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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mile Nov 16. 2024

존경하는 재판장님은 개뿔

feat 유어 아너

"존경하는 재판장님"


"존경하는 재판장님" 법정(드라마)에서 이런 말을 수 없이 많이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후렴구 아니 선렴구 처럼 장단을 맞춰 부르는 이 추임새를 왜 붙이는지 궁금했는데 이것이 외국에서 불렀던 "유어 아너(Your honor)"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더군요. 그 뜻을 코에 걸어서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전혀 존경하지도 않지만 판결 좀 유리하게 잘 봐달라는 알랑방구(아부)의 의미로 이 '존경하는'을 남발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존경과 존경하지 않음을 떠나 판결은 공정해야 하지요. 아무리 존경이 아니라 족발 같은 변사또님이라 해도 말이지요. 그런데 어디 그렇습니까?

손현주(찌질 판사)

여기에 그 존경하는 찌질이 재판장님이 등장합니다. 특히 손현주(송판호 판사)가 연기하는 찌질 연기는 기대했던 데로 찌질의 극치를 보여주는데, 낮에는 위엄 있는 척 판사로 호통치다가 밤에는 뺑소니도 살인사건을 감추어야 하는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찌질했던같지는 고 원래는 청렴결백, 청와대 영입 순위, 그야말로 존경받재판장인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뺑소니 사건을 일으키고 자신이 당사자가 되자 오직 아들놈을 지키기 위한 명분으로 살인과 증거인멸, 재판거래, 동료를 배신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온갖 찌질한 짓을 보여줍니다. 아무리 신과 같이 재판을 하던 인간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가를 여실이 나타내지요.

김명민 (절대지존 조폭회장)

그 맞은편에는 김명민(김강헌 회장)이 존재합니다. 손현주가 유어아너에서 찌질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바로 상대방이 판사의 권능으로도 맞설 수 없는 김명민이었기 때문이었지요. 조폭출신의 절대지존 사업가로 누구 하나 담궈버리고 발뺌하는 것은 일도 아닌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판검새들이 하도 나쁜 짓을 많이 해서 조폭두목을 오히려 응원하게 되는 이 기분은 무엇일까요? 그런데 하필 아들이 뺑소니 사고를 일으킨 것은 김명민의 아들이었지요. 존경이 족발이 된 순간입니다. 아들은 죽은 파리 목숨, 이제부터 판사라는 모든 권력을 이용하여 공정이고 뭐고 누가 죽든 말든 아들만 살리기로 합니다.

손현주 아들

문제는 아들은 이런 아버지와 달리 살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뺑소니는 우연이 아니라 사실 죽은 김명민의 또 다른 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벌인 일이었거든요. 그것은 그 또 다른 아들로 오래전 자살한 어머니의 복수를 위한 계획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손현주의 아들은 슬기롭게도 김명민의 딸까지 꾀어내어 이 복수극의 균형을 완성해 내지요. 아내의 죽음에 찌질하게 침묵했던 손현주에 비해 목숨을 건 아들의 선택은 비극적 결말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공정해 보이기까지 하니까요. 하지만 아버지 손현주는 아들을 지킨다는 명분아래 온갖 찌질함 끝에 불법과 불공정의 판결의 길을 가게 되지만 아들은 당당하게 죽기를 각오하고 절대 맞설 수 없는 거악 김명민과 맞다이를 까기로 합니다.

김명민 딸

결과는 안타깝게도 손현주의 아들은 김명민 와이프의 총에, 이 일로 인하여 김명민의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손현주는 예전에 자살한 와이프, 총 맞아 죽은 아들, 김명민은 뺑소니로 죽은 아들, 자살한 딸로 신은 2:2 판결의 균형을 맞추었지요. 그들에게 내린 형벌은 존경하는 재판장님 손현주도 절대지존 김명민도 가장 소중한 것을 잃고 자신은 살았지만 삶의 덧없음으로 원수였던 서로의 처지를 위로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드라마도 자식이 웬수,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교훈을 남기려는 것이었을까요?


"족발같은 재판장놈"


그보다는 '유어 아너'라는 제목으로 볼 때 '존경하지 않는 재판눈먼장님'의 현실을 찌질함을 통해 그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판사가 AI가 아닌 이상 얼마나 불공정하게 지 마음대로 판결을 조작하고 거래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지요. 한때 판사라는 직업은 신을 대리해 생과사 그리고 죄와벌판결하는 신적 권능을 부여받으며, '존경하는'이란 꼬리표를 이마붙이고 다녔었지만, 이제는 나약하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오히려 자신의 사익 앞에 악마에 판결을 파는 인간에 불과하다는데서 그런 호칭과 대우가 과연 필요한가를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때가 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전제는 그 무엇에도 불구하고 그 공정함의 신뢰에 기반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축구경기의 편파 판정 마냥 재판에서도 수 없는 불공정과 재판거래, 그때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른 불공정함이 난무한다면 "족발같은 재판장놈"으로 불릴 수밖에 없을 것이지요. 이제는 "존경하는 재판장님"의 문구를 빼야 될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미 법은 무너져 가고 있는 세상이지요. 따라서 질서도  녹아내릴 것이지요. 재판장님은 지 맘대로 찌질함을 달릴 것이지요. AI에게 결국 판결을 의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가는 자식이 웬수, 무자식이 상팔자, 결국 자식과 후대가 받을 것이라고 '유어 아너'의 신은 판결하고 있지요. 남는 것은 법을 지키고 싸워봤자 다 부질없는 덧없음과 허무함. 법이 곧 선은 아니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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