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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원 Sep 04. 2021

내가 코로나19 직후에 퇴사한 이유

2020년 6월 30일,

마지막으로 다녔던 회사에서 퇴사했다.

직장의 4대 보험에 가입한 지 7년 만이었고, 글로벌 팬데믹이 선언된 지 3개월 만이었다.


마지막 회사에서도 많은 걸 배웠다.


2019년, 스타트업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싶어 안정적인 대기업 직장인의 커리어를 내려놓고

초기 스타트업에서 잡부로 일을 시작했고, 많은 리스크를 짊어진 덕에 배운 것도 많았다.


프로세스와 템플릿, '전에 하던 방식'이 없는 상황에서 첫 실행을 어떻게 하는지 알게 되었고,

아주 적은 회사의 가용 자원을 가지고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도 경험했다.

투자자에게 우리 기업에 가치가 있음을 어떻게 증명하고 설득해야 하는지도 배웠다.

창업을 꿈꾸는 입장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고 일찍 넘어오기를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진짜 큰 게 왔다.


2020년 1월, 국내에도 첫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누구에게나 예상치 못한 리스크였고, 진짜 검은색 백조가 등장했다.

2020년 3월 글로벌 판데믹이 선언된 후부터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씬에도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

앞으로도 잘 나갈 것이라고 기대했던 기업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앞으로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던 목표를 1년 만에 달성하는 기업들도 생겨났다.


이 변화는 바로 6개월 전에 스타트업에서의 새 출발을 선택한 나에게도 찾아왔는데,

이직 당시 세웠던 계획과 앞으로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것들은 모두 물거품이 되었고

마음속으로 목표로 했던 2년 후 홀로서기 플랜도 무기한 연장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매일 생각이 바뀌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기업에서 더 자금을 모으고 스타트업으로 넘어올 걸...'

'지금 터져서 차라리 잘됐다. 이런 일이 터졌으면 절대 이 씬으로 못 넘어왔을 거야'


나는 나 자신을 낙관적으로 바라봐야 할까, 비관적으로 바라봐야 할까.

평소에도 생각이 많지만, 당시에는 정말 생각이 많았다.



문제는 시간과 타이밍


정말로 어려웠던 문제는 과거의 선택이 옳았는지 여부가 아니라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였다.


코로나19라는 변수가 등장한 시점에서

지금 이 순간이 진짜 변곡점을 만들어낼 수 있는 황금 같은 타이밍인지,

아니면 시간을 보내며 적절한 시점과 기회를 노려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게 어려웠다.


낙관적으로 보면 세상에서 이만한 사이즈의 변화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로 없었다.

지금 다이빙을 하면 어느 바닥에서든 어떤 식으로든 변화에 가장 먼저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관적으로 보면 지금 어설픈 퇴사를 했다가는 일자리를 다시 찾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수많은 중소기업들과 여행, 항공 업체가 도산하고 있던 가운데 퇴사는 미친 짓으로 보였다.


겁이 많은 나는 그전에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다니면 배울 게 많지 않을까?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는 기다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고민도 잠시, 자금 상황이 흔들리던 회사에서 사업 기획을 하며 자금을 조달하는 업무에만 몰두했다.

한 달 동안 야근과 특근은 밥먹듯이 했고, 사업계획서만 10부는 썼던 것 같다.

다행히 자금 조달에도 어느 정도 성공했고 정말 숨 막혔던 재정적인 압박도 숨통이 조금 트였다.


그리고 나니 이제야 정신이 들었다.

어차피 돈 없고, 자금 조달하고, 사업을 기획할 거면

내 사업을 새로 시작하지 않고 지금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 한 번 더 도전


결국은 퇴사를 했다.


사업을 할 수 있는 충분한 돈도 없고, 함께 할 사람도 없고, 아이템도 없었지만

우선은 코로나19라는 변화에 몸을 담그기로 했다.

아주 조금이라도 기대했던 드라마 같은 성공과 기회는 현실에 당연히 없었다.

연말까지는 성과라고 부를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고

사업 아이템도 지금까지 세 번이나 바뀌었다.


그래도 막상 회사를 나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시작하게 되었고

올해 초에는 좋은 기회로 어느 기업과 일을 하게 되어 처음으로 사업자등록도 했다.

지금 시작한 아이템은 첫 달부터 매출도 생겼고 정부지원금도 받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이제 어지간한 변화는 무섭지 않다.

세상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정말 많고,

나도 어느 정도는 내려놓은 것 같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하루하루가 나름 재미있기도 하다.

코로나19 사태와 판데믹 이후로 자의든 타의든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모든 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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