습관이 있다.
바로 '천천히 먹는 것'이다.
단순히 소화를 돕는다는 차원을 넘어,
숟가락을 내려놓고 의식적으로
음식의 맛과 질감에 집중하며
식사하는 시간을 20분 이상 확보했더니,
다음과 같은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감정적인 평안함: 급하게 먹는 습관이
심리적 불안을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였음을 깨달았다.
아직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지만,
천천히 씹는 행위 자체가
부교감신경을 활성화시켜
식사 중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듯 하다.
*과식 방지: 뇌가 포만감을 인식하는 데
걸리는 20분의 시간을 확보하여
자연스럽게 과식을 막아주었다.
*속의 편안함: 소화 부담이 줄었고 몸이
훨씬 가벼워져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데 수월해졌다.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아서인지 식사 후에도
멍하거나 무겁지 않고 머리가 맑아졌다.
그 덕분에 일을 할 때나, 책을 읽는 시간도
훨씬 편안해지고 집중이 잘 된다.
결국 '무엇을 먹는가'뿐만 아니라 '어떻게 먹는가'가
이렇게까지 전반적인 컨디션을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했다.
존2(Zone 2) 트레이닝 40분.
숨이 찰 듯 말 듯, 40분을 달린다.
좀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것은 단순한 유산소가 아니라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시간이다.
쉽게 지치고 포기하던 뇌를,
끈기 있고 단단한 뇌로 다시 짓는다.
김주환 교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회복탄력성'이라는 마음의 근육을 단련한다.
회복탄력성의 핵심은
뇌의 감정 조절 시스템의 균형, 즉 편도체와
mPFC(내측 전전두피질)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데 있다.
*정서적 동요를 관리하는 훈련 (편도체 진정)
Zone 2는 신체가 과부하되지 않는 가장 안정적인 유산소 상태다. 규칙적인 심장 박동과 호흡이 편도체에게 신호를 보낸다. "지금은 안전하다. 안정되어도 괜찮다." 매일 이 속도를 유지함으로써, 나는 일상 속의 작은 불안과 스트레스에 무디게 반응하도록 편도체를 길들인다.
*충동 조절 능력 강화 (mPFC 활성화)
편도체가 진정되는 동안, mPFC가 조용히 활성화된다. mPFC는 이성적인 판단과 충동을 조절하는 뇌의 컨트롤 타워다. Zone 2를 통해 편도체를 다독이고 mPFC로 가는 혈류를 늘려주면, 합리적인 판단 능력이 힘을 얻는다. 즉, mPFC가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키우는 것이다.
식단: 시래기 된장국 or 미역, 다시마 볶음 or 토마토 양배추 양파 볶음 등의 항산화 식단
시래기는 불용성 식이섬유가 많아 장의 물리적인 움직임(연동 운동)을 활발하게 돕는다. 해조류는 끈끈한 알긴산 같은 수용성 식이섬유 덩어리로, 유익균이 가장 좋아하는 발효성 먹이가 되어준다. 시래기와 해조류를 적절히 섞어야 내 뱃속 미생물 생태계가 풍요로워진다. 내 뱃속 미생물들이 이 거친 먹이를 배불리 먹고 나면, 단쇄지방산 같은 유익한 물질을 뿜어낸다. 그게 결국 내 뇌를 보호하고, 나를 차분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섭취: 마그네슘 1알
의도: 저녁 식사에서 발효 식품을 빼고 나니
확실히 잠들기는 편해졌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기절하듯' 깊게 자고 싶었다.
예전에 만났던 애인 생각이 났다.
건강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든 그 사람은,
다른 것은 몰라도
마그네슘과 비타민 D는 꼭 챙기라고 말했었다.
마그네슘 종류를 이것저것 찾아보고
좋다는 건 다 먹어봤다.
흡수율이 높다는 글리시네이트,
뇌에 좋다는 L-트리오네이트도
직구해서 먹어봤지만 내겐 별 효과가 없었다.
가만 생각해 보니, 예전에 그 사람이 줬던
투박하고 단단한 알약 형태를 먹었을 때
유독 잠을 푹 잤던 기억이 있었다.
제품명이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고민 끝에 폰을 들었다.
염치 불고하고 문자를 보냈다.
"잘 지내? 이런 일로 다시 연락해서 미안.
혹시 예전에 네가 챙겨주던 마그네슘 제품명 기억나?
단단한 제형이었는데."
다행히 바로 답장이 왔다.
"아 그거, OOOO."
바로 사서 자기 전에 먹어봤다.
신기하게도 그날 밤,
거짓말처럼 평소보다 훨씬 잠에 쉽게 들었다.
비싸고 유명한 성분보다,
내 몸에 맞는 건 따로 있었나 보다.
이 모든 루틴이 다소 과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 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안 지켜지는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이것은
단순히 몸을 관리하는 행위를 넘어선다.
내가 원하는 삶의 태도를 위한
기반을 다지는 일이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내가 이 기반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불안한 편도체가 나를 휘두르지 않도록,
차분하고 객관적인 전전두피질로 상황을 판단하는 힘을 기르는 것.
장내 미생물의 긍정적인 신호로, 아이들과 타인에게
한 번 더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여유를 만드는 것.
만약 타고난 기질이 차갑다면,
나는 스스로 장작을 패고 불을 지펴서라도
기어이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은 내게 주어진 몸이라는 토양을 갈아엎고,
비료를 뿌리고, 씨앗을 심어,
결국엔 내가 원하는 '더 괜찮은 나'라는
열매를 맺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경작(耕作)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회복탄력성,
지금의 내 삶과 앞으로 내게 주어질 삶을
건강하게 통과하기 위해 내가 꼭 갖고 싶은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 몸이라는 생태계를 돌본다.
그리고 이 생태계가 건강해질수록
내 스스로가 나와, 타인과, 세상을 향해
더 단단하고 따뜻하게 나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몸이라는 토양을
갈아엎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아무리 비옥한 땅이라도
태풍은 불고, 가뭄은 찾아온다.
외부의 자극에 뿌리가 뽑히지 않으려면,
땅을 붙들어줄 더 깊은 정신의 뿌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명상(알아차림)을 통해나를 객관화하고,
기도를 통해 삶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심리적, 영적 경작을 병행한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나 역시 내가 가진 기질을
바꿀 수 없을 거라 체념했었다.
하지만 뇌과학과 명상은
내게 전혀 다른 답을 내놓았다.
"나를 바꿀 수 있다. 왜냐하면 나는 하나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을
나 자신과 동일시한다.
'나는 화가 났다, 나는 불안하다'고 말이다.
하지만 김주환 교수님의 가르침처럼,
우리 내면에는 감정을 느끼는 경험 자아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감정을 한 발짝 떨어져서 지켜보는
'배경 자아(Background Self)'가 존재한다.
즉 뇌과학적으로 '나'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다.
무대 위에서 날뛰는
감정이라는 배우(경험 자아)가 있다면,
객석 어둠 속에 앉아
그 연극을 조용히 지켜보는 관객(배경 자아)이 있다.
명상은 바로 이 배경 자아를 깨우는 훈련이다.
변화는,
내가 나의 감정과 분리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불안해하는 나를 배경 자아가 인지하는 순간,
나는 불안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대신
불안을 강가에 서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분리가 가능해질 때, 비로소 나는
나의 뇌와 감정을 경작할 주도권을 쥐게 된다.
이것이 내가 나를 바꿀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명상이 나를 객관적으로 분리해 내는
이성의 훈련이라면,
기도는 천주교 신자로서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절대자에게 기대는 영적인 안식이다.
아무리 내 몸을 잘 가꾸고 마음을 다스려도,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삶의 파도들이 있다.
그때 기도는 나의 오만을 꺾고,
삶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가장 낮은 자세다.
나의 수확물이 온전히 내 노력만의
결과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햇볕과 비를 주신 것에 감사하듯,
내게 주어진 건강, 일, 사람들,
그리고 오늘 하루가
당연한 것이 아님을 고백하며
삶 앞에 겸손해진다.
흔들리는 냄비처럼 요동치던 내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힘들 때마다 찾아가 엎드릴 수 있는
믿음의 대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도는 나의 불안을 맡기고,
다시 타인을 사랑할 힘을 회복하는
내 삶의 조용한 의지처다.
명상으로 나를 명료하게 바라보고,
기도로 삶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
이 두 가지 마음의 농법은
육체의 건강과 어우러져,
내가 척박한 기토의 땅을 뚫고 단단하게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생명력이 되어준다.
(다음 글은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저의 아버지와 가부장제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