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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정 Oct 24. 2023

냄새 4-무디어지는 언어의 칼날



그 냄새와 비교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나 비교하는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 우선 이 냄새는 신선했다. 그러나 그것은 레몬이나 유자의 신선함과는 달랐다. 몰약이나 계피 나뭇잎, 박하향이나 자작나무, 장뇌나 솔이파리의 향기와도 달랐으며 5월에 내리는 비나 차가운 바람, 샘물……등 어느 것 하고도 같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또 온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감귤이나 실측백나무, 사향 냄새와는 달랐으며 재스민이나 수선화, 모과나무나 붓꽃의 향기……등과도 다른 것이었다. 또 이 향기는 붙잡을 수 없을 정도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혼합되어 있었다. 그것도 그냥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면서 말이다. 가볍고 연약하면서도 단단하고 지속적이었다. 얇지만 오색영롱하게 반짝이는 비단처럼 …….  그렇지만 비단과는 또 다른 비스킷이 들어 있는 꿀이나 달콤한 우유냄새와 비슷했다. 아무리 애써도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비단과 우유라니! 이 향기는 도대체 파악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으며, 어디에다 분류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향수』중에서


소설 『향수』에서 그르누이는 길을 걷다가 형용할 수 없는 냄새에 매혹된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던 그 냄새는 어느 소녀에게서 풍기는 체취였다. 냄새의 천재 그르누이조차 냄새를 언어로 명확하게 묘사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다. 오히려 그르누이는 언어에 관한 한 둔재에 가까운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오직 냄새를 통해서만 사물의 개념을 인식하며 냄새와 관련 없는 추상적 단어들을 익히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우리의 후각과 언어구사능력이 얼마나 동떨어져있는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냄새에 대해 언어로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 된장찌개와 청국장 냄새의 미묘하고도 큰 차이를 설명할 수 있는가? 성경책의 얇디얇은 박엽지에서 풍기는 잉크 냄새, 소나기가 걷힌 후 아지랑이와 함께 땅에서 빠져나오는 흙냄새, 벼루에 먹을 갈 때면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묵향, 지하실에 들어설 때 훅 풍기는 눅눅하고 추진 냄새를 설명하려 들면 언어의 칼날은 그 날카로움을 잃는다.

우리가 본 것에 대해 언어를 통해 비교적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우리는 사물에 빗대어 설명함으로써 우리가 본 것을 되살릴 수 있다. 시각에 대한 풍부한 형용사 덕분에 이 과정은 예리하게 벼려진다. ‘둥그스름하고, 큼직하고, 매끄럽고, 붉거나 흰’ 사물들은 우리의 언어를 빠져나갈 수 없다. 몽타주 전문가들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의 얼굴을 사진과 흡사할 정도로 완벽하게 재현한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조향사라 할지라도 한 번도 맡지 못한 냄새를 단지 설명만 듣고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사물과는 달리 냄새는 형태도 색깔도 질감도 없으며 순간적으로 현전 하다 사라질 뿐이다. 언어는 냄새 앞에서 날카로운 분석의 칼날을 휘두를 수 없다.


 직접 설명하기 어려운 냄새의 속성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냄새를 설명한다. 작가들은 뛰어난 관찰력과 감수성을 통해 하나의 냄새를 다른 사물과 관련짓는다. 조지훈은 시「호수」에서 “사슴이 처럼 향긋한 그림자 따라 산밑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신다”라고 썼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나는 비가 나렸다” 백석의 시 「통영」의 한 구절이다.


문순태의 「늙으신 어머니의 향기」에서 한 때 “풀잎 향기 같고 알큼한 취나물 냄새 같고 구수한 밥냄새와 같았던” 어머니의 냄새는 이제 “오래된 신 김치에서 나는 군내 같기도 하고, 쿠리한 된장 냄새, 시지근한 땀 냄새, 퀴퀴한 곰팡이 냄새, 고리고리한 멸치젓 냄새, 꿀꿀한 두엄 썩는 냄새, 잡조름한 오줌 버캐 지린내, 고리착지근한 발가락 고린내, 생고등어 비린내”가 되었다. 쥐스킨트의 『향수』에서 아기들의 발냄새는 매끄럽고 따뜻한 돌의 냄새로 묘사된다. 아기들의 몸에서는 우유에 적신 과자 냄새가, 머리 꼭대기에서는 캐러멜 냄새가 난다.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에게 사람들은 각기 다른 냄새로 표상된다. 아들 면은 ‘젖냄새’로, 적들은 ‘화약 냄새’로 기억된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들은 목욕을 자주 하지 않아도 냄새가 나지 않는다. 매복해서 사냥하는 그들의 특성상, 체취 때문에 사냥감에게 들키는 일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진화했다고 한다. 그러나 일광욕을 마친 우리 고양이에게서는 잘 마른빨래 냄새가 난다. 털이 빽빽한 이마에 고개를 묻으면 오래된 곰인형에게서 나는 냄새를 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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