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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세기소년 Feb 26. 2022

Dream Club #7

김치 미러

 

 시아의 이야기가 끝나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잠시 후 객석에는 잔잔하게 박수가 쏟아졌으며 눈물을 흘리고 흐느끼는 사람들도 보였다.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한 체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드림 클럽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몇 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테디베어의 임원진들과 진행자를 향해 실컷 욕하고 소리쳐 항의했다. 비록 만 명의 참여자들 안에서 소수의 인원들이었지만 대게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거나 종교인들이었다. 물론 그들 역시 드림 클럽 초기단계에 자발적인 지원으로 발탁된 이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베타 테스트 기간 중 보이콧을 선언했고 접속을 거부했다. 드림클럽의 다양한 활동 중 유일하게 흥행에 실패한 분야는 인문학 모임이나 종교활동이었다. 특히 종교인들은 드림클럽을 마약에 빗대며 다음과 같은 플랜카드를 들고 있었다.


 인간의 상상과 꿈을 저지하는 드림클럽에 의존한다면 그 삶은 마약에 중독된 삶과도 같다!


 종교인들은 드립클럽내에서 신자들의 신앙심이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했다. 드림클럽 베타 테스트가 출시되었을 당시, 많은 종교단체의 인사들은  기대를 걸고 있었다. 루시드 드림 기술을 이용해 영향력 있는 전도활동과 적극적인 홍보 효과를 기대했던 것이었다. 종교인 외에도 명성있는 강연자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저조한 참여율에 각 종교 단체들은 불안감에 휩싸였고 이는 곧 드림클럽 내 소수 종교인들의 보이콧 현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림클럽이 상용화된다면 현실에서 인간들의 희망이나 노력을 빼앗을 것이며 인간의 도덕적 해이와 종말을 야기할 것이라 강하게 반박했다. 현실 속의 종교인들은 여가 시간이나 주말을 이용해 교회, 성당, 또는 절로 향했지만 드림클럽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었다. 접속자 대부분은 새로운 시간을 취미활동이나 자기 계발 용도로 보냈다. 그동안 신의 존재에 기대고 빌며 많은 이들이 바랬던 이상적인 삶이 드림클럽이라는 공간을 통해 어느 정도 충족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기존에 종교를 믿던 드림클럽 참가자들의 대부분은 더 이상 현실을 마주하며, 희망을 품고, 고통을 인내하며, 혹은 기적 등을 위해 두 손 모아 간절히 빌지 않았다. 드림클럽은 그들에게 이상의 실현이었다. 그들은 더이상 신의 기적 등을 기대하지 않았다.


 [테디는 드림클럽에 대한 각종 부정적인 견해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 아니겠습니까. 존재를 자각하고 때로는 남들에게 각인시키며 또 사랑을 하고 받기를 원하는 그런 인간들이죠. 이중 뭐 하나라도 잘못된다면 우리는 금세 무너지고 망가지고 말겠죠. 여기 진행자로 서있는 저도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홀로 고독을 씹으며 살아간 유명한 학자, 예술가 하물며 신들마저도 어땠습니까? 결국 우리가 그 세월과 사건들을 알아주고 믿지 않았다면 그들은 인정받는 위인이나 예술가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죠. 혹은 미신에 지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과연 드림클럽이 도대체 왜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단순히 과학의 진보에 따른 순리적인 탄생이었을까요? 자, 그 답이 여기있습니다. 마지막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테디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잘 따라와 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시작하겠습니다.]



테디 이야기


 [심한석 박사는 생명의 고귀함을 존중하는 윤리적인 의사였습니다. 동시에 위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하는 야망가이기도 했죠. 그는 늘 완벽하고 궁극적인 의료기술을 갈망했습니다. 기존 인류의 역사가 행해온 의술과는 사뭇 다른 형태의 갈망이었습니다. 그는 방대한 의료 지식뿐만 아니라 물리, 생물, 화학, 생명공학, 그리고 컴퓨터공학 등 전 과학 분야에 능통한 천재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의사로서 그가 가진 직관, 판단, 그리고 손끝과 칼로 행해지는 정밀한 수술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죠. 하지만 심한석이라는 인간은 자신의 타고난 섬세한 재능을 회의적으로 여겼습니다. 그는 손끝으로 행해지는 정밀한 수술들이 결코 진정한 의술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때로 그는, 자신이 마치 고장난 골동품을 매뉴얼에 따라 고치며 나이를 먹어가는 공방의 늙은 장인 같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 기분이 그를 상당히 우울하게 만들었죠. 그는 세상에 어떠한 형태로도 존재하지 않을 그런 위대한 의술을 행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죠. 


 박사는 자연스레 뇌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를 하기 시작했죠. 인간 신경계의 최고 중추인 동시에, 현대 의학에서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굉장히 많은 미지로 가득 찬 부위였으니까요. 잘만 활용한다면 다양한 인간의 병들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렇게 고심 끝에 고안한 기술이 바로 인간의 뇌에 침투 가능한 미세한 로봇들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면과 꿈을 이용하는 것이었죠. 나노공정을 거친 미세한 의료공학 로봇이 박사와 환자의 뇌에 침투해 서로를 연결했고 수면성분을 뇌간에 퍼뜨려 수면을 유도했습니다. 박사가 렘수면에 들면 나노 봇들은 뇌 속에서 자신과 환자 간에 네트워크를 만들어 진단 및 수술을 위한 꿈을 설계했죠. 박사의 나노봇들은 박사의 꿈에서 실험실을 구축했고 실제로는 잠에든 신체와 달리, 꿈을 꾸는 뇌는 의식이 분명하고 또렷한 정신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도왔어요. 나노봇들은 환자들의 뇌속에 직접 침투해 실시간 데이터를 보내왔죠. 그는 이 방법을 통해 더 섬세한 진료와 치료가 가능할 것이라도 생각했습니다. 이를 테면 치매, 조현병, 하반신 마비, 식물인간 등 뇌와 신경에 관한 병들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는 유능한 공학자들과 인공지능 전문가들을 끌어모아 협업했고 계속해서 끊임없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정부의 임상 시험 규제와 막대한 실험 비용은 늘 걸림돌이었죠.


 한창 연구가 진행되고 있을때, 그의 연구를 꾸준히 지켜본 정부 고위 관계자 한 명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제안 하나를 해왔습니다. 비공식 정부 단체의 소속이 되어 지금 하고있는 연구를 진행해보라는 것이었죠. 그는 단체가 그 모든 것을 지원해준다고 했습니다. 단체는 정부기관과 대형 제약사가 협업해 운영되는 백신개발센터였습니다.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는 정부 산하의 비밀 조직 단체였죠. 그 역시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국가로부터 막대한 지원을 받은 그는 연구에 탄력을 받기 시작했죠.


 그리고 첫 번째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정밀하게 설계된 나노 봇들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노인들의 귀에 주입했죠. 나노 봇들은 시시각각 늙고 병든 뇌를 헤짚었고, 스캔했습니다. 덕분에 더 정밀한 진단을 내릴 수 있었죠. 그의 지시를 받은 수많은 나노 봇들은 늙고 병든 노인들의 뇌신경세포 안팎에 다가가 다닥다닥 엉겨 붙어있는 단백질 덩어리들을 긁어내었죠. 심지어는 수술 후 신경 치료 물질로 자연 용해되었습니다. 인류 최초로 알츠하이머가 치료되는 순간이었죠. 그것도 나노봇을 치료에 접목시킨 첫 성과였습니다. 예상보다 훨씬 빠른 성과였죠. 하지만 단체는 이 백신을 전 세계에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기술 유출이 두려웠던 정부는 전세계 극소수의 브로커들을 통해서만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거래를 이어 나갔죠. 단체는 뇌 치료용 나노봇의 공정과정, 원격 시스템, 네트워크 구축 등 모든 기술들이 외부로 새 나가지 않게 철저한 기밀을 유지했습니다. 추후 세계를 상대로 독점시장을 구축하기 위함이었죠.     

 

 첫 성과에도 불구하고, 박사는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비로소 이제야 자신이 생각하는 의술의 영역에 아주 조금 가까워졌다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착은 광기를 띄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실험실에 갇혀 나노봇을 연구했습니다. 거의 매 순간 렘수면 상태에 빠진 채로 말이죠. 병원의 환자를 돌보는 일 역시 소흘 해졌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은 더 이상 그에게 매력적인 수술 대상이 아니었죠. 그는 곧 현대의학으로 치료 불가능한 영역까지 고쳐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뇌사 상태와 같은 것들을 말이죠.


 정부는 박사에게 점점 무리한 기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뇌질환에 관한 치료법을 개발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보여준 그의 성과가 놀라웠으니까요. 동시에 기술의 유출이 두려워 그를 경계했습니다. 사람을 붙여 박사를 감시했고 또 기록했죠. 참다못한 박사는 단체의 임원진들과 격한 언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죠. 결국 단체는 두 번째 임상시험 전 자신들이 직접 구성한 연구원 인력들을 끼워 넣었죠. 그렇게 두 번째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실험자는 맑은 눈을 가진 외국인 청년이었어요. 예고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죠. 네, 바로 그 예고르가 맞습니다. 시아씨의 친 아버지였죠.


 스튜디오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악했고 술렁거렸다. 하지만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듯, 다음에 이어질 내용을 위해 숨을 죽였다.   


 “어디서 왔어?”

 “카자흐스탄에서 왔습니다.”

 “이름이 뭐야.”

 “예고르요.”

 “예고르, 멋있는 이름이네. 걱정하지 마.”

 “감사합니다.”

 "머리 쪽만 스캔하고 금방 끝날 거야."


 카자흐스탄에서 온 청년 예고르와 박사를 포함한 연구진들이 렘 수면 상태에 들자 본격적인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예고르의 귀를 통해 들어간 나노 봇들은 그의 뇌간에 빠르고 정확하게 안착했고 뇌 곳곳을 스캔했습니다. 그리고 박사와 연구진들의 나노봇에 연동되어 실시간으로 원격제어를 받았죠. 박사는 나노봇을 통해 살아 숨쉬는 뇌의 모든 부분을 아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경이로울 만큼 미세하게 설계된 신경세포들이 모두 완벽하게 군집되어 질서를 이루고 있는 중추 신경계, 박사는 흡사 거대한 우주를 보는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마치 인간의 몸속에 있는 하나의 은하 같았죠. 그는 경외감 마저 들었습니다. 애초에 인간이 뇌를 알고 조종한다는 것이 인류 권한 밖의 영역이라는 것을 느꼈죠. 어쨌든 실험은 성공적이었죠.


 하지만 예정에 없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습니다. 예고르에게 주입된 수 십 개의 나노봇중 절반이 갑자기 제 멋대로 반응하기 시작했죠. 나노 봇들은 그의 지시에 불응했습니다. 그 나노 봇들은 단체 소속의 연구원들과 연결된 것들이었죠. 단체는 그가 설정해 놓은 나노봇 시스템을 몰래 해킹해 두었고 제어 기능을 심어 두었던거죠. 나노봇들은 돌변해 예고르의 뇌를 거침없이 망가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뇌간에 침투한 나노 봇들은 뇌혈관에 미리 준비한 유해 물질을 퍼뜨려 임의적으로 경막외 출혈을 일으켰죠. 예고르의 뇌압이 거침없이 상승했고 결국 뇌출혈을 일으켰습니다. 그의 뇌는 뇌사상태에 빠지고 말았죠. 이건 모두 단체의 계획이었습니다. 단체는 심한석이 의사로서 가진 사명감이나 도덕성을 이용했죠. 그의 성격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자기가 가진 모든 기술을 동원해 예고르를 살리려 했을 테니까요. 그리고 박사는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박사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예고르를 살리고 싶었죠. 하지만 어떠한 방법도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어떻게 해야 되는지도 몰랐죠. 뇌사 상태의 인간을 고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요. 박사는 그저 예고르의 뇌속에 유영하며 절망적인 무기력함과 한계를 느끼며 죄없는 청년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단체는 청년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애시당초 이런 경우의 수를 고려해 외국인 불법 체류자인 예고르를 섭외했던 것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박사는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매일 밤마다 술에 빠져 지냈죠. 그렇게 수개월을 폐인처럼 지내던 그가 정신을 차리고 향한 곳은 생전 예고르가 계약서에 남겨 놓은 집주소였습니다. 박사는 그 외딴 섬마을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예고르가 남긴 작고 예쁜 아기와 그가 사랑했던 아내를 보았습니다. 멀리서 그들을 한참이나 지켜봤죠. 하지만 용서는 빌지 못했습니다. 예고르의 옷과 약간의 현금, 그리고 짧은 손편지를 남기고 사라졌죠. 그의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박사는 더 이상 뇌실험을 하지 않게 되었죠.


 저는 이 자리를 빌어, 예고르씨에게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빛줄기들은 아름다운 미소를 가진 청년 예고르의 모습을 묘사해내고 있었다. 관객들은 묵념하듯 침묵을 유지했다. 사회자 역시 고개를 숙이며 짧게 애도를 표했다. 기자단은 예고르를 향해 열심히 플래시를 터뜨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적 이상 기후 여파로 동북아시아의 여름 기후가 급격히 상승했었죠. 각종 질병들이 등장했죠. 남미와 아프리카로부터 건너와 변이 된 지카 바이러스는 한반도의 아이들을 집어삼켰습니다. 감염되는 순간 잠복기도 없이 발열이 시작됐고, 바이러스는 무서운 속도로 아이들의 말랑한 뇌를 갉아먹기 시작했죠. 바이러스는 영유아들의 뇌에 침투해 고열과 발달장애를 일으키고 사망에 이르게 했습니다. 단체는 박사의 실험 실패 이후 유아 백신 사업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변이를 거듭한 바이러스는 점점 영유아 사망률을 급증시켰고, 전 세계적인 출산율 하락 현상으로 이어졌죠. 항간에 인류의 종말이 싹이 피었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을 때, 단체 역시 유아 백신 개발 사업에 집중을 하고 있었습니다


 실험체에 쓰이는 아이들을 모으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모두 태생부터 순탄치 않았던 아이들이었죠. 대게 고아나 성범죄에 의해 출생한 아이, 혹은 근친상간 등이었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만 7세까지 실험에 쓰였고 대략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실험실을 드나들었습니다. 단체는 아이들이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모든 학비와 양육비를 보육시설에 지원하며 부담했죠. 물론 7세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실험체들에 한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부모에게는 이러한 지원 혜택을 소개하며 유혹했죠. 상당한 금액도 지불했습니다. 그 덕분에 실험체로 쓰일 아이들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아이들은 주로 신종 알레르기 바이러스에 관련된 신약 개발 실험에 쓰였죠.   


 '그 아이' 역시 단체에 인계되자마자 실험에 투입되었습니다. 박사가 그 아이를 만난 건 예고르가 죽고 난 반년정도가 지나서였죠. 다섯 살의 작고 야윈 그런 평범한 남자아이였죠. 박사가 담당하는 그곳에는 그 아이를 포함해 수 백명의 아이들이 모여있었죠.


 아이는 근친상간을 통해 세상에 나온 아이였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던 모양이었죠. 아이에게 이름이 있었다면 부모에게 있어 그들의 과오를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을 테니까요. 아이는 보통은 ‘야’ 혹은 ‘너’로 불렸습니다. 아이는 잘 울지도 않았죠. 하루 수십 개의 주삿바늘이 그의 살을 찔러대고 실험 부작용에 끔찍한 구토와 복통에 시달려도 말입니다. 울고 불고 떼를 써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 걸 일찍이 알고 있었으니까요. 박사는 이름도 없고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 그 로봇 같은 아이에게 묘한 연민을 느꼈습니다. 일부러 신경을 써줬죠. 덕분에 아이도 박사에게 점점 의지했습니다. 아이는 몸소 훌륭한 실험체가 되어 싫은 기색, 아픈 기색 하나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박사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고, 도움이 되고 싶었거든요. 한편으로는 또 버림받기 싫었을 수도 있었겠죠.


 그러던 어느날, 실험실 연구원 중 한 명이 실수로 다량의 변이 지카바이러스 생백신을 아이에게 투약합니다. 아이는 바로 의식을 잃었죠. 고열과 함께 맥박이 희미해져갔고 상태는 점점 악화되었습니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 아이를 바라보는 박사의 머릿속에는 예고르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살려야 한다'


 당장 아이의 뇌를 통해 퍼지게 될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아야 했습니다. 방법은 결국 하나 밖에 없었죠. 박사는 아이를 업고 나노 봇 실험실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아이와 자신을 나노 봇을 이용해 연결했고 원격 제어 프로그램을 실행시켰습니다. 그리고 나노봇이 들어있는 액상 캡슐을 개봉해 자신과 아이의 귓구멍에 주입해 동기화를 진행했죠. 박사가 아이의 뇌를 확인했을 때, 이미 바이러스는 아이의 뇌신경을 거쳐 온몸으로 퍼져나가려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박사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모든 수술을 혼자 진행해야 했습니다. 박사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놓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뇌세포를 전염시킨 바이러스들을 동결시키려 했습니다. 하지만 걷잡을 수 없이 증식되는 바이러스를 전부 급속 냉동시킬 나노봇의 수량이 턱 없이 부족했죠. 설령 바이러스를 모두 얼린다 하더라도 아이의 뇌에 치명적인 손상을 초래할 수도 있었죠.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고 이대로 둔다면 아이의 생명 역시 위험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나노봇을 통해 바이러스를 치료할 방법은 없었죠. 그리고 그때, 박사의 머릿속 마지막 한 가지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바이러스를 이용하는 것이었죠. 하지만 그건 치료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떠올린 방법은 치사율이 없는 다른 생백신들로 기존에 있던 지카 바이러스의 생백신을 상쇄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적어도 변이 지카 바이러스들만 죽는다면 아이의 생명은 유지할 수 있을테니까요. 즉, 바이러스를 다른 바이러스들로 치환하겠다는 말이었죠. 아마 그는 생명의 고귀함보다는 자신이 느낄 죄책감이나 무기력함을 더 두러워했던 모양이었죠.


 박사는 나노봇 프로그램을 중지하고 렘수면 상태에서 깬 뒤 다른 생백신들을 가져와 아이에게 주입했습니다. 백신을 품은 나노봇은 순식간에 뇌세포에 자리 잡았고 마치 아이의 뇌에 있던 바이러스처럼 똑같은 방식으로 증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양 바이러스는 아이의 몸안에서 충돌했고 치열한 사투를 벌였습니다. 박사는 투입시킨 바이러스들이 죽을때마다 계속해서 양을 조절하며 다른 질병의 생백신들을 투약했습니다. 두번, 세번, 네번, 그리고 다섯 번, 이름도 모를 바이러스들이 투약되었습니다. 그러자 변이 지카 바이러스는 서서히 중화되듯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박사의 예상대로 슈퍼 지카 바이러스는 또 다른 균들에 의해서 완전히 대체되었습니다. 아이는 그렇게 기적적으로 살아났죠. 동기화를 해제하고 접속을 종료한 박사는 다시 한번 자신의 두 눈으로 아이의 심박수를 확인했습니다. 아이는 의식이 돌아왔지만 동시에 피부는 검붉은색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원인도 바이러스의 시작이었죠. 박사는 밀려오는 죄책감에 아이를 부둥껴 안으며 한참을 소리 내어 흐느껴 울었습니다.


 박사는 그날 이후로, 단체를 탈퇴하고 모든 백신 실험에서 손을 떼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단체는 그의 탈퇴를 순수히 받아주지 않았죠. 단체는 그를 회유하고 설득하려 들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단체는 조건 하나를 내세웠습니다. 그 조건은 박사가 개발하고 이루어낸 모든 뇌공학 치료에 관한 기술들을 단체에 넘기고 데이터를 삭제하는 것, 그리고 그의 뇌 속의 기억 혹은 이론들 역시 시술을 통해 모조리 지우는 조건이었습니다. 이건 분명 일종의 협박이었죠. 하지만 박사는 단체의 조건을 받아들였습니다. 대신 한 가지 조건만 더 걸었죠. 그 아이를 자신이 데려가 입양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체 역시 제안을 승낙하고 그를 놓아주었죠. 그리고 실제로, 단체는 그가 갖고 있는 모든 데이터와 자료들을 회수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차가운 실험실에 눕혀져 환자의 입장으로 깊은 렘수면에 들어갔죠. 그가 나노 봇들은 박사의 뇌 속에 들어갔습니다. 나노 봇들은 해당 기간 동안의 기억과 회상을 할 수 없도록 해마 속 일부 시냅스를 변형시켰습니다. 박사는 그동안 쌓아온 해당 분야의 지식과 이론들이 완전히 삭제된 체로 수면에서 깹니다. 그리고 그가 바라던 대로 단체로부터 나오게 되었죠. 박사는 아이를 데리고 곧장 집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아이에게 작은 곰인형 하나도 사주었죠. 그리고 인형의 이름을 본떠 아이에게 테디라는 새 이름도 지어주었습니다. 박사의 가족은 테디를 거두어 주었습니다.


 "오늘부터 네 이름은 테디야. 너는 이제부터 우리 가족이야. 내가 아빠고, 여기는 엄마, 그리고 네 누나야. 잘 부탁해."


 양 부모와 누나의 보살핌 아래 점점 안정을 찾은 테디였지만 부작용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져갔습니다. 테디의 얼굴과 몸 곳곳에는 항상 피고름이 나왔고 동시에 살점이 떨어지는 듯한 고통도 느꼈죠. 테디의 피부 조직은 이미 재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얼굴은 살점이 흘러내려 눈코 입의 피부조직이 제멋대로 엉겨 붙어있었고 팔, 다리를 비롯한 전신은 심한 화상을 입은 것처럼 흉터 투성이었습니다. 그의 두피는 곳곳에 검붉은 흉터로 뒤덮여 있었고 그중 희미하게나마 머리카락들이 듬성듬성 자라나 있었죠. 그런 외모때문에 테디는 어릴적부터 줄곧 괴물이라고 불려야했습니다. 또래 아이들도, 심지어는 다른 학부모들도 그를 괴물로 취급했죠. 그럴 때마다 테디를 감싸준 건 누나였습니다. 그녀는 항상 테디를 괴롭히는 친구들을 찾아가 싸우고 혼내주었죠. 테디는 그런 누나에게 많이 의지하고 또 안정을 느꼈죠. 둘에게는 공통된 취미도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바로 아주 깊은 바다에 서식하는 심해어를 좋아한다는 거였죠. 테디는 특히 심해어를 보며 마음의 안정을 얻었습니다.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것이었죠. 빛이 전혀 투과되지 않는 어두운 수심과 일반 생물은 견디지 못할 정도의 압력까지 견디면서 굳이 그 깊은 바다 공간에서 살아가야 하는 그들에게 왠지모를 특별한 의미부여가 되었거든요.   


 "초롱 불빛 아귀, 이건 누나가 제일 좋아하는 심해어야. 발 광어 심해어종인데…"

 "그 얘기 벌써 몇 번째야.”

 “무슨 일 있었어?”

 “아니.”

 “아닌게 아닌데?”

 “중학교 입학하면 조금은 기대했는데, 똑같아. 나를 괴물로 보는 눈."

 "……여기 이 이마 쪽에 달려있는 촉수 끝에 ‘에스카’라고 불리는 주머니가 있는데, 사실 초롱 아귀 스스로는 발광하지 못한대. 대신 항상 발광하는 박테리아를 이 에스카라는 주머니에 넣어 갖고 다니는 거지. 그래서 걔네들이 빛을 내는 거야. 너무 근사하지?"

 "아니, 징그럽게 생겼어. 꼭 나 같아. 저렇게 징그러운 얼굴인데 굳이 빛을 내면서까지 자기를 알릴 필요가 있나. 물고기들 다 도망가겠네."

 "아니? 그 반대야. 오히려 깜깜한 심해에서 빛나는 그 빛을 보고 홀린 물고기들이 초랑 아귀 앞에 잔뜩 몰려들어. 그리고 초롱 아귀의 먹잇감이 돼."

 "그럼 쟤네가 나보다 낫네, 난 이마에 빛은 없는데.”

 "없어도 돼."

 "누나도 솔직히 내가 괴물 같지? 누나도 내가 누나 가족이 아니었으면 나 싫어했을 거야. 다른 애들처럼. 그치.”

 “글세, 좋아했을걸? 내가 초롱 아귀를 제일 좋아하는 것처럼. 있잖아, 나는 나중에 말이야, 꼭 심해어나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하고 연애하고 결혼할거야.”

 "진짜? 왜?"

 "재밌잖아."

 "겨우 그게 다야?"

 "아니 뭐,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사람은 분명 깊은 곳을 들여다 볼줄 아는 사람일거야. 우리가 못보는 세계를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테디."

 "응?"

 "내가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줘."

 "알겠어."


 테디의천재성은 생명 공학이나 여러 과학 분야에도 두각을 나타냈죠. 중학생때는 각종 국제 학술 대회의 논문들을 탐독할 정도였습니다. 박사를 비롯한 가족들 역시 그런 테디를 꽤나 자랑스러워했습니다. 그리고 사실, 테디는 자신 스스로도 궁금했습니다. 뭐랄까, 그건 상당히 희한한 경험이었거든요. 이를테면 분명 한 번도 듣도 보도 못했던 지식이나 이론인데 갑자기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이해가 돼버리고 깨닫는 그런 현상 말입니다. 마치 원래서부터 알았던 정보를 기억해낸 것처럼 말이죠.


 시간이 조금 흘러 테디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테디에게도 첫사랑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불행의 싹이었습니다. 첫사랑의 상대는 다름 아닌 그의 누나였죠. 테디는 테어나 처음으로 사랑 고백을 했습니다. 장난치지 말라며 웃는 누나의 표정을 보며 테디는 다시 한번 진심을 담아 "사랑"이라는 말을 입밖에 꺼냈습니다. 그리고 누나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죠. 돌변하는 그녀의 표정을 본 고등학생의 테디는 자신의 외모에 대한 피해의식에 또 한 번 사로잡혔습니다. 테디는 서러움에 눈물이 앞을 가렸고 곧 분노를 표출했죠. 하지만 누나의 표정은 차갑게 식어있었습니다. 그녀의 예쁘고 착한 얼굴이 어느새 모멸감에 사로잡힌 눈빛으로 변해있었죠. 그제 서야 테디는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누나의 표정을 처음 보았거든요. 누나는 벌벌떨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테디가 다가가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을 쳤죠. 얼마 뒤, 학교에는 남매의 이야기가 소문으로 퍼졌고 곧 테디의 양 부모의 귀에도 들어가게 되었죠. 며칠 뒤 박사는 테디의 방에 있는 짐을 지하실로 옮겨 분리시켰습니다. 그날 이후로, 가족들은 테디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점점 유령 취급하기 시작했죠. 대화는 물론이고 식사도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테디의 누나 역시 그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곤경에 처해도 더 이상 개입하지 않았죠.


 그리고 어느날, 누나의 피부에 붉은 반점이 떠올랐습니다. 테디의 피부병이 기나긴 잠복기를 뚫고 전염성을 띄우기 시작했던 거죠. 박사와 아내는 절망했습니다. 어머니는 테디의 뺨을 세게 후려쳤고 그에게 온갖 저주와 악담을 퍼부었죠. 박사는 아내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그 역시 테디에게 차가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죠. 그 날 이후로 누나는 방에 들어가 테디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이제 가족 모두 테디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박사는 우선 테디를 집 지하실에 격리시켰습니다. 테디는 방호복으로 무장해 식사와 물을 제공하는 박사를 빼고는 그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었죠. 박사는 지하실을 오가며 그에게 밥과 물을 제공했습니다. 


 약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한 새벽 날, 방호복으로 무장한 심박사가 테디를 깨워 차에 태웠습니다. 박사가 향한 곳은 바로 예전 테디와 박사가 머물던 단체의 실험 지역이었죠. 박사는 아직 단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옛 동료의 도움으로 그 곳의 상엄한 경비를 뚫어냈습니다. 실험실에 도착할 때까지 박사는 테디에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습니다. 테디 역시 겁에 질려있었고 그 어떠한 말도 박사에게 걸지 않았죠. 박사는 냉기가 도는 어두운 통로를 익숙한 듯 통과했습니다. 박사의 뒤를 밟는 테디는 중간중간 코를 찌르는 실험실 특유의 독한 약병 냄새에 잊고있던 지난 날들이 떠올랐습니다. 공포감에 휩싸였죠. 그렇게 실험실에 도착했습니다.


 박사는 주저 하지 않고 나노 봇 실험을 준비했습니다. 박사의 지시대로 테디는 차가운 수술대에 누웠습니다. 어느새 나노봇 용액은 그의 귓구멍을 타고 스며들어 갔습니다. 서서히 잠에드는 테디를 향해 박사는 그제 서야 처음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머리 쪽만 스캔하고 금방 끝날 거야."


이어서, 마지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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