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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바이지은 Sep 08. 2022

결혼하니까 좋아?

음, 글쎄, 결혼.. 좋은가?

결혼하니까 좋아? 결혼 추천해? 결혼 안 하면 후회할까?


나도 이십 대 시절에 유부녀 애엄마를 친구로 뒀다면 이런 질문을 했을 것이다. 유치원생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삼십 대 후반 아줌마 친구(나)를 둔 풋풋한 내 어린 대학 동기들도 종종 내게 이런 질문을 했다. 쉽지 않은 질문이다. 음.. 결혼, 좋은가?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 결혼 전, 방송작가로 일하던 시절에 만난 A다. 그녀는 활발하게 활동하던 여자 연예인으로 남편 역시 여유 있는 집안으로 익히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도 일을 놓지 않았고 때론 의욕이 과해 억척스러워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스텝들은 "아니 언니~ 남편이 돈도 잘 버는데 왜 그렇게 전투적인 거야~ 살살 좀 해~" 하고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그때 A가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니들이 뭘 몰라서 그러는데, 그게 다 내 돈이 아냐. 돈 쓰는데 누구 신경 안 쓰고 내 멋대로 써야 내 돈이지. 나는 남편 돈으로 친정에 뭐 하나 사주는 것도 맘이 그렇게 불편하더라고~"


읭? 남편 돈 쓰는 게 불편하다고? 아니, 부부는 경제공동체 아닌가? 배우자가 충분한 경제력이 있는데 그 정도면 애들 잘 케어하면서 쉴 땐 또 쉬면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엔 맘이 불편하다고? 진짜로?


그땐 정말 믿을 수 없었다. 그냥 하는 말이려니 하고 넘겼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 말은 진실이다. 그것은 내가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겪으며 내 경제력이 끊기고 나서야 깨닫게 된 삶이었다. 남편이 벌어온 돈을 쓸 때, 나를 위해서는 좀처럼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 누가 눈치 주지 않아도 부담스럽고 불편했다.


처음 결혼했을 땐 가정을 이루면서 마음 한편에 상대에게 기대고픈 마음이 있었다.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대학 졸업 전부터 쉬지 않고 일을 했기 때문에 잠시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가정이 생기면서 여러모로 여유로워진 선배들을 보면서 나 역시 그런 울타리를 만들고 싶었던 것 같다. 그게 결혼의 장점 중 하나라 여겼다. 그런데 그땐 정말 몰랐다. 내 능력으로 나만 먹여 살리던 1인 경제와, 내가 쉬면 외벌이가 되는 가정 경제 차이가 이렇게 클 줄은 정말 몰랐다. 특히 임신과 출산, 육아기를 겪으며 한 사람의 수입으로 가정이 굴러가게 하려면 어느 부분에서 분명 줄이고 아껴야 했다. 그것은 내가 쉽게 마시던 커피, 부담 없이 샀던 옷 한 벌, 정기적으로 다녔던 미용실과 화장품 비용 같은 것들이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소비는 쉽사리 허락되지 않았다. 이건 남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 물론 예외는 있다. 두 사람 몫에 달하는 배우자의 뛰어난 경제력이 뒷받침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보통의 삶은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고 결혼 후 '우리'의 삶이 나빠졌던가? 그렇진 않다. 이 역시 사실이다. '우리'의 삶은 결혼 전보다 분명히 나아졌다. 아이가 생기고 주거 안정성을 위해 절약하고 살다 보니 내 집도 생기고, 대출이 많지만 이를 갚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일적으로도 성장했다. 아이를 키우며 느낀 행복도 있었고, 알게 된 인생의 배움도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아닌 '나'였다면? '나'만 따로 떼어놓고 본다면, 나의 삶은 결혼 전보다 나아졌는가? 나는 쉽사리 대답하기 어렵다. 나는 정말 더 행복해졌는가?


우리의 행복과 나의 행복은 다르다.

'우리의 행복'과' 나의 행복'은 다르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결혼이라는 경험, 그 이후로도 수년 동안 지지고 볶는 시간이 필요했다. 가끔은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결혼생활을 통해 분명 '우리'는 점점 나아지고 있는데, 그런 '우리의 행복' 저편에서 조금씩 갉아먹히는 '나의 행복'이 있었다.


물론 가정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 되는 사람도 있다. 육아가 즐겁고, 집안일을 해내면서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이 있고, 가정생활에 무한한 만족을 느끼고 있다. 그런 사람에게는 결혼이 완전한 축복일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결혼하면 좋아?'라는 질문은 틀렸다. '결혼이 내게 어울리는가?'가 더 맞다. 결혼이란 삶이 내게 어울리는가. 이걸 알기 위해서는 당연히도 '나'를 알아야 한다. 나는 무엇을 할 때 만족을 느끼는지, 내게 행복을 주는 요소는 무엇인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즐거운지, 내가 언제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지 말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나 자신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하고,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또 달라지므로 결국은 영겁의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니 나를 완벽히 알고 난 이후에 결혼을 결정하겠다는 것은 어쩌면 내 몸이 노쇠해져 오늘내일할 지경에 결혼식을 올리겠다는 말과 같을 수도 있다. 나 역시 결혼을 선택할 때 나 자신에 대해 알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자만이었다는 걸 결혼 후에 알아버렸고. 그러니까 정말이지 결혼은, 어느 영화 제목처럼 미친 짓이 맞다.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무한한 가능성의 시절에, 내가 누군지도 잘 모르는데, 사랑이란 이름으로 (그게 진짜 사랑인지 아닌지도 모른 채로), 남의  인생을 받아들이는 모험을 감행해야 하니까.




어쨌든 나는 결혼을 질러버렸다. 결혼은 멋 모를 때 해야 한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결혼이 내게 썩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지만, 다행히도 아직 벗어던지고 싶을 만큼 싫은 건 아니다. 이 또한 결혼을 해보고 알았다. 그러니까 결국 결혼도,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나의 경우도 결혼 생활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본질에 대해 깊이 알아가고 있다. 


나는 혼자 있는 것을 즐기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외로움에 지치는 사람이다. 나는 혼자 하는 일들이 익숙하고 즐겁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혼자 하는 것은 싫다. 누군가와 시간을 '같이' 보내면서도, 그 안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그것이 내 안에 자유로움과 안정감, 편안함과 충만함의 밸런스를 맞춰준다. 이것은 내가 결혼 전 혼자 지낸 시간과, 결혼 후 같이 보낸 시간을 모두 경험하며 알게 된 나의 성향이다. 그러므로 나는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외롭다고 느끼고 종종 불안해하며, 결혼을 했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었을 것이다. 결혼하지 않았을 때는 결혼하고 싶어 하고, 결혼하고 나서는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나인 것이다.


인생이란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호시절은 언제나 찰나이고, 깨달음이란 늘 그렇듯 바닥을 치고 올라올 때 선물처럼 손에 쥐어준다. 인생을 찾아오는 행운과 불행도 언제나 불쑥이고 사랑도 불현듯 쳐들어온다. 뒤돌아보면, 치밀하게 계획한 일들보다는 우연히 또는 충동적으로 질러버린 일들이 인생을 바꿨다. 그러니 이미 저질러 버린 일에 후회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혼이란 제도가 내게는 단맛과 쓴맛의 콜라보지만, 이미 결혼을 감행한 나로서는 그 여정을 즐길 수밖에 없다. 지금 아는 걸 그때 알았더라도, 아마 나는 똑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하여 나는 결혼 역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의 한 관문으로 여기고, 나 자신과 나의 배우자, 내 아이의 세계를 탐험해보겠다. 그 안에서 나를 위한 시간을 내는 방법을 터득해가며 내가 나를 아낌없이 돌볼 것이다. 그렇게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스펙터클한 결혼생활을 즐기겠다. 아니면 뭐, 어쩌겠나. 그건 그때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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