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3개월 간의 교환 생활
처음 런던에 도착했을 때는 되지도 않는 센치함에 빠져있었다. 이방인이 된 느낌을 향유하고 싶었다. 근데 그건 내 의지대로 되지 않더라.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 평온한 상태가 유지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항상 느꼈듯이 그렇지가 않다. 다들 바삐 움직인다. 남아있는 건 나 혼자고, 결국은 휩쓸린다.
런던에 있는 내 집은 다른 5명의 사람과 집을 공유하는 형태였는데, 내 방은 이 층 오른쪽 방이었다. 방에 처음 들어간 그 날이 기억난다. 나는 그날 혼자 비행기를 타고 런던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아갔을 때는 해가 진 밤이었다. 그때 시간이 늦은 밤이었는지, 단지 겨울이었기 때문에 해가 일찍 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의 런던은 오후 5시만 되어도 한밤중인 것처럼 까맸으니까.
그래도 그때의 기분은 생생히 기억난다. 힘들 게 어둠이 짙게 깔린 단지를 헤매다 찾아간 집에서는 아늑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으로 마주한 내 방은 벽도, 창틀도, 옷장도, 침대 매트리스도 온통 하얬고, 칠이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옷장과 침대뿐이던 내 방은 그것도 이불 한보 없이 매트리스만 덩그러니 놓여있어서 더욱 춥고 쓸쓸했다. 그렇게 첫날 밤 아무것도 챙겨오지 못한 나는 옆방 언니 방에서 신세를 졌다. 방 구할 때 한번 만난 사이인데도 이렇게 의지해야 한다는 게 조금 서러웠다.
유럽의 겨울은 너무 길고, 어둡고, 쓸쓸하다. 잠깐의 생활이었지만 나는 왜 유럽사람들이 실내장식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럽은, 특히 겨울에는 밖에 있는 시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길다. 밖에 24시간 편의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웬만하면 다들 집에 일찍 들어가고, 해가 져 있는 시간도 아주 기니까. 그런 상황에서 집이 이렇게 하얀 정신 병동 같으면 아주 미치겠는 거다. 그래서 나도 부족하지만 두 번째 런던 나들이 날에 방을 꾸밀 것들을 조금 찾아봤다. 내셔널갤러리에서 너무 귀여운 선물 포장지 두 장을 사서 하나는 침대 머리맡에 하는 발 쪽에 붙였다. 선물 포장지 두 개를 붙인 것뿐인데 방이 확 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집에 정을 붙여갔다.
내가 런던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해가 낮은 런던의 오후 해가 비치는 창가에 누워서 나무 위의 비둘기와 그 밑의 청솔모에게 인사하고, 데운 우유에 우려낸 밀크티를 홀짝거리며 책을 읽었던 날이다.
나는 평소에 집에서 이렇게 행복함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다. 이날 내가 누워서 밀크티를 마시는 데에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아직은 런던이 낯선 여행지이고, 조금은 그곳이 내 집이라는 생각에 적응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내 집이라서 편했고, 아직은 낯설어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