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맛살이랑 햄, 계란은 빼주세요
엥? 그럼 다 빼는 건데...
괜찮아요. 야채만 넣어주세요!
오전과 오후, 같은 센터에서 디지털 드로잉 수업이 있던 날, 점심은 간단하게 김밥집에서 혼밥 했다.
우엉, 당근, 단무지만 든 김밥.
이렇게 먹어도 맛있을까?
나의 대답은 Yes!
누군가에게는 유별나 보일 수도 있겠지만, 비건은 콕 집어서 설명하기 어려운, 내 마음이 온전히 끌려서 선택한 식습관이다.
야채만으로 요리된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매일매일 느끼고 있다. 너무 만족한다. 뭔가 더 자유로운 기분이 드는 이유는 누군가의 강요가 아닌 내가 생각하고 선택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밥 사진을 보고 남편이 다 빼고 먹어서 뭐가 맛있냐고 톡을 보냈다. 하지만 정말 맛있게 먹었다. 우엉조림의 달콤함이 입 안 가득 퍼지고... 김밥이 하나하나 줄 때마다의 아쉬움이란!
집에서의 비건 실천은 스트레스가 없다. 쉽고 즐겁다.
한국에는 아직 비건 식당이 많이 없는 현실이라 혼자든 함께든 밖에서 먹어야 할 때가 문제인데, 그래서인지 내 무의식은 언젠가는 비건 식당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벌써부터 하고 있다.
비건 분식점을 한다면 단가가 낮아서 효율이 안 날 거 같고, 비건 김밥집을 할까? 비건 한식? 어떤 메뉴를 메인으로 할까 상상하다가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야 나 비건 식당 오픈하면 잘할 거 같아?
어. 잘 될 거 같아!
(당연히) 나는 잘 운영할 거 같다는 남편의 대답에 기분이 좋아진다.
10년 넘게 함께 살면서 터득한 그의 생존 방식일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부정적인 멘트를 날렸다간... (노코멘트)
아무튼 세계 비건의 날인 11월 1일에 얼렁뚱땅 채밍아웃을 하고 비건이 된 지 23일 째.
사실 100% 비건은 아직 아니다. 집에 있는 젓갈 들어간 김치도 먹었고, 너무 배고팠을 때, 우유가 함유된 과자를 먹은 적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외식할 때, 내가 먹을 수 있는 비건 음식과 비건이 아닌 사람도 함께 먹을 수 있는 메뉴가 있는 식당을 검색하는 능력이 생겼고, 김치도 비건 식으로 한번 담가볼 생각도 하고 있으니 비건 실천력이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
간식으로는 약과와 꼬깔콘이 비건이 길래, 더 고민하지 않도록 딱 정해두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간식은 어쩌다가 한번씩 먹을 것이다. (제발 ㅎㅎ)
야채 위주의 식단으로, 소식하며, 더 건강하고 가벼운 식습관을 온전히 내 것으로 체화하고 싶다. 식탐 부리지 않고, 적당히 배가 차면, 충분하다고 먹기를 딱 멈출 수 있기를 바란다.
야채 위주의 음식만큼 가볍고 싱그럽게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