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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바이지은 Nov 16. 2022

엄마 요즘 빨래 안 하나 봐?

어느 날, 8살 딸아이가 물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늦은 저녁이었다. 잠자리 준비를 하다 방바닥에 배 깔고 누워 있는데

샤워를 마치고 나온 8살 딸아이가 한참 옷장을 뒤적이더니 대뜸 물었다.


엄마! 요즘 빨래 안 하나 봐?

평소와 사뭇 다른 딴딴한 목소리로 '엄마!' 하는데 거기부터 강한 불만이 느껴졌다. '요즘' 하고 한 템포 쉬었다가, 스타카토로 ‘빨.래.’라고 발음을 분명히 한 뒤,  '안하나봐?↗' 하며 톤이 확 올라가는데 90퍼센트의 의문과 10퍼센트의 한심함까지 표출하고 있었다.


순간 벌떡 일어나 내 귀를 의심했다. 빨래 안 하나 봐라니, 아니 이 무슨 시어머니도 안 하는 잔소리인가 말이다. 이거시 분명 우리 집 8살 귀요미한테 들은 말이 맞는지 어안이 벙벙했지만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되물어보았다.


"응? 빨래?"


"어!! 빨래!!! 아니이~ 내가 좋아하는 잠옷이이~~ 며칠 째~ 안 나오잖아~!"


그건 사실이다. 빨래가 밀렸다. 얼마 전 이사를 하고 옷 정리를 하면서 빨랫감이 이전보다 많아지다 보니 빨래하는 텀이 길어졌다. 그래도 입을 잠옷이나 수건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꼬마는 본인이 좋아하는 특정 잠옷을 계속 기다고 있었던 것이다.


"알았어 알았어~ 엄마가 내일은 꼭 빨아서 줄게~! 오늘은 다른 거 입어~ 아라찌~"


사실 약간 당황해서 식은땀이 날 것 같았지만 온몸의 땀구멍을 틀어막으려 애쓰며 아이를 달랬다. 아니, 딸아이한테 빨래 안 하냐는 잔소리를 듣다니, 이건 정말 예상 밖의 일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요즘 이런 류의 8살 촌철살인이 계속되는데 예를 들면 또 이런 거다.


아이가 놀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님피아 인형 좀 찾아달라고 하길래

"아니, 니 앞에 다른 인형들 엄청 많고만~ 피카추도 있고 식스테일도 있고, 그냥 걔네들이랑 놀아~" 했더니 나를 보고 눈가를 찌푸리며 휙 던지는 말.


엄마, 귀.찮.아.서 그러지?↗

하.. 어떻게 알았지. 8살이 된 아이는 정말 귀신같이 내맴을 꿰뚫어 본다. 요즘엔 거짓말은 당연히 안 통하고 두루뭉술 둘러대는 말도 잘 안 통한다. 숨바꼭질할 때 자기 눈에 안 보이면 다 되는 줄 알고 수건으로 제 머리만 덮어쓰고는 몸통이 훤히 보이는 거실 한 귀퉁이에서 꼼짝 않고 앉아있던 순진무구한 우리 귀요미는 어디 갔냔 말이다. 결국 "아니, 귀찮은 건 아니고 인형이 많길래~" 얼버무리며 온 집안을 뒤져 님피아 인형을 찾아주었다.


또 어느 날은 같이 외출하고 돌아오는 차 안이었다.

그날따라 몸이 피곤해서 "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 했더니

"엄마, 집에 가서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 하려고 그러지?"

"어?"

엄마는 쉬는 게 누워서 핸드폰 하는 거잖아~

아니, 얘는 왜 이렇게 예리한 걸까. 8살이 되면 원래 그런 건가. 그래도.. 딸아, 엄마가 핸드폰을 하는 건 그냥 쉬거나 노는 게 아니라 (아니 물론 그럴 때도 있지만) 대부분 식료품도 사고, 양말 같은 것도 사고, 너 장난감도 사고, 어디 갈 거 예약도 하고, 이것저것 정보도 알아보고, 할 게 아주 많은데 그걸 굳이 앉아서 할 필요는 없잖아, 그래서 누워있는 거야. 그리고 있잖니. 어른들은 조금만 활동해도 몸이 천근만근 얼마나 피곤한 지 정말 너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걸? 하려다가 너무 변명 같기도 하고 상대가 8살 꼬마라는 사실을 자각하며 관뒀다.


그 이후 되도록이면 소파에 누워서 핸드폰 하는 걸 자제하려고 한다. 웬만해선 인형이나 장난감도 잘 찾아주고. 아, 빨래도 더 자주 한다. 특히 잠옷 빨래는 더 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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