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근불가원,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끔 인간관계를 맺으라는 뜻으로 쓰이는 고사성어입니다. 사람 간의 문제는 대개 관계의 거리 때문에 일어나곤 합니다. 거리를 멀리하면 산뜻하고 피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실하고 끈끈한 우정은 갖기 힘듭니다. 반대로 사람 간에 적당한 틈이 없으면 숨 막힙니다. 부부나 부모 자식 같은 가까운 관계에서도 서로의 경계를 침범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사랑한다는 이유로 쉽게 나와 다른 사람 간의 경계선을 허물어 버립니다. 상대가 나와 다른 타인임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사랑과 우정은 집착의 다른 이름이 되기도 합니다. 영화 ‘노트 온 스캔들(2006)’은 ‘선’을 넘은 한 여성의 망상이 자신과 타인의 삶을 파국으로 몰아넣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정년퇴직을 코앞에 둔 바바라(주디 덴치)가 런던의 언덕 위에 놓인 벤치에서 독백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다른 이들은 늘 내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내 비밀은 누구에게 말하지?’ 바바라가 비밀을 고백하는 상대는 그녀의 일기장입니다. 관객은 그녀의 일기장을 통해 그녀의 마음을 훔쳐보는 듯한 기분을 느낍니다. 바바라는 다른 이들의 삶을 관찰하고, 관객은 바바라의 눈을 통해 우회적으로 타인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이 이중 장치는 관객에게 바바라의 관음증에 동참하는 기묘한 기분을 맛보게 합니다. 바바라의 책장은 매일 적어온 일기장들로 빼곡합니다. 특별한 날, 바바라는 별 모양의 스티커로 일기장을 장식합니다. 일기장은 믿음직한 친구입니다. 바바라의 비밀을 발설하지도 단죄하지도 않습니다. 누군가 일기장을 훔쳐보기 전까지는.
바바라는 홀로 늙어가는 깐깐한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냉철하지만 현명하고 직설적인 그녀는 상담가 역할로 제격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합니다. 하지만 냉소적이고 불퉁스러운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루한 학교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가 나타납니다. 미술 교사 쉬바 하트(케이트 블란쳇)가 부임한 것입니다. 금발에 푸른 눈, 늘씬한 몸매를 가진 그녀에게 교사와 학생들 모두 반합니다. 쉬바는 아름다울 뿐 아니라, 따뜻한 성품과 묘한 매력을 지녔습니다. 바바라 역시 쉬바에게 매료됩니다. 순진하고 선량한 쉬바는 자신이 지닌 아름다움이란 권력을 이용할 줄 모릅니다.
바바라는 혈기 왕성한 남학생들을 다루느라 힘겨운 쉬바를 돕습니다. 그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가까워집니다. 쉬바가 바바라를 집에 초대하자 바바라는 가슴이 뜁니다. 바바라는 멋대로 쉬바의 가족들에 대해 상상합니다. 전문직 남편과 아이들로 구성된 완벽한 가족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쉬바의 가족은 바바라의 기대를 저버립니다. 쉬바는 아버지뻘로 보이는 나이 많은 남편과 살고 있습니다. 사춘기 딸아이는 버르장머리 없고, 아들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쉬바는 자기를 가르치던 교수와 결혼한 이야기며, 다운증후군 아들을 기르느라 힘들었던 시간에 대해 바바라에게 고백합니다. 그런 고백이 이후에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합니다.
영화는 줄곧 바바라의 시선으로 쉬바의 일상을 좇습니다. 이제 쉬바와 친해지는 일은 바바라의 삶의 유일한 목적으로 보입니다. 바바라는 우연히 쉬바가 한 남학생과 성행위를 하는 장면을 목격합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던 바바라의 진짜 ‘비밀’에 대해 알게 된 것입니다. 바바라는 쉬바를 질타하지만, 그들의 관계를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합니다. 바바라의 결정은 일견 온정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 간의 권력관계는 역전됩니다. 비밀이란 늘 고백하는 이의 약점을 내포하고 있기 마련이니까요.
처음부터 쉬바가 제자 스티븐에게 끌렸던 것은 아닙니다. 미술에 소질이 있는 스티븐을 이끌어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쉬바는 스티븐이 자신에 대해 다른 감정을 품고 있음을 알았지만, 내버려 두면서 적당히 즐깁니다. 아버지에게 학대받는다는 스티븐의 말은 그녀의 연민을 끌어냅니다. 육아와 가정생활로 지친 쉬바는 어린 제자의 유혹에 넘어가고 맙니다. 선생과 학생이라는 관계가 지닌 금단의 매력은 그들을 더욱 불타오르게 합니다. 쉬바가 지닌 직업윤리와 남편에 대한 정절은 쉽게 무너집니다. 쉬바는 바바라의 충고에 따라 스티븐과의 관계를 정리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미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그들의 욕망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습니다.
한편 바바라는 쉬바의 결혼생활이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단정합니다. 늙다리 남편과 장애가 있는 아들, 버릇없는 딸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바바라는 쉬바에게 딱 맞는 영혼의 동반자가 자신이라는 망상에 이르게 됩니다. 바바라는 차츰차츰 쉬바의 생활에 스며듭니다. 쉬바는 점차 그들의 관계를 특별하게 여기는 바바라의 언행에 부담을 느끼게 됩니다. 바바라는 우연히 쉬바와 스티븐이 계속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바라는 차갑게 그녀에게 말합니다. “스티븐은 결혼 문제가 있는 중산층 여자의 욕망을 건드렸을 뿐이야. 그 영악한 아이는 실컷 즐겨놓고 너를 버릴 거야. 너는 젊지 않아.”
바바라의 말에 스티븐의 집을 찾아간 쉬바. 과연 아버지에게 학대받는다는 이야기는 쉬바의 관심을 받으려는 거짓말이었습니다. 선생님을 좋아하지만 쿨한 관계로 남고 싶다는 스티븐의 ‘선’ 긋는 말에 쉬바는 눈물을 흘립니다. 바바라는 실연의 상처를 입은 쉬바를 다독입니다. 하지만 바바라의 속내는 쉬바와 더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이제 바바라는 쉬바와 어디든 함께입니다. 바바라의 일기장에 별 모양 스티커가 붙는 날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쉬바는 바바라가 기르는 고양이를 안락사할 때, 함께 해달라는 부탁을 거절합니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바바라는 자신 대신 가족을 선택한 그녀의 결정에 분노합니다.
바바라는 그녀의 비밀을 폭로할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합니다. 바바라를 짝사랑하는 동료 교사에게 슬쩍 그녀의 이야기를 흘립니다. 애정과 분노는 성질만 다를 뿐, 에너지의 크기와 향방은 같습니다. 스티븐의 부모가 그녀를 찾아오고, 그녀가 경찰 조사를 받기까지는 불과 하루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쫓겨난 쉬바를 바바라가 따뜻하게 맞아줍니다. 바바라로서는 쉬바를 가족과 떨어뜨릴 절호의 기회를 찾아낸 셈입니다. 여교사와 남학생의 스캔들은 영국 사회를 뒤집어놓습니다. 쉬바는 남학생에게 성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로 전락합니다. 집을 에워싼 기자들 때문에 쉬바는 바깥출입조차 할 수 없습니다.
바바라가 외출했을 때, 쉬바는 우연히 쓰레기통에서 바바라가 구겨서 버린 일기장의 한 장을 읽게 됩니다. 간신히 찾아낸 일기장에는 바바라가 쉬바의 가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담겨 있습니다. 쉬바에 대한 바바라의 집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울증으로 학교를 옮겼다던 쉬바의 동료 교사 역시 그녀의 집착 때문에 떠나갔다는 사실도 알게 됩니다. 게다가 바바라는 실제 그들의 관계보다 그들의 사이가 훨씬 가깝다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쉬바는 바바라의 입을 통해 자신의 비밀이 새어 나갔다는 사실에 경악합니다.
바바라를 대면한 쉬바에게서 그간의 유약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바바라가 자신의 가족을 모독한 사실, 자신을 감옥에서 썩게 만든 만행에 대해 몰아붙입니다. 바바라는 사랑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불쌍한 인간이라 쏘아붙입니다. 그 순간에도 바바라는 쉬바와 자신이야말로 가장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고 주장합니다. 바바라의 착각과 망상, 광기에 지친 쉬바는 바바라를 떠나 집으로 돌아갑니다. 현관에 선 쉬바와 남편이 주고받는 시선에서 백 마디 말이 오갑니다. 마침내 남편은 그녀를 받아들입니다. 비록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들은 오랜 시간 삶의 굴곡을 함께한 동반 자니까요.
바바라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표현대로 ‘절대 고독’에 갇힌 나이 많은 독신 여성입니다. 빼어난 관찰력과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력을 지녔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작 인간관계를 맺는 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녀가 사랑하는 방식은 대상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떼어놓고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관계를 원하지만, 관계의 깊이를 얻는 일에는 서툽니다. 가스라이팅과 일방적인 감정의 강요, 스토킹에 가까운 밀착만이 그녀가 아는 전부입니다.
바바라는 쉬바의 가정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가정은 없습니다. 다들 문제를 해결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쉬바는 다운증후군에 걸린 아들 때문에 고생하지만, 마음 깊이 그 아이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나이 많은 남편과 딸에 대해서도 같은 감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바라와 쉬바의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끈끈한 애정으로 묶인 가정입니다. 바바라는 그들 관계의 깊이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완벽한 우정’을 꿈꾸지만 그런 관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바바라가 생각하는 우정은 상대의 감정을 무시하고 그녀의 감정을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방식입니다. 바바라는 자신이 내린 판단이 늘 옳다고 여기는 나르시시스트에 불과합니다.
주디 덴치는 이처럼 복잡한 감정을 가진 인물을 놀랍도록 세심하게 연기합니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한 쉬바는 나르시시스트에게 취약한 인물입니다. 순진하고 친절하지만 우유부단합니다. 타인에게 쉽게 공감하고 동정심이 많습니다. 바바라에게는 손쉽고 매력적인 먹잇감입니다. 여성 사이에서 일어나는 스토킹과 집착에 관해 다룬 영화는 많습니다. 하지만 두 여성 사이의 감정선을 이토록 섬세하게 조망하는 영화는 많지 않습니다. 바바라가 쉬바에게 느끼는 감정이 성애(性愛)인지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쉬바의 아름다운 육체를 훑어내리는 바바라의 시선은 그녀를 탐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끄트머리에서 카메라는 처음 바바라가 앉아있던 벤치를 향합니다. 8개월 동안 복역하게 된 쉬바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바바라가 말을 겁니다. 여성은 쉬바와 비슷한 나이대이며 왠지 외로움을 간직한 듯합니다. 바바라는 쉬바와 함께 근무했다는 말로 그녀의 호기심을 자아냅니다. 바바라가 온정을 베풀듯 그녀를 음악회에 초대합니다. 이번에도 바바라가 일방적인 열정을 쏟아부을 희생양을 발견했음을 암시하며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