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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시하 Jul 06. 2022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Op.35

<주간 모티프/Weekly Motif> 3호 2022.07.04

지난 폭우 기간 동안 모두들 안녕하셨나요?

All I desired was that the hearer, if he liked my piece as symphonic music, should carry away the impression that it is beyond a doubt an Oriental narrative of some numerous and varied fairy-tale wonders and not merely four pieces played one after the other and composed on the basis of themes common to all the four movements.
내가 원했던 것은, 만약 음악을 듣는 사람이 내 작품을 교향악으로서 좋아했을 때 단지 하나의 주제에 의한 네 개의 악장이나 독립된 작품들을 듣는다는 느낌이 아닌 다양한 동화 속 신비로운 동양적 서사라는 인상을 받는 것이다.
- Rimsky Korsakov



# 이 주의 모티프

림스키 코르사코프 Rimsky Korsakov '세헤라자데 Scheherzade Op35' 감상하기


Editor

이야기의 본질은 구비성에 있습니다. 옆에서 옆으로, 위에서 아래로 전해짐으로써 이야기는 생명력을 이어가죠. 그렇기에 그 내용은 결코 하나로 고정되거나 통일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고유성이 훼손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말하는 이 그리고 듣는 이에 따라 세부적인 사항들이 추가되고 생략되거나,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해석되는 것은 오히려 이야기하기의 가장 큰 즐거움이니까요. 그런데 더욱 즐거운 일은, 때로 어떤 이야기들은 내용 뿐만 아니라 형태 또한 색다른 모습으로 변형하고 발전되어 우리 앞에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테면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 Op.35> 처럼요.


 

《세헤라자데 Scheherazade Op.35》
I. The Sea and Sinbad's Ship : 바다와 신밧드의 배
II. The Kalandar Prince : 칼렌다르 왕자 이야기
III. The Young Prince and The Young Princess : 젊은 왕자와 공주
IV. Festival at Baghdad. The Sea. The Ship Breaks against a Cliff : 바그다드의 축제, 바다, 그리고 절벽에 난파하는 배



① 음악의 이야기성

《세헤라자데 Op.35》는 1888년 러시아의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Rimsky Korsakov)가 천일야화, 다른 이름으로는 아라비안 나이트(Arabian Nights)의 이야기에 근거하여 작곡한 교향곡입니다. 천일야화는 여러분이 흔히 아는 '알라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신밧드의 모험' 등 페르시아 및 이슬람 세계 각지의 설화들이 결합된 모험담 모음집입니다. 주인공 세헤라자데는 술탄 샤이아르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매일밤 재미난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그때 우리가 아는 바로 그 이야기들이 풀어나오죠. 그런데 림스키는 어떻게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내었을까요?

 우선 주인공들의 테마 멜로디 라인을 설정하는 것입니다. 1악장과 4악장 속에서 우리의 화자 세헤라자데의 테마 멜로디를, 그리고 위엄적인 술탄 샤이아르의 테마 멜로디를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 선율의 반복과 중첩을 이용하여 어떻게 인물들의 상황을 묘사하고, 감정선을 전개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는지 느껴보세요. 사실 우리는 익히 그 이야기의 엔딩을 - 술탄을 감화시킨 세헤라자데에게 마침내 찾아온 평화의 밤을 - 알고 있지요. 음악이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우리의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세헤라자데에게 어떠한 방식으로 그 안식의 밤을 선물하는지도 확인해볼 수 있을 거에요. 바이올린의 위태로운 한 줄기 음이 차분한 목관들에 포근하게 쌓여, 마침내 아주 익숙하고 안정감 있는 선율로 끝맺어지는 그 결말 말이에요. 그러면 우린 마침내 걱정 없이 잠든 세헤라자데의 얼굴을 볼 수 있답니다.



② 모티프의 활용과 확장

《세헤라자데 Op.35》는 짧고 캐치한 모티프의 변화와 발전이 두드러지는 작품입니다. 몇 가지 핵심적인 멜로디 라인들은 하나의 악장 속에서 혹은 악장과 악장을 건너서 서로 다른 악기에 의해 연주되기도 하고, 재구성된 화음이나 리듬의 모습으로 변형되곤 합니다. 또한 연주를 시작하기 앞서 지휘자가 "이 곡에는 모든 악기가 멜로디 주자이죠."라고 언급할 정도 각 파트의 악기들이 반드시 한번씩은 수면 위로 올라와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곤 합니다. 익숙해진 멜로디의 변화무쌍한 음색과 표현을 들려주는 것이죠.

 물론 전곡을 들으면 가장 좋지만, 시간이 없으신 분들께 저는 1악장과 4악장을 꼭 추천하고 싶어요. 특히 4악장 속에서 모든 악기가 빠른 속도로 달려가다가 멈춰선 한 순간, 트럼본과 호른 그리고 튜바 등의 낮은 성부 금관 악기 파트가 이전의 마치 2배 느리기로 메인 테마를 연주하고, 그 위로 현악기와 목관 악기가 높은 음역에서 질주하는 부분은 제가 이 곡에서 가장 사랑하는 대목입니다. "바다, 그리고 절벽에 난파하는 배"라는 4악장의 이름처럼, 마치 거대하고 높은 파도가 커다란 배를 덮치고 온갖 것들이 부셔지는 바다의 경외감을 체험할 수 있어요. 더욱이 그 멜로디가 긴 시간동안 여러 다른 악기에 의해 쌓이고 쌓여 마침내 이룩한 클라이막스이기에 더욱 감동적이에요. 때론 익숙한 것이 더 크게 다가오니까요.



③ 동양의 신비로운 세계, 색채

 짧은 음악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45분짜리 교향곡이란  어려운 대상입니다. 놀랍게도 《세헤라자데 Op.35》의 어느 부분을 재생해도 색채감 넘치는 오케스트레이션과 풍부한 리듬적인 아이디어를 느낄  있습니다.  힘은 디에서 오는 걸까요? 림스키 코르사코브에 따르면, 그는  곡을 통해 러시아를 포함한 서양의 국가들이 동양 세계에 대해 가졌던 신비로움의 환상과 낯선 풍요의 이미지,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표현하는 데에 집중했습니다. 그래서  악장을 들을 , 따로 독립된 이야기들의 집합이 아닌 통일된 하나의 신비한 세계관이라는 인상을 주고자 했습니다.

 수많은 장치들  특히 제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은, 대개 오케스트라에서 자주 등장하지 않는 타악기가 무려 7종류나 등장한다는 것인데요. 예술의 전당 음악당 2 좌석에서, 무대  뒷편에 일렬로 앉은 타악기 주자 7명이 일제히 일어나 연주하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은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더군요. 만약 직접  수는 없다 하더라도 현악기과 목관 악기가 서로 화답하는 소리, 금관 악기가 어떤 하나의 웅장한 세계를 펼쳐주는 소리, 하프의 간드러지는 소리와 각종 타악기들이 서로 채워주고 겹쳐지는 소리들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아요. 총보를 읽으며 감상하기에도 너무나 흥미진진하고 구성이 알찬 작품이니까요! 


## 이 주의 스토리 : 책

게일 헤일리의 동화 그림책 <이야기 이야기>

 여러분의 대부분은 아마 공감하실 거에요. 어릴 적 읽었던 짧은 동화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의 내용을, <알라딘>으로 개봉된 디즈니 만화 영화와 실사 영화의 감상 기억을, 심지어는 롯데월드의 '신밧드의 모험' 놀이기구에 탑승했다가 입고 있던 옷이 홀딱 젖어버린 경험까지도요! 바로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하면 새삼스레 놀랍지 않나요? 어떤 모양이든,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남을 수 있는 그 힘이 말이에요. 때로는 이야기의 시작이 어디인지는 특별히 중요하지 않아요. 그저 그 이야기가 그곳에 살아숨쉰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충분하죠.

 이러한 이야기의 힘은 비단 옛 페르시아만이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프리카에 전해 내려오는 옛이야기를 엮은 동화책 <이야기 이야기>를 아시나요? 거미 사람 아난스가 하나님으로부터 이야기를 사기 위해 하늘로 올라갑니다. 하나님의 비싼 값으로 이야기를 팔겠다는 말씀에 무시무시한 이빨을 가지고 있는 표범과 말벌, 눈에 보이지 않는 요정을 바치고 이야기를 사온다는 내용이죠. 제가 어렸을 적 읽었던 수많은 동화책 중에 가장 애정하는 책으로, 혹시 아직 못 읽어보신 여러분들께 추천합니다! 전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씩 꺼내읽어요.

이야기 이야기




### 이 주의 발굴 : 공연

신세계와 함께하는 '예술의 전당 토요 콘서트'

여자경 지휘자와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20세기  클래식을 청취하는 것이 중산층임을 암시하던 수상한 현상도 사라진 요즈음, 클래식은 대중과 너무 멀어져  자리를 잃은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대중음악에 오기까지, 절대적으로 풍부한 음악적 유산을 남겨준 클래식과 우리가 이렇게 등을 돌려도 괜찮은 걸까요? '신세계와 함께하는 예술의 전당 토요 콘서트' 저의 친구의 친절한 초대로 올해 초에 처음 가보았어요. 매월 셋째  토요일 오전 11시에 시작하며, 러닝 타임은 2시간-2시간 30 정도입니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단은 기간 별로 바뀌며, 연주에 앞서 지휘자 님께서 무려 PPT 곁들인 작곡가와 작품 소개를 먼저 해주신다는 점에서 클래식을  모르는 일반인에게도 활짝 열려 있는 곳이에요. 머리 아프기는 싫지만, 그래도 클래식을 알아가 보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혹시 모르죠.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작품을 만나는  순간, 당신조차 못말리는 클래식쟁이가 되어버릴지도요!




2022. 07. 04

글 한시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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