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연극 한 편을 보았습니다. 매우 이례적이게도 한 친구가 어느 날 연극을 볼 수 있냐고 물었지요. "영화도 잘 안 보는 처지인데 갑자기 연극이라니?"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또 그날따라 아무 이유도 묻지 않고 그러자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 제안은 이미 여러 사람의 거절을 지나쳐 온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요. 아니나 다를까 "그럴 시간 여유가 있는 놈이 누가 있겠냐?"라고 하더군요. 그것은 꼭 시간의 여유라기보다는 마음의 여유라고 생각했습니다. "돈의 여유가 없지, 마음의 여유가 없을소냐 말이냐!" 특별히 연극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랜만에 그 친구 얼굴을 관람하고싶었습니다.
덕분에 대학로에도 수년만에 나와봅니다. 옛날옛적에 소개팅을 자주 했던 장소 중의 하나였기에 기억에 남는 장소 중의 하나입니다."기억의 핫스팟?or 쿨스팟?"저만치 쯤에서 커피를마시며 샤랄라 분위기를 띄우고 이만치 쯤에서 파스타를 먹으며 로맨스를 꿈꾸었지요. 그리고 저쪽에서 이쪽으로꽃낙엽비가 나리는 구름길을 걸었더랍니다. 아직 손은 잡지 않았고 어색하지만 설레는 입김이 말할 때마다 하트 모양으로 뿜어져 나왔습니다. 전생의 기억이었던 걸까요? 그렇게 오래오래 걸었던 흔적은 이제 찾기 어려워졌을 만큼 많이 변해버렸습니다.
연극은그저 연극으로 생각하기에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영화만큼의 액션이나 뮤지컬만큼의 스케일이나 넷플릭스만큼의 재미를 찾기는 아무래도 무리겠지요. 그래서 그런지 배우들의 훌륭한 열정과 가까이서 호흡을 느낄수 있는 생생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아주 배꼽 빠지게 웃기거나 눈물 나게 감동할 정도는 아니라는 느낌이었지요. 한편으로는 쉽게 웃지 않고,애써 울지 않을 만큼 정서가 메말라서겠거니 하고도 생각했지요. 그런데도 이렇게 작은 무대와 매번 반복해야 하는 연기에도 불구하고 연극이 꾸준히 올려진다는 것은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었습니다.
보물은 무엇일까?
그것은 "뮤지컬이나 영화는 해 보지 않았어도 누구나 연극은 한 번씩은 해 보았을테니까" 라는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어릴 적 연말이면 학교에서 열렸던학예회 같은 곳에서였을까요? 삼삼오오 모여서 매년 연극을 준비했었지요. 요즘은 더 넓은 무대에 특수효과에 분장과 도와주는 부모님이나 선생님까지 다 있을 듯 보이지만 그때는 스스로 대사를 짜고 소품과 분장을 만들고 한집에 모여 몇날며칠을 늦게까지 연습까지 했던 일인 다역 순수 창작의 연극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연극이란 모두 다 주인공이었고 유치했겠지만 웃기고 신나는 일이었지요.
연극을 보고 나서 글을 쓰고 있고 보니 "아 우리는 한 편의 연극을 쓰고 있구나"라는 생각에와닿습니다.이제는 어릴 적과 같이 연극을 할 기회는 없어져버렸지만, 그 대신 연극을 만들 듯 하루하루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요. 그 글은 뮤지컬 같은 스케일 큰 소설이거나, 액션 영화 같은 대작의글이거나, 넷플릭스 영화 같은 거대 자본이 투입된 시리즈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글을 쓰는 작가도 있겠지만 우리가 쓰는 글의 대부분은 아주 배꼽 빠지게 웃기지는 않는, 눈물이 쏙 나게 감동적이지는 않는, 마치 작은 연극 같은 소소하고 그렇지만 가까이서 생생한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대사 같은 글들이지요. 그럼에도 마치 연극을 보듯그것을 또 꾸준히 읽어주는 독자가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것은 한 편의 작은 연극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작지만뮤지컬로도 영화로도 넷플릭스 대작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연극이지요. 그리고 연극의작은 무대 아래 꿈을 키우던 무명 배우가 성장하여 큰 무대로 발돋움하듯 한 편의 작은 글들로 시작하여 큰 책이 되는 꿈을 꾸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