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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Oct 26. 2023

냄새5 -역사와 문학에 배어들다


냄새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에는 개인적 경험과 취향만큼이나 공동체의 신념과 가치관, 관습이 배어있다. 냄새에 대한 공동체의 시각은 작가들의 날카로운 관찰력에 의해 그 사회의 거울인 문학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서구의 역사에서 후각의 지위는 높지 않았다. 플라톤에게 냄새는 육체와 관련한 열등한 기운이었다. 이데아의 세계는 오직 청각과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었기에 플라톤에게 있어 눈과 귀는 코보다 더 중요한 감각기관이었다. 기하학은 눈을 통해 보고 이해할 수 있었다. 천상의 질서를 반영한다고 믿었던 음악 역시 귀로 들었다.



근대의 철학자와 과학자들에게도 역시 후각은 중요하지 않은 감각이었다. 칸트는 후각이 우리의 신체감각 중 가장 필요 없는 감각이라고 주장했다. 칸트에게 후각은 즐거움보다는 혐오의 대상을 찾는 감각이었다. 그나마 후각으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은 일시적이라 여겼다. 다윈은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동물과 달리 후각의 예민함을 잃어버렸다고 단언했고, 프로이트는 인간이 성숙해감에 따라 냄새를 맡을 때 느끼는 즐거움은 더 성숙한 감각인 시각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동안 냄새는 부패에 따른 악취, 인간의 육욕을 연상케 하는 부정한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악취를 도덕적 타락에, 좋은 냄새를 성스러움에 연관지어 생각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으로 좋은 냄새가 성덕(聖德)과 관련있다고 여겼다. 신비하고 좋은 일이 있으면 좋은 냄새가 났다는 기록이 역사서에 남아있다.


-정명 7년 신사(921) 5월 15일에 제석천이 이 절의 왼쪽 경루에 내려와 열흘 동안 머무르니 전각과 탑, 그리고 풀, 나무, 흙, 돌들이 모두 신이한 향기를 풍기고 오색 구름이 절을 뒤덮었으며 남쪽 연못의 고기와 용은 기뻐서 춤추듯 뛰어올랐다.   


                               -《삼국유사 권 제 3》


 향로에 향을 붙여 심신을 단정하게 하는 것은 조선 선비의 일과 중 하나였다. 좋은 냄새를 선비의 도덕적 이상과 결부시켜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비의 학덕(學德)을 매화 향에 비유하기도 했다.


陶山月夜詠梅


                         李滉


獨倚山窓夜色寒


梅梢月上正團團


不須更喚微風至


自有淸香滿院間


고즈넉이 창가에 기대서니


밤기운 차가운데


매화 핀 가지 끝에


둥근 달이 걸렸구나


여기 다시 살랑바람


청해서 무엇하랴


맑은 향 스스로 피워내어


정원 가득 채웠거늘


궁중에 향실(香室)을 두어 궁중의 제례나 의식에 필요한 향을 관장하였던 사실은 향을 맡는 풍습이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것임을 알게 해준다. 좋은 냄새와 국가의 권위를 하나로 생각하는 것은 통치 이데올로기의 일부였다.



좋은 냄새를 고상함과 관련짓는 태도는 문학작품에서도 나타난다. 아름답거나 도덕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사람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는 설정을 소설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백년의 고독』에 등장하는 미녀 레메디오스는 사람들을 미혹하는 체취를 지니고 있다. 소설 『향수』에서 아름답고 순결한 소녀들의 체취는 어떤 향수보다 좋은 냄새를 풍긴다. 『향수』에서 체취는 또한 인간적 특성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 태어날 때부터 체취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그르누이는 사랑하거나 사랑받을 수 있는 능력 역시 가지고 있지 않다. 그와 반대로 냄새를 맡지 못하는 인물인 가이아르 부인 역시 동정심이나 애정과 같은 인간적 특성이 결여된 인물로 그려진다.


소설 『백년의 고독』에서 한밤중에 연인의 집에 찾아간 호세 아르까디오는 “너무 어렴풋하지만 항상 자신의 살 속에 배어 있었기에 아주 잘 분간할 수 있는 냄새”였던 연인의 체취를 좇아간다. 미녀 레메디오스의 체취를 맡은 남자들은 “기묘한 황홀감에 사로잡히고, 뭔가 보이지 않는 위험이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다는 공포를 느꼈으며, 대다수는 엉엉 울고 싶은 심정에 빠져들었다.” 이처럼 문학작품에서 체취는 육욕과 타락을 드러내는 동시에, 인간의 자연스런 생명력과 관능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성과 지성을 발전의 원동력으로 여겨왔던 세계에서 냄새는 오랜 시간동안 잊혀진 감각이었다. 그러나 낭만주의 시대에 철학자들과 예술가들은 인간의 감정과 직관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후각을 칭송하기 시작했다. 특히 보들레르, 말라르메, 릴케와 같은 상징주의 작가들은 냄새가 환기하는 몽환적 이미지에 주목했다. 상징주의 문학에서 인간의 욕망과 감정은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냄새로 드러난다. 보들레르는 그의 시 『악의 꽃』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당신의 향수를 내쉬는 당신의 옷에


내 아픈 머리를 묻으리라.


그리고 들이마시리라, 시든 꽃처럼.


죽은 내 사랑의 달콤하면서도 퀴퀴한 냄새를


작가들은 또한 냄새가 세계의 내적 진실을 드러내준다고까지 여긴다. 시각이 사물의 표피만을 드러내주는 것에 비해 냄새는 거죽 밑의 내면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투르니에는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는 항상 형상보다는 질료를 더 좋아했다. 쓰다듬어 만지고 코로 냄새를 맡는 것이 나에게는 보는 것이나 듣는 것보다는 항상 더 감동적이고 속속들이 느껴지는 인식 방식이다.”


작가들은 쉽게 통제할 수 없는 냄새의 특성을 통해 감출 수 없는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한다. 『백년의 고독』에서 살해당한 호세 아르카디오의 시체는 진한 화약 냄새를 풍긴다. 사람들은 시체에서 나는 화약 냄새를 없애려고 애썼지만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사라지지 않는 화약 냄새는 은폐할 수 없는 남아메리카 사회의 폭력성을 상징한다.


주민들이 시체를 묻은 후 몇 달에 걸쳐 무덤 둘레에 여러 겹으로 담을 쌓고, 담벼락 사이사이에 뭉친 재와 톱밥과 생석회를 다져 넣긴 했지만 바나나 회사 기사들이 콘크리트로 무덤을 덮었던 몇 년 후까지도 묘지에서는 화약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백년의고독』중에서


여전히 냄새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과소평가되는 감각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는데 가장 덜 중요한 감각으로 후각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고로 후각을 잃게 된 사람들은 냄새가 없으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빈곤해지는지, 냄새가 행복을 느끼는데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알게 된다. 사고로 후각을 잃었다가 되찾은 사람은 그 때의 기쁨을 세상이 흑백에서 컬러로 변화하는 느낌이었다고 말한다.


다른 감각이 제한받는 상태에서 사람들은 후각에 의존해 세계를 해석한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분한 퇴역장교 프랭크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한 여인이 뿌린 향수를 통해 그녀가 지닌 많은 특성에 대해 알아맞히는 능력을 보여준다. 결국 삶의 의욕을 잃었던 프랭크를 구원해준 것은 낯선 여인의 향기를 포함한 여전히 경이로운 세계였다.


아마 더 위험하고 재미없는 세상이 되겠지만 냄새 없이도 사람들은 일상을 영위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냄새가 없는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더 무미건조해질 것임은 분명하다. 세계의 빈틈을 메워서 완전하게 해주는 것은 정형이 없고 유연한, 그래서 어디에나 파고들 수 있는 냄새이다. 우리는 다양한 냄새를 통해 세계를 더 풍부하고 맛깔스럽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때로 냄새는 우리 안에 있는 감수성을 깨워 흔들며 빤히 들여다보이는 사물의 이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라고 속삭인다. 마들렌 냄새를 맡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긴 여정을 떠났던 프루스트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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