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옛적에 소녀시대라는 걸그룹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소원을 말해봐"라고 마치 들어줄 것처럼 노래를 불렀었지요. 그러나 이미 교육을 받은 어른이었기에 소원을 안 들어줄 것을 익히 알고 있었지요. 대게 대가 없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은 사기라고 배웠으니까요.
그리고 더 옛날옛적에는 '지니'라는 알라딘의 램프의 요정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요정이었는데 실사 리뉴얼을 거치더니 능글맞고 기가 막히게 노래를 부르는 '윌 스미스' 아재캐릭터가 되어 나타났었습니다. 그도 역시"소원을말해봐"라고 노래를 춤까지 춰 가며불렀었지요.이만하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사기 치는 데는 춤과 노래가 필요충분조건인 것도 같지요?
소녀시대
이렇게 소원은 말하거나 비는 것인데 소원을 포기해야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원더우먼 1984라는 영화였는데 쌍팔년도 레트로 감성이나 함느껴볼까 하고 보게 되었는데 내용은 허무맹랑에다 소원을 너무 많이 들어주고, 심지어는 램프를 문지를 필요도 없이 1984년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전파를 매개로 방송을 통하여도 소원을 들어주는 초등용 영화였지요. 특히 춤추지도 않아도 노래하지 않아도 소원을 들어주어 사기성이 농후했지만 단 하나 건질만한 것은 바로 "소원을말해봐"가 아닌 "소원을포기해 봐"에 교훈이 있었으니 초딩 교육용 영화 맞습니다요.
알라딘 지니
그래도 소원을 말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소원을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데서 생각할 꺼리가 생겼습니다. 비록 전달은 매우 유치하게 말도 안 되는 자수정의 빌런이 나타나서 인당 단 하나의 소원을 들어주는 게 가능한 능력을 얻게 되는데, 사람들도 이 가정이 영 허무맹랑했는지 제멋대로 욕망을 분출하게 되지요. 이를테면 개짜증나는 직장 상사를 당장 죽여 달라거나 돈벼락을 맞게 해 달라고 하거나 꼴비기 싫은 적국에 핵미사일을 날려 달라거나 하는 경우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욕망을 따러 마구 지껄인 소원이 실현되고 맙니다. 상사는 죽어 나가고 돈벼락을 맞고 실제 죽고 핵미사일이 발사되어 소원의 대가로 지구는 개판 5분 후다 같이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고 말지요.소원을 말했더니 이루어지긴 하는데 결과는죽음뿐이라는아이러니에 도달하는 거입니다.
원더우먼
이 아수라에서 벋어 나는 유일한 방법은 모두가소원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이루어진 소원인데 사람들은 욕망을 내려놓길 거부하지요. 소원빌런도 소원 요정이 된 능력이 아까워내려놓지 못하다가 결국 원수 같은 아들 때문에 결국 이 능력을포기하게 되고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결국 자식이 원수지요. 소원과 욕망을 포기해야 하는. 무자식 소원 빌런이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무너지진 않았을 텐데요. 그래서 신은 자식이라는 원수를 볼모로 안긴걸까요?
소원을 바라기만 했지 소원을 포기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마치 로또 당첨을 되돌리는 일처럼 선택하기 간단치 않은 일이지요. 그것은 탐욕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이라는 동기를내려놓는 것이고 당장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는 것이며 원수 같은 자식과 남편이나 아내를위하여 희생하는 것이라고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한편으로 소원을 포기하는 행위는 소원을 말하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고 고귀하게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남을 향해서는 한치도 양보하지 않던 소원을 원수 같은 자식 놈 때문에 포기하게 되는 결과는 아이러니하기는 하지만, 다 자식이 원수지요, 그 사랑이라는 가치는 더 많은 욕망과 더 큰 소원을 기꺼이포기하게되는 소원 이상의 것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애당초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소원은 탐욕과 권력이 아니라 행복이었을 테니까요.
하지만 "소원을 말해봐"라고 끊임없이 부추기는 사회이지요.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화가 나고 루저가 된 듯한 일이고, 행복을 위한 소원보다는 복수와 응징을 위한 소원이 더 구미가 당기는 것이 현실이니까요.
소원을 포기해봐
하지만 "소원을 포기해 봐"라고 말하고 싶네요. 소원을 포기할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고요. "많이 묵었다 아니가?" 포기해야 할 소원이 무엇일까요?소원을 포기하는 그 자리, 고통이 사라지고 또 다른 진정한 행복이 올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