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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X세기소년 Mar 04. 2022

Dream Club #8

김치 미러

 [테디는 깊은 잠과 함께 꿈을 꾸었습니다. 짙은 암흑의 공간 안에서 심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죠.


 "테디"

 "아빠?"

 “정신이 좀 드니?”

 "여기 어디예요?”

 “네 꿈이야. 엄밀히 말하면 넌 수면 중이야. 내가 네 머릿속에 들어온 거고."  

 "아버지 논문에서 본 적이 있어요. 체내에 투입시킨 루시드 드림 치료 기술."

 "그래, 맞아. 미안하게 됐구나.”

 "아니에요."

 "나도, 엄마도, 그리고 네 누나도 참 우리 모두 고통스러웠어."

 "저 때문이었죠."

 "아니, 다 선택이야. 내 선택이었어. 결코 네 탓이 아니야. 걱정하지 마. 나도 서툴고 이기적이고 또 부족했지."

 "늘 감사하게 생각해요. 저는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여기 있었을 거예요. 아니면, 여기서 죽었겠죠."

 "......" 

 "저를 치료해 주시는건가요.”

 "맞아. 네 병을 치료를 할 거야. 완치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더 악화되거나 전염균은 억제시킬 수 있을 거야. 너한테 얻은 생백신으로 누나 역시 치료할 생각이고. 지금 치료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오직 이곳에서 너와 나만이 가능해. 그러니깐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것만 끝나면 너도 앞으로 죄책감 같은 거 갖고 살지 않아도 돼."

 "네. 감사해요. 저, 근데 궁금한 게 있어요."

 "응, 말해봐"

 "저희는 다시 못 보는 건가요?"

 "......"

 "그래."

 "왜죠?"

 “미안해 테디. 우린 어쩌면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할 운명이었어. 오늘 이 선택은 지금 우리가 가진 경우의 수에 있어 최고의 선택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 너는 누구보다 똑똑하니까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했으리라 생각할게."

 "누나도 알고 있나요?"

 "아니, 근데 걱정하지 마. 내가 잘 설명할 거야. 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언제까지 떨어져 지내야 하죠? 제가 완치되면 볼 수 있나요?”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우리가 너를 볼 일은 두 번 다시없을 거야. 네가 항상 행복하기를 바랄게.”

 "아빠 제가 잘못했어요. 같이 있어줘요."

 "나도 최선을 다했어. 너의 보호자로서, 나 역시 끝까지 책임을 지려고 했어. 하지만 나에게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부분이 있더구나. 괴로웠어. 그리고 결론을 내렸지. 난 너에 대한 모든 책임을 이미 다했다고. 가혹하지만 어려웠던 결정인만큼 번복하지는 않을 거야. 우리는 애초에 남이었으니까.”

 “어디 계세요? 저랑 마주보고 이야기해요. 이러지 마세요.”

 “네 병이 더 이상 전염성을 띄지 않고 앞으로 네 인생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도록 책임지고 치료할 거야. 이건 내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해. 네가 잠에서 깨면 나는 없을 거야."

 "아빠! 우리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제발 무섭게 이러지 마세요.”

 "일어나면 공항으로 가. 여권이랑 비행기 티켓도 다 준비해 놓았어. 그 외 네가 성인이 될때까지 필요한 것들도. 나는 네 아빠가 아니었어 처음부터. 너도 시간이 지나면 나를 이해할 날이 오겠지. 미안해 테디. 다시 한번 네가 진심으로 행복하길 바랄게.”


 박사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대화는 끊겼습니다. 테디는 울부짖으며 계속해서 심 박사를 찾았죠. 그가 잠에서 깬 곳은 국제 공항 근처의 호텔이었습니다. 테이블에는 여권, 비행기 표, 테디의 이름 앞으로 된 현금카드와 통장, 그리고 미국 대학의 입학 원서가 놓여 있었죠. 테디는 그제야 악몽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사회자는 잠깐 진행을 멈추었다. 그는 테디의 이야기에 심취한 듯, 기나긴 사이를 이어갔다. 차분했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렇게 미국으로 건너간 테디는 자신의 천재성을 완전히 만개시켰습니다. 스물다섯 살이 되었을 무렵그는 이미 대학에서 다양한 과목들을 공부하고 있었죠. 의학, 화학, 생명공학, 컴퓨터 공학 등 다수의 학위를 닥치는대로 따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몰두할 것들이 필요했습니다. 학습 능력 역시 뛰어난 그였지만 동시에 사랑했던 이들로부터 버림받은 기억을 잊고 싶었거든요. 테디의 집중력은 놀라웠습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학습능력을 보이고 각 전공 과목에서 모두 수석을 차지하고 있었죠. 일부 과목들은 일년만에 조기 졸업을 마치고 석 박사 과정에 들어가기도 했죠. 그는 동시에 자신이 왜 그토록 많은 학문들에 있어 압도적인 학습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건 바로 박사가 쌓아온 지식의 축적이 테디의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기 때문이었죠.]


 홀로그램의 빛줄기들이 다시 한번 나노봇이 뇌에 심어지고 용해되는 과정을 그려내 관객들을 향해 보여주었다. 그리고 심한석 박사의 시점으로, 그의 옛시절을 회상해 표현해내고 있었다. 방안에는 정부측 연구진들과 심한석 박사가 서로 날이 선 논쟁을 벌이며 대치하고 있었다.


 [심박사가 정부 단체에서 근무하던 시절, 그의 마음 한켠에 하나의 불안감을 갖고 있었죠. 지식에 대한 소유욕과 집착이었습니다. 언제라도 누군가가 자신의 뇌공학 치료 기술과 지식에 관한 모든 데이터를 회수하거나 강탈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죠. 그 역시도 일평생 쌓아온 자신의 위대한 연구 업적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박사는 나노봇을 이용해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모든 데이터를 어린 테디의 머릿속에 옮겨 놓았던 것이었죠.


 이건 결코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각 분야의 심화된 학습에 몰두할때마다 관련 지식에 연관된 박사의 기억이나 감정들도 중첩되어 테디의 머릿속에 상기되었죠. 마치 자신이 직접 경험한 것처럼 말입니다. 알다시피 그 기억들은 그다지 좋은 기억들이 아니었습니다. 초기 단계의 나노봇, 세계 최초 치매 환자 치료, 수많은 생체 실험, 영유아 수용소, 젊은 외국인 노동자의 죽음, 그리고, 테디 자신에 관한 기억 역시 선명하게 존재했습니다. 테디는 심박사의 기억속에 남아 있는 근친상간을 통해 출생한 자신의 모습을 보았죠.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이 끔찍한 병을 얻게 되었는지까지 말입니다. 달리 말해 테디는 심 박사를 위한 대형 클라우드였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된 테디의 가슴속에는 큰 증오와 절망이 자라나고 있었죠.


 테디의 잠재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던 기억의 조각들은 서서히 맞춰져 갔습니다. 테디가 느끼는 괴로움과 공포는 극단적인 시도를 하려고 했죠. 그럴 때마다 그를 유일하게 버티게 해 줄 수 있는 건 ‘꿈’이었습니다. 숨면 중에 누나가 나오는 꿈이었죠. 선명한 꿈이었습니다. 깊은 바닷속, 테디와 그녀는 거대한 통유리로 덮여있는 안락한 공간에 머물렀죠. 창 밖에는 각종 심해어들이 돌아다녔죠. 그리고 어느 순간 그 꿈은 개연성 없이 뒤틀리거나 증발하곤 했죠. 보통의 인간들이 수면중에 꾸는 그런 평범한 잠자리의 꿈처럼 말입니다. 테디는 그 꿈으로 버텼어요. 옛 시절의 누나를 그리워하면서요. 그 당시 테디는 그 꿈을 꾸기 위해 살았습니다. 독한 브랜디나 위스키를 먹고 최대한 빨리 잠에 드는게 행복이 되어버렸죠. 그에게 대부분 깨어있는 시간은 고통이었으니까요.


 결국 참다 못한 테디는 박사의 지식을 동원해 나노봇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렘수면 상태를 관찰했죠. 먼저 꿈에서 누나가 나타나는 시간대와 주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렇게 해당 시간대에 접어들어 누나가 나타나면 테디는 직접 뇌에다가 감마파의 증폭을 유도하는 약물을 주입했죠. 스스로 자각몽 상태에 이르게 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렇게 꿈에서 누나를 마주했습니다. 이제 테디는 어느 정도 자신의 언행을 통제할 수 있게 되었죠.


 테디는 그 정도로 안주하지 않았습니다. 누나를 위해 아주 정교한 해저 벙커를 설계하기 시작했죠. 먼저 바닷속 공간을 프로그래밍했죠.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아주 작은 데이터로 압축시켜 나노 봇에 저장했습니다. 테디의 귀를 통과한 나노 봇은 뇌로 흘러 들어갔고 데이터는 테디의 뇌 속 시냅스에 전송되었습니다. 그렇게 테디는 매일 밤 꿈속에서 아주 넓고 깊은 어두운 심해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어릴 적 누나와 테디가 꿈꾸던 그런 상상속의 공간이었죠. 투명하고 넓은 통유리로 뒤덮인 심해 속 풍경은 테디가 디자인한 조명들에 의해 비추어졌습니다. 각 종 희귀한 해양 생물들 역시 테디에 의해 대거 탄생되고 있었죠.


 이후 테디는 점점 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하루 종일 자신이 설계한 벙커를 현실적으로 꾸며내는데 몰두했죠. 하지만 꿈속에서 그의 의식이 강해질수록 누나는 그의 꿈에 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죠. 결국 누나는 테디의 무의식 중 한 조각이었으니까요.


 테디는 어떻게든 누나를 꿈속에서 마주하고 싶었습니다. 테디는 자신의 뇌 속 시냅스에 저장되어 있는 누나에 대한 기억을 끌어와 수면 중 구현시키려 했죠. 하지만 1천조 개가 넘는 시냅스 중 누나에 관한 기억만을 추출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죠. 심해 속 벙커는 만들어졌지만, 누나를 자주 볼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그 공간 안에서 하릴없이 그녀만을 기다렸죠.


 그렇게 어쩌다 테디의 꿈에 나타난 누나는 그 공간 안에서 하루 종일 행복한 얼굴을 하고 심해의 풍경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날 밤 꿈속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암컷 초롱 아귀 말고 다른 물고기는 없어? 누나가 나보다 심해어종은 더 많이 알잖아."

 "글쎄, 나는 네가 알고 있는 만큼 내가 대답할 수 있어."

 "무슨 소리야. 누나는 심해어만큼은 유일하게 나보다 더 많이 아는 분야라고 했어."

 "나는 네 누나가 아니잖아. 그저 너의 기억의 일부분이지."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내가 저번에도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지."

 "미안,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그러면 네가 더 정확하고 강한 의식을 심어줘. 나는 나의 기분을 헤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분명히 알아둬. 이건 온전한 너 자신의 일부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디의 눈앞에서 누나의 피부가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마치 테디의 피부병을 옮아 성인이 된 그녀의 모습이었죠. 두피에는 흉터가 자리 잡고 있었고 얼굴 피부는 살점이 떨어져 나갈 듯 피고름 범벅이 되어갔죠. 손톱은 온데간데없고 대부분의 신체의 피부가 궤사 한 듯 갈라졌고 하얗고 빨간 흉측한 균열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하지 마!"


 테디는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질렀습니다. 들고 있던 유리컵을 벙커의 창문을 향해 힘껏 내던졌습니다. 의자, 접시, 조명등 뭐든 손에 잡히는 것들을 힘껏 내던졌죠. 모든 것들은 이내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게임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누나가 힘겹게 말했습니다.


 "이건 현실이 아니잖아. 결국 네가 만든 꿈 조각이지. 난 그 안에 다른 모습을 한 또 다른 너이고. 이건 온전한 너야."

 "그만해. 제발."


 그가 만들어낸 누나의 모습은 결국 테디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신의 무의식에 지나지 않았죠. 현실의 그녀는 결코 그 꿈속에 살지 않았으니까요. 그녀는 더 잔인하고 고독한 현실을 테디에게 상기시켜 주었죠. 아무리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어도 결국 그가 설계한 꿈은 관객 없는 일인극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건 결국 자기 자신과의 끝없는 비참한 대화였죠.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입혀도, 그가 갖고 있는 고독은 통제 밖의 일이었습니다. 테디는 그 상태를 인정하고 또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할 만큼 그녀가 그리웠으니까요. 그리고 또 얼마 뒤, 불쑥 찾아온 자신의 무의식을 마주한 테디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를 보는 건 너무 좋은데, 그게 나라는 사실은 너무 비참해."

 "나도 알아 그 마음."

 "알겠지 당연히. 너는 나인걸."

 "그러면 진짜를 초대해보는 건 어때? 공간도 확장하고 말이야. 아마 지금보다 더 큰 공간이 필요하겠지. 시간도, 노력도, 돈도 더 많이 쏟아부어야 될 거야. 하지만 잘만하면, 네 바람대로, 우리가 실제로 다시 만날 수도 있어. 네 인생도 새로 시작할 수 있어.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거지. 나도 네가 보고 싶을 거야."

 "......"


 테디는 자연스레 그녀와 키스를 나누었다. 홀로그램은 두 사람이 꿈속에서 나누는 키스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인상을 찌푸리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욕을 퍼붓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회자는 동요하지 않고 멍하니 그 홀로그램을 응시했고 다시 입을 열었다.


 [테디는 그렇게 자신의 무의식에서 해답을 찾아냈습니다! 또 다른 세계와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이었죠.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는 그런 공간 아니, 다른 세계를 말입니다.


 테디는 심 박사의 지식을 응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장애물이 많았죠. 천문학적인 데이터의 저장 공간이 필요했고. 더 세밀한 고성능의 나노봇 역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더 현실적인 문제는 막대한연구 비용과 인력이었죠.


 테디는 모든 학업을 중단하고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졸업한 대학의 교수들, 유명 개인 투자자, 기업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들에게 자신이 만든 프로젝트 계획서를 보여주었죠. 향후 생명공학에 큰 관심을 두고 있던 기업, 개인투자자들은 테디의 프로젝트 잠재력을 높이 샀습니다. 그들은 모두 비밀리에 공격적인 투자를 약속했고 대학의 교수들은 연구 인력들을 아낌없이 지원해주었죠.테디는 투자자들에게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현실은 두 개입니다. 하나는 지금 이곳, 물리적인 세계입니다. 다른 하나는 온전히 숙면을 취하는 동안 똑같이 마음대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저는 이것을 '드림 클럽'이라고 부를 예정입니다. 인간들을 가능하다면 두 번째 캐릭터를 만들려 들 겁니다. 이 프로젝트는 인류의 삶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다줄 겁니다." 


 본격적인 투자와 연구가 시작되고 테디는 연구진들과 함께 데이터 구축을 비롯하여 나노봇의 공정이나 뇌 시냅스 추출 실험 등에 모든 노력을 쏟아부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최적화된 나노 봇을 만들어 냅니다. 나노 봇의 성능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죠. 뇌에 침투한 나노봇은 즉각적인 화학반응을 일으켜 뉴런에 전기신호를 보냈고 초당 천억 개의 시냅스에 담긴 기억들을 추출해냈습니다. 게다가 예전 심 박사가 만들어낸 나노 봇보다 약 30배가 정도 더 축소된 크기였죠. 나노 봇들은 액상에 담겨 캡슐로 탄생했습니다.  


 그렇게 본격적인 공간 설계가 시작되었습니다. 각 분야 세계 최고의 건축가,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 그리고 모델링 설계 전문가들이 투입되었습니다. 천천히 그리고 아주 정교하게 모든 공간을 채워나갔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생태계 생물학자, 환경 전문가, 그리고 기상 전문가들을 섭외했죠. 그리고 실제 생물의 번식, 토양, 기후 등 자연 현상들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각 전문가들의 조언을 반영시켰습니다. 테디는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에 있어 "현실감"을 신앙처럼 강조했죠. 접속자가 조금이라도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용에 있어 모든 뇌 신경계를 활성화시켜 접속해 있는 인간의 오감을 모두 생생히 느끼게끔 했죠.


 약 십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마침내 그가 만들어낸 꿈속 공간은 완벽한 현실과도 같은 세상의 모습을 갖추게 었죠. 테디는 여전히 프로젝트의 기밀을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회사의 이름을 '테디 베어'로 바꾸었습니다. 자신의 이름, 그리고 ‘수면’과 ‘꿈’을 연상시키게끔 유도한 이름이었죠. 많은 투자자들은 테디베어의 드림 클럽 서비스를 당장이라도 상용화시키고 싶어 했지만 테디의 생각은 조금 달랐습니다. 먼저 베타 테스트를 진행하고 싶어 했습니다. 드림 클럽이 완성되자마자 그는 투자자들을 불러 모아 허락을 구했죠.


 "이 실험은 사실 제 작은 희망에서 출발한 결과물입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투자를 해주셨죠. 하지만 저는 아직도 확신이 서지 않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드림클럽이 상용화가 되기 전, 꼭 한국으로 돌아가 혼자 힘으로 베타 테스트를 진행해보고 싶습니다. 그러니 베타 테스트 모집이 진행되기 전까지는 해당 서비스의 기밀을 유지해 주십시오. 저는 제 고향인 한국에서 열리는 이번 국제 의료 학술회에 참가할 예정입니다. 거기서 드림 클럽을 소개하고 국내외 의료진들에게 정식으로 드림 클럽 베타 테스트에 대해 설명할 겁니다."   


 그렇게 테디는 한국에서 개최된 국제 의료 학술회에서 드림 클럽을 소개하기 위해 참석합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대학 병원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심 박사가 참석해 있었죠. 사실 테디 역시 박사가 학술회에 참가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신기술에 대한 학술 발표가 시작되었고 수많은 국내외 의료진들은 드림 클럽에 대해 연이은 찬사를 이어갔죠. 이 사실이 여론에 알려진다면 드림 클럽 베타 테스트의 국내 도입은 시간문제 같았습니다.


 "...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저희는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려 합니다. 다소 위험한 발상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드림 클럽은 비단 의료 기술을 넘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개발 과정에 있어 가장 큰 도움을 주신 저기 앉아계신 심한석 박사에게 조금이나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큰 박수 소리와 함께 모든 시선이 심 박사에게 집중되었습니다. 테디는 침묵을 유지하는 심 박사를 멀찍이 지켜보았죠. 심 박사는 끌어 오르는 분노를 겨우 참아 내고 있었죠.


 그리고 테디는 가장 의미 있는 일만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누나를 찾아가는 일이었죠. 하지만 정작 그녀 앞에 나타나려 하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누나는 어느새 한 남자와 결혼을 한 상태였죠.]


 사회자의 이야기와 동시에 홀로그램이 스튜디오의 청중들 앞에 형상화되었다. 테디의 뇌에서 추출한 기억을 시각화한 형상이었다. 테디의 시점으로 서서히 누나가 그려지고 있었다. 이어서 남성 한 명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모든 형상이 홀로그램들에 의해 구체화되자 관객들은 경악했다. 조오진. 남편의 얼굴은 조오진이었다. 관중들은 오진을 알아보고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사회자는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테디는 왠지 모르게 생기 없고 어두운 해미의 얼굴이 계속 신경이 쓰였습니다. 어릴 적 그와 함께 바다의 깊이를 가늠하며 심해 생물을 동경했던 순수하고 낭만 넘쳤던 학생의 모습은 남아 있지 않았죠. 테디는 그녀가 지금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답니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수면제를 복용해 자살 기도를 했죠. 그녀의 곁을 맴돌며 지켜보던 테디는 서둘러 신고해 연락을 했죠. 테디 역시 패닉에 빠졌지만 곧 한 가지 확신과 목표가 생겼습니다. 바로 "어떻게든 해미를 행복하게 해주자는 것"이었죠.  


 당시 해미가 실려간 응급실 안에는 저마다 다양한 사연의 응급환자들이 치열한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심 박사 역시 해미의 소식을 듣고 황급히 응급실에 찾아왔죠. 해미의 응급처치가 한창일 때, 테디의 눈에 교통사고로 피투성이가 된 모녀가 들어왔습니다. 얼핏 보아도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성은 머리를 크게 다쳐 의식이 없는 듯 보였죠. 테디는 그때 이상한 경험을 했습니다. 그 모녀는 분명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이었지만 테디에게는 굉장히 낯이 익었습니다.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죠. 모녀는 박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해미의 의식이 돌아온 것을 확인한 테디는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왔습니다. 연구실로 돌아와 나노 봇 용액을 자신의 귀에 주입해 모녀에 관한 기억들을 스캔했죠. 그건 심 박사의 기억이었습니다. 그 모녀는 예고르라는 외국인 남자의 아내와 딸이었죠. 예, 이전 에피소드에 소개된 상당히 비극적인 기억이었죠. 그제야 테디는 자신 앞에 놓인 이 일련의 사건들이 하나의 운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건 마치 테디에게 신의 개시와도 같았습니다. 테디는 내면으로부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건 그저 각자의 불행에 동질감을 느끼고 안도하는 그런 동병상련의 유약한 감정이 아니었습니다. 왜냐고요? 테디만이 그들에게 새 삶을 선사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아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드림 클럽을 원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죠. 테디는, 새로운 세계의 창조주를 꿈꿉니다.]


 사회자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격앙되었다.   


 [이틑날, 테디는 심 박사를 만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심 박사 역시 테디에게 할 말이 있는 듯했죠.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지. 지금와서 뭐 복수라도 할 계획인 거니?”

 "별 다른 뜻이나 해를 가할 목적은 없습니다. 학술회에서 설명드린 나노 봇 샘플, 박사님 댁으로 가장 먼저 보냈습니다."

 "착각하지마, 필요 없어. 앞으로도 마찬가지고."

 "필요하실 겁니다. 저는 박사님과는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삶을 주고 싶습니다. 이왕이면 불치병이나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좋겠죠. 그들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하는 거지요. 이건 안락사도, 안정제도 아닙니다. 그저 또 다른 세상이죠. 저는 지난 십 년 동안 이걸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현실입니다. 박사님께서 연구하셨던 뇌 치료법보다 훨씬 유용하고 널리 쓰일 수 있을 겁니다. 누구보다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셨던 분이니 잘 이해하시겠죠."

 "그건 네가 만든 게 아니야. 모조품에 지나지 않지. 넌 이게 정말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현실? 현실이 뭡니까? 또 정상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애당초 당신이 뇌공학 치료에 전념할 때, 당신은 현실적이었습니까? 또 정상적이었습니까? ‘현실’과 ‘정상’은 어떤 범주입니까? 당신은 결코 제게 좋은 인상을 준 사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보통의 인간들이 정의하는 ‘현실’이나 ‘정상’에 타협하는 인간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당신의 사고는 분명히 월등하고 뛰어났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보통의 전문의가 되어있군요. 당신은 그저 죽음을 연장하는 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네 놈 따위가 뭘 안다고 지껄이는 거지?”

 “다 알고 있죠. 잔뜩 두려움에 떨었던 당신이 내 머릿속에 심어놓았다는 모든 것들까지도요.”


 흥분한 테디의 언성이 높아지자 병원의 관계자들은 테디를 박사로부터 황급히 떼어냈습니다. 심 박사는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짓고 있었죠. 테디는 관계자들의 저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외쳤습니다.


"누구보다 그 기술의 활용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수면과 의식을 완벽하게 분리시켜 혼수상태의 환자들도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선생님께서 책임지고 고통스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단 한 번도요. 다시는 선생님 눈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단 한 번만이라도 제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바로 그날이었습니다. 조오진 씨가 드림 클럽에 흥미를 느끼고 테디에게 다가가 드림 캡슐을 받아간 날 말입니다. 조오진 씨는 그때, 아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그는 무척이나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아내에게 드림 클럽을 통해 또 다른 삶과 희망을 선사했죠. 그제야 모든 것이 올바르게 작동되고 있었어요. 해미가 있어야 할 곳은 드림 클럽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를 가장 사랑할 사람이 테디였으니까요. 테디가 아니면 해미는 결코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모두 알다시피 드림 클럽의 모토는 ‘나의 또 다른 공간’이었습니다. 늘 가장 강조되었던 부분은 바로 ‘현실 반영’이었죠. 드림 클럽은 자기 자신을 숨기고 탈바꿈하여 다른 생을 사는 곳이 결코 아닙니다. 테디는 혹시라도 그런 사람이 있다면 성형외과에 가는 것을 추천하겠다고 말하곤 했죠. 접속자마다 고유의 일련번호가 적혀있는 이유도 여기 있었습니다. 이곳은 ‘나’의 모습대로 존재해야 했습니다. 만약 접속자들이 자신의 형태를 제 멋대로 바꿀 수 있다면 이곳은 가식이 난무하는 가상공간, 혹은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여느 메타버스에 지나지 않게 되었을 테니까요. 그렇게 된다면 드림 클럽 장래는 물 보듯 뻔했죠. 그래서 인간의 성향과 외모만큼은 절대 무슨 일이 있어도 조작할 수 없게끔 설계했죠. 엄연한 실제 세계를 꿈꿨습니다. 아니, 그건 실제 세계였죠. 다만, 그동안 인간들이 잠에서 깨어 있는 시간 내내 쌓아온 자신들의 이야기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이를 테면 직업, 명예, 돈, 학력, 가족, 친구, 사랑 같은 것들이었죠.


 이에 따라 나노 봇은 각 이용자의 세포 유전자부터 세부적인 신체적 특징이나 결함까지도 명확히 스캔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그렇게 스캔이 끝나면 자신의 외모와 신체적 특징에 기반한 완벽한 현실 모습을 구현시켰죠. 여기서 결코 타협은 없었습니다. 어떠한 형태적 변형도 허용되지 않았죠. 개발 초기단계에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이렇게까지 철두철미할 필요가 있겠냐며 반론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꿈'이라는 어감에 걸맞게 어느 정도의 외형적 변형이나 환상적인 허용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죠. 접속자들은 분명 저마다 현실 속의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은 변형시키고 싶어 할 테니까요. 그 의견에 테디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건 변형이 아니라 왜곡이겠죠. 드림 클럽이 앞으로 수많은 도덕적 잣대를 뛰어넘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 자신으로서 존중받고 떳떳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결국 한낱 자극적이고 중독성강한 게임을 만드는 꼴이겠죠. 저는 단순한 프로그래머나 설계자가 아닙니다. 일종의 창조주죠.” 


 홀로그램들은 해미에게 다가가는 남성의 얼굴을 묘사하고 있었다. 오진이 마주했던 그 남자의 형상이었다. 마침내 남자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었고 사람들은 또 한 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해미에게 접근한 남성은 사회자의 얼굴이었다. 순식간에 곳곳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윽고 사회자를 향해 분노에 찬 조오진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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