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아한 사람을 백조에 비유하곤 합니다. 사람들은 백조의 우아한 자태를 보며 감탄합니다. 그러나 수면 아래에서 백조의 발이 얼마나 열심히 물을 휘젓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백조를 닮은 사람들 역시 아름다움과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공을 들입니다. 중력을 거부하는 듯한 발레리나의 몸놀림 역시 지독한 노력의 소산입니다. 국립발레단 감독이자 은퇴한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발 사진이 화제를 모은 적이 있습니다. 사진에는 관절이 뒤틀리고 마디가 불거진 발이 등장합니다. 한 예술가의 ‘뼈를 깎는’ 고행이라 표현하기에는 마음 불편한 구석이 있습니다. 예술, 특히 몸을 도구로 하는 무용은 이처럼 신체의 영구적 변형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예술이란 이런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성취할 가치가 있는 무엇일까요? 많은 발레리나는 기꺼이 그렇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영화 ‘블랙스완’에서는 한 발레리나의 성장담이 펼쳐집니다. ‘노력형’ 발레리나인 니나(나탈리 포트만)는 ‘백조의 호수’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발탁됩니다. 아름답고 순수한 니나는 백조 오데트 역할에 딱 들어맞습니다. 그러나 흑조 오딘이 가진 열정과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극한까지 그녀를 몰아붙이는 감독, 다른 발레리나들의 시샘 때문에 니나는 괴롭습니다. 게다가 니나와는 다른 매력을 지닌 다크호스 릴리(밀라 쿠니스)가 바싹 그녀를 추격해 옵니다. 그제야 니나는 은퇴한 선배이자 최고의 단원이었던 베스(위노나 라이더)의 심경을 이해합니다. 마침내 그녀는 방해꾼들을 이겨내고 자기 안에 있는 흑조를 끄집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어디선가 많이 본 학원물 드라마 같지 않습니까? 이야기 구조는 진부하기 짝이 없고, 뻔한 클리셰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그러나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특유의 격렬하고도 거침없는 스타일로 이 해묵은 이야기 구조에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주인공 니나는 신경증을 앓는 예술가의 전형입니다. 자신의 육체를 도구로 삼는 무용수에게 강도 높은 훈련과 엄격한 생활 관리는 필수입니다. 훌륭한 테크닉과 기본기를 갖추었으나, 니나에게는 예술가가 당연히 갖춰야 할 욕망이 부족합니다. 사실 니나는 자신이 지닌 욕망에 관해 모릅니다. 그녀의 가녀린 육신은 타인의 욕망을 투영하는 장소입니다. 강박증적인 어머니(바바라 허쉬) 밑에서 통제를 받으며 성장한 니나는 어머니의 욕망을 대리 실현하는 존재입니다. 니나를 임신하고 발레를 그만둔 어머니에게 그녀는 착한 딸 노릇을 멈출 수 없습니다.
어머니의 신경증은 그대로 딸에게 대물림됩니다. 어머니가 그녀에게 그렇게 하듯, 니나는 스스로를 통제하는 일에 익숙합니다. 자신의 춤이 완벽하기를 원한다는 니나의 말에 발레단의 감독 토마스(뱅상 카셀)는 “완벽함은 통제가 아니야.”라고 대답합니다. 발레단의 감독 토마스 역시 그녀에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려 들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토마스는 언뜻 니나의 억압된 본성을 일깨워 그녀를 도약시키는 스승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토마스는 늘 자유분방하고 도발적인 단원들을 골라서 사귀어왔습니다. 토마스에게 니나는 단원으로서나, 연인으로서나 피그말리온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토마스가 니나를 훈육하는 방식은 성폭력에 가깝습니다. 토마스의 방식은 니나의 욕망을 끌어내는 데에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을지 몰라도 그녀가 당당한 주체로 서는 데에는 방해가 될 뿐입니다.
니나는 감성보다 이성이 비대한 예술가로 보입니다. 대중 매체에서 묘사하는 ‘광기 어린 예술가’의 이미지는 그들에게 늘 감성이 우선하는 것처럼 오해하게 합니다. 뮤즈가 찾아올 때, 예술가들은 폭발적으로 영감을 형상화합니다. 그러나 그 시간이 지나면 그들은 냉철하게 자신의 작품을 객관화합니다. 숱한 아이디어들이 이 과정을 통해 소각됩니다. 구겨진 악보와 찢어진 캔버스는 이성적 판단을 되찾은 예술가의 자기부정입니다. 감성과 이성의 조화는 예술가에게 이처럼 중요한 과제입니다. 그러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말했듯, 늘 감성이 우선하고 이성이 그 뒤를 따릅니다. 발레단의 감독 토마스 역시 후원자를 구할 때는 냉철한 사업가의 모습으로 변신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자신의 본능을 믿습니다. 예술가들의 작업은 숱한 자기 의심과 확신의 과정을 통한 정반합입니다. 그런 면에서 니나는 발레리나로서는 불리한 인물입니다. 자유로운 발상과 자기 검열을 버린 상상력이야말로 예술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니까요.
‘백조의 호수’는 프리마 발레리나가 오데트와 오딘 역할을 동시에 맡습니다. 예상대로 흑조의 역할이 니나의 발목을 잡아당깁니다. ‘착한 소녀’ 니나는 늘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며 살아왔습니다. 거침없는 욕망과 에로티시즘을 실현하는 오딘의 모습을 니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슬슬 니나 안에 숨어 있던 흑조가 날갯짓할 준비를 합니다. 손톱을 아무리 짧게 다듬어도 그녀의 어깻죽지에 난 상처는 아물 줄 모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미 흑조의 날개가 돋아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설프게 자신을 유혹하려 드는 니나에게 토마스는 자위행위를 권합니다. 니나의 억눌린 성욕이 자기표현에 방해가 된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눈을 뜬 니나는 성실하게(?) 그의 가르침을 따릅니다. 자신의 몸을 탐구하며 육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에 달뜹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방에서 잠이 든 어머니를 발견하고 기겁합니다. 욕망과 초자아의 충돌은 이처럼 충격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됩니다.
흑조가 니나를 잠식하는 과정은 지독히도 자기 파괴적입니다. 니나의 내부에서 오딘과 오데트는 계속 싸움을 벌입니다. 터널을 지나며 니나는 문득 자신의 모습을 한 여성과 마주칩니다. 도플갱어를 본 사람은 죽는다는 속설이 관객의 마음을 불길하게 합니다. 니나의 다른 자아는 이제 수시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깨진 유리의 날카로운 파편 속에서, 거울에 비친 니나의 상(想)에서 오딘은 그녀를 응시합니다. 관객들은 니나가 단순한 신경증을 벗어나 위험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직감합니다. 니나가 벗겨낸 피부가 어느새 멀쩡해지는가 하면 어깻죽지에서는 검은 털이 돋습니다. 이제 관객은 무엇이 니나가 보는 환상이고 무엇이 현실인지 구별하기 힘듭니다.
릴리(밀라 쿠니스)는 니나와는 정반대의 캐릭터를 지니고 있습니다. 진지함과 성실성은 니나에 비해 부족하지만, 진심으로 춤추는 시간을 즐깁니다. 술과 남자, 마약을 즐기는 자유분방함 역시 니나가 가지고 있지 못한 태도입니다. 릴리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온 니나는 릴리와 동침하는 환상에 빠집니다. 절정의 순간 니나는 자신을 애무하는 릴리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찾습니다. 이제야 니나는 자신의 에로스적 욕망을 받아들이고 그 욕망을 내면화하는 데 성공합니다. 니나는 그녀의 방에 가득한 인형과 소녀 취향의 물건들을 가져다 버립니다. 파스텔 색조의 옷 대신 오딘의 무대복 같은 무채색 옷을 입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그녀가 주역을 맡은 “백조의 호수의 개봉일이 다가왔습니다. 늦잠을 잔 니나의 앞을 어머니가 가로막습니다. 니나가 정상이 아님을 깨달은 어머니는 그녀가 무대에 서는 것을 방해합니다. 딸에게 집착하고 과잉보호하고, 성적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어머니의 모습은 주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딸의 정신 건강이 위험하다고 하더라도, 굳이 중요한 날 니나를 막아서는 어머니의 행동 역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어머니는 니나의 성공을 바라는 동시에 그녀를 질투하고 있습니다. 그들 모녀의 관계는 그토록 복잡하고도 뒤틀려 있습니다.
니나의 대역을 맡은 릴리가 무대에 막 오르려는 순간, 니나가 극장에 도착합니다. 우리가 아는 ‘백조의 호수’에는 여러 버전의 결말이 있습니다. 하필 니나가 출연하는 극은 흑조 오딜이 지그프리트를 차지하는 내용입니다. 지그프리트와 오데트가 맺어지는 해피엔딩이었다면 니나의 운명은 달라졌을까요? 니나는 오데트로서 무대 위에 오릅니다. 우아하고 가냘픈 오데트의 몸짓에 니나는 혼신의 힘을 불어넣습니다. 그러나 1막이 끝날 때 지그프리트는 그만 니나를 바닥에 떨어뜨립니다. 이 장면은 오데트로서의 자신을 던져버리는 니나의 모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분장실에서 니나를 기다리는 인물은 흑조를 연기하겠다며 그녀를 위협하는 릴리입니다. 니나는 조각난 거울로 릴리를 찔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니나가 죽인 상대는 바로 자신 안에 존재하던 오데트입니다. 이제 니나는 완벽한 흑조로서 무대에 오릅니다. 착하고 겁 많고 자기주장이라고는 모르던 백조는 이제 없습니다. 니나는 거침없이 욕망을 분출하는 흑조로 완전하게 변신합니다. 다시 오데트로 돌아간 니나는 자신의 배에 난 상흔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무대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무대 뒤에 놓인 매트리스로 추락하며 니나는 말합니다. “나는 완벽했어.(I was perfect)" 타인의 욕망에 따라 살아가던 니나는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설정일까요. 죽기 직전에 단 한 번 울며 노래한다는 백조처럼 니나는 인생 최고의 공연을 마치며 죽어갑니다.
블랙 스완에 등장하는 악녀는 니나가 아닌 오딘입니다. 오딘은 니나 안에 있던 오데트를 살해하고 더 나아가 니나를 죽게 합니다. 더 건강한 방식으로 오딘과의 합일을 이루지 못한 니나를 향한 복수극이지요. 그러나 니나 안에서 억압되어 있던 오딘 역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엄마에게 받았던 억압이 아무리 클지라도 21세기를 살아가는 젊은 여성이자 예술가라기에 니나는 너무나 미숙했습니다. 영화 초반에 니나는 백조의 호수에서 프리마 발레리나를 맡는 꿈을 꿉니다. 악마 로트바르트가 등장하는 볼쇼이 스타일의 백조의 호수입니다. 어쩌면 니나는 그때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을 팔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니나의 고통스러운 자기 분열과 통합의 과정을 완벽하게 연기합니다. 발레리나 역할을 맡기 위해 혹독한 수업을 받고 체중을 9킬로그램이나 감량합니다. 나탈리 포트만이 맡은 니나라는 배역은 어쩐지 그녀와 공통점이 있습니다. 나탈리 포트만은 당차고 똑똑한 이미지를 지닌 배우지만, 오랫동안 모범생 이미지를 벗지 못했습니다. 레옹의 마틸다 역 이후로는 늘 비슷한 감정선과 표정을 보여줬다는 혹평을 들어왔습니다. 주체성의 회복과 동시에 파멸한 니나와 달리 나탈리 포트만은 이 영화를 통해 2011년 제8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습니다. 시트콤 요절복통 70‘s에서 이름을 알린 신예 밀라 쿠니스 역시 블랙 스완을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습니다. 개인사와 맡은 역할이 비슷하다며 입방아에 올랐던 베스 역의 위노나 라이더 역시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성공 이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악녀 오딘이 여배우들에게 내린 것은 저주가 아닌 축복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