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도시의 늦가을은 흐리다 못해 구름 이불을 뒤집어쓴 듯 갑갑한 날씨가 몇 주 동안 계속된다. 이 나라에 정착한 이후로 내게 피서는 선택이지만 피추(避秋)는 필수가 됐다. 작년 가을에 햇볕 충전을 위해 간 곳은 EU 국가에서 온 유랑자들이 노숙하며 사계절을 날 정도로 태양의 축복을 받은 스페인령카나리아 제도다.
섬의 구릉지대를 걷고 있는데 바나나 나무 사이로 눈에 익은 잎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토란이다! 대여섯 살 때 고향집 텃밭에서 본 이후로 40여 년이 지났는데도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카나리아 제도의 토란>
가난한 집안 형편에 뭐든지 남김없이 잘 먹던 나였지만 유독 좋아했던 음식이 토란국이다. 뿌리째 얻어 가고 싶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데 인적이라곤 안 보인다. 시내로 나와 우연히 들른 중국 식료품점에서 토란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몇 알 사서 집까지 공수해 왔다.
부엌에 토란을 펼쳐 놓고 옛 기억을 더듬어 고향에서 먹던 들깨 토란국에 도전해 본다. 토란 껍질을 벗기고 멸치 육수에 넣고 끓여 한 숟갈 떠먹는데, 예전만큼 포슬포슬하고 쫀득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없다. 그래도 오스트리아 사람들의 일상 음식인 그리스노켈수페(곡물 경단 스프)에 익숙해져 가는 내가 고향 음식을 먼 타국에서 다 해 먹다니 감회가 남다르다.
<들깨 토란국>
여담으로 결혼한 지 얼마 안 돼 시댁에서 연말 저녁 식사를 할 때다. 시어머니께서 삶은 돼지머리를 접시에 담아 내 오셨다. 다가올 새해 행운을 비는 오스트리아 풍습이라서 준비한 거였고 다들 보기만 하고 먹는 사람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돼지머리의 야들한 맛을 좋아했던 나는 망설임 없이 돼지 코를 얇게 썰어 먹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께서는 내가 먹는 모습을 보니 어릴 적에 친정식구들과 둘러앉아 먹던 생각이 난다며 뭉클해하셨다. 한 음식으로 서양인 시어머니와 내가 향수를 느끼고 공감을 한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한국에 계신 친정엄마는 요 몇 년 새 건강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 근년에 찾아뵀을 때는 이제 멀리서 딸이 와도 변변한 집밥 한 끼 못 해 준다며 마음 아파하셨다. 엄마의 깊은 손맛이 그립기는 하지만 살아 계신 것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다. 이번에 친정에 가면 엄마에게 레시피를 전수받아 이것저것 요리하고 토란국도 끓일 것이다. "Liebe und Fantasie sind die besten Gewürze (사랑과 상상력은 최고의 양념)"이라는 독일 속담처럼 정성을 다 쏟아서 말이다.
매년 봄마다 우리 집 근처에서 열리는 '희귀 식물 판매 행사'에 올해는 토란 모종이 보였다. 아시아 식료품점에서 산 토란 뿌리와 함께 마당 텃밭에심었다. 가을이 되면 알프스산 정기를 받고 자란 토란을 캘 생각에 마음이 든든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