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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Jan 31. 2024

내가 더이상 사지 않는 9가지

안사도 큰일 안나더라

짠내영상에 끌리는 나

요즘 내 유튜브 알고리듬이 자꾸 '몇년안에 얼마 모으기', '식비줄이기' 돈안쓰고 살기' 같이 짠내나는 영상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영상을 보면서 2미리 정도 올라간 내 입고리를 어떻게 귀신같이 눈치챘는지 모르지만 내가 끌리는 영상들로만 쏙쏙 긁어 와서 뿌려준다. 유튜브는 내 모든 걸 알고 있다는 음모론도 언젠간 다뤄봐야겠지만 일단 지금은 나도 몰랐던 내 관심사가 더 궁금하다.

 

 당장 갚아야 하는 빚이 있거나 돈을 모아서 써야할 때가 있지도 않은데 절약영상들에 낚이는 이유는 뭘까? KBS 생로병사 컨텐츠가 먹방으로 인기인 폭식하는 출연자를 보며  저정도는 아니라는 안도감을 주기때문이다

생로먹방

그럼 짠내영상을 보면서 나는 저정도로 돈 아낄 상황은  아니라는 다행감을 즐기는 건가?

그건 아닌거 같다. 돈을 많이 쓰는 영상을 보며 대리만족이나, 부러움을 느낀 적이 없고 아끼는 것에 불쌍하다는 감정을 엮지 않는다. 짠내 영상을 보며 내가 느끼는 건 오히려 동질감이나 친근감에 가깝다. 햇반을 안먹고 밥을 지어 먹는다고 하면 '나도 그런데'하고 흥분하거나, 점심 도시락을 싸다닌다고 하면 '이미 6년째 그러고 있어!' 하며 혼자 맞장구를 치고 있다. 이들 영상들은 남들이 이상하게 볼까봐 숨기고 있던 생활패턴에 긍정적인 이미지를 씌우고 좋은 평가를 해주고 있어서 나를 신나게 해준다는 공통점이 있다.   


소비지향 인간의 대각성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무엇을 소비하는지가 자신의 독특한 개성을 나타낸다고 여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내가 해야하는 새로운 시도들은 반드시 돈이 들어가야 하는 것들이고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관심대상을 돈으로 사는 행위였다. 그런 패턴에 익숙해지니 나도 소비지향적 인간이 되어 있었고 '나다움'을 유지하는데 월급이 필요했다.


별탈없던 인생에 예고없이 전환점이 왔다. 목표가 생기면 맹렬히 추구하다가  달성하면 허무해지는 것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 후 모든것이 부질없고 의미가 사라졌다. 방황을 했던 괴로운 시기였지만 그 덕에 삶을 거꾸로 뒤집어 탈탈 털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우선 집안을 들여다 보니 온통 생각없이 사들였던 '물건'들의 더미들이 산재해 있었다. 나는 다른사람들과 다르다는 불안감이 들때마다 남들이 가진 무언가를 강박적으로 샀고 구매로 산 물건들과 해소 되지 않는 불안은 계속 머리와 공간에 쌓여만 갔다. 내 생각없는 소비의 결과는 물건으로 꽉찬 집이고 그 소비를 부추긴건 정리되지 않는 불안과 감정들이다.

숨막히는 물건더미는 머릿속을 꽉채운 불안감이었다.

물건과 생각으로 엉킨 삶을 푸는데 마음비우기와 집정리를 동시에 해야한다. 남들의 시선에 맞추려한 습관적 행동들을 다 내려놓고 나한테 필요한 것들만 건져내면 삶은 단순해진다. 마음 깊은 곳에서 소비를 부추기는 불안을 꺼내고 빛을 비추니, 안사면 안될거 같은 애타는 감정이 사라지고 돈을 안쓰고도 마음이 여유로와졌다. 늘 남들과 달라 보이는 것을 고심하는 관심바라기였는데 특별히 뭔가를 안해도 '안사는 것' 만으로 충분히 독특한 인간이 된다는 매력도 있었다.    


더 이상 안사도 되는 것들

도시에 사는 내가 돈을 아예 안쓰고 살수는 없다. 일단 살기위해 식량은 사야 되고 회사에 가려면 교통비도 든다. 전기, 수도, 가스는 말할것도 없고. 다행히도 생존 필수항목에 돈을 아껴야할 상황은 아니었다. 가끔 밤에 불켜고 자기도 하고 양치컵없이 물 콸콸 틀어 양치다. 이렇게 별 생각없이 사는데 내가 버는 돈의 30프로 이상 쓰기가 힘든걸 보니 내가 안사는것이 돈 먹는 하마들인가보. 이 참에 지금의 내가 돈을 안쓰는게 어떤것인 정리해 보기로 했다. 요즘 유행하는  "내가 ~~ 않는 몇가지"라는  형식으로... 이른바 '내가 사지 않는 9가지'이다.


자 그럼 어떤 것들이 내 소비목록에서 사라졌는지 하나하나 살펴 보자


안사는 것 하나, 옷

내가 언제부터 옷을 안 샀는지 정확히 기억안나지만 코로나이후에는 분명히 구입이력이 없다.  처음 시작은 안 사기가 아니라 옷정리 였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입을 옷은 하나도 없는데' 옷장은 미어터지는 마법에 걸려 있었다. 설렘을 주지않으면 버려라, 1년을 입지 않으면 버려라, 몸에 맞지 않으면 버려라, 등등 갖가지 정리 원칙을 동원해도 옷을 버리는건 쉽지 않았다.  3년간 한번도 생각난적이 없는 옷인데 버리려면 마치 다시찾은 자식마냥 애틋해 보이고, 그럼 오구 내 새끼들하며 다시 옷장에 넣기를 반복한다.  


우선 못버리는 병에 극약처방으로 몇 번은 눈 꼭감고 버렸다. 그런데 생각없이 눈앞에서 치우는건(버리기) 예전에 그냥 옷장에 박아 두는 회피행동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입을 만한 옷은 기부를 하고 다른 사람도 입을거 같지 않은 옷은 쓰레기로 버리기 보다는 에코백, 손수건, 커버 등으로 재활용하기도 했다.

냉장고 파먹기가 요즘 유행하는데 내가 하는 것은 옷장 파먹기 쯤 되겠다. 재활용도 시간과 에너지가 들어가고 티셔츠가 에코백이 되는데는 한참 걸려 옷장이 속시원하게 비워지지 않고 심지어 아직도 잊혀진 옷들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젠 새로운 옷이 옷장에 들어가는 상상만으로도 무섭다.  

옷장파먹기  - 청바지를 노트북커버로


 이제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나는 감히 촌스런 옷들을 대놓고 입고 다닌다. 물론 깨끗하게 세탁한 옷으로 적절히 갈아입는다는 기본 원칙은 지킨다. 그리고 내가 알게된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은 내가 뭘 입고있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껏 촌스러운 옷을 입으면 남들이 욕한다고 나를 볶아쳤는데 그 욕은 내가 하고 있었던 거다.   

지금 속도로 옷장을 다 파내려면 3년은 더 걸릴거 같은데 적어도 그때까지 속옷말고 옷을 사고 싶다는 생각은 안날거 같다.  


안사는 것 둘, 종이 책

독서가 취미는 아니지만 책을 모으는건 좋아했다. 남들이 안보는 책을 구매해서 완독하면 뿌듯하게 다음에 어떤 멋진책을 살까하는 생각에 설래였다. 책을 빨리읽는 스타일이 아니라 몇달에 한번씩 사는 정도였는데도 책이 나가지 않고 쌓이기만하니 어느순간 산더미를 이루었다. 

물건더미를 각성하고서 책도 예외가 아니라고 정리를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내책은 중고서적으로도 수요가 없는 것이 태반이어서 그냥 종이 쓰레기로 버려야할 상황이었다. 옷과 마찬가지로 책도 샀을때의 마음과 그안의 스토리들이 내 발목을 잡았다. 

아주 구시대 유물같은 교과서, 전공책이 아직도 집안에 있다는 것은 내가 병적으로 물건에 끌어모으는 호더(hoarder)라는 반증이었다. 병에 대한 인식이 치료의 첫단계였고 결국 책을 스캔해 디지털본으로 소장하고 버리자는 처방을 내렸다. 

책을 스캔하는 속도는  하루 50장을 넘기 어려워 매우 지지부진하다. 책한권이 집밖으로 나가는데 4일이상 걸리고 있어  책장 파먹기(?)가 다 끝나려면 한 2년은 걸릴것 같다. 그 덕에 실물 책을 사는 것도 공포스러워졌다.  읽고 싶은 책은 e-book 사거나 신문은 인터넷판으로 구독한다.

물론 챗gpt 덕에 정보를 얻으러 책을 살 이유도 없어졌다.


안사는 것 셋, 전문점 커피

커피는 나와 애증의 관계다. 먹다가 끊다가 한 3~6개월 번갈아가며 온앤오프하고 있다. 커피를 에너지 부스터로 쓰는 내가 커피를 의지력만으로 끊는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치 마약쟁이가 의지로 약을 끊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패가 예견된 것. 여튼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했었는데 그 중 하나가 커피먹기를 귀찮게 만들기였다. 귀찮게 하는데는 생두를 직접 볶고 갈고 드립으로 내려먹는 것 만한게 없다.  그렇게 생고생을 사서하고 깨달은 건 아무리 귀찮아도 그걸 이겨내고 커피를 내리고 있는 나의 강한 의지(중독?)와 금방 볶은 원두의 강력한 맛이다.


특히 미각이 예민하지 않은 내 입맛에는 한달전 볶은 스타벅스 원두 보다 내가 3일전 오븐으로 볶은 일반 생두의 향과 맛이  더 아찔했다.  

생두, 원두 모두를 거치며 커피의존은 더 심해지고...


맛은 비등비등한데 가격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브랜드 커피 2잔 가격에  볶은 원두는 200그람, 생두는 1키로를 살 수 있다.   매일 드립으로 한번에 20그람을 내려먹어도 생두1키로 다 먹는데 한달 반, 로스트 원두는 10일을 먹을 수 있다. (커피한잔에 500원꼴)

게다가 생두는 한 6개월 커피 잠수타고 돌아와도 산폐하지 않고 기다려준다는 장점이 있다. 

더이상 한잔에 4500원을 주고 커피를 사먹지 않는다.


안사는 것 넷, 점심

  월급쟁이 부자 TV 김경필 멘토는 회사원이 돈을 모으려면 밖에서 점심을 사먹는걸 줄이라고 강력하게 권한다. 그런 조언이 나오는 것은 대부분 회사원들이 구내식당이 있어도 밖에 나가서 사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 심지어 구내식당 보다도 가성비가 높은 도시락을 싸다닌다;;;  이쯤에서 돈을 아끼려고 도시락까지 싼거냐고 학을떼는 분들도 있겠지만 시작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도시락싸는 수고로움은 어마어마해서 단지 돈때문이라면 계속하기 어려웠을거다. 내 경우는 완전채식을 시작하고 나서 사먹을 밥이 없어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요령이 생겨 아침에 한 20분만 투자하면 점심과 간식을 싸서 출근할 수 있다.  

그런데 하다보니 저절로 가격비교가 됬다. 아무리 구내식당이 싸도 한끼에 5000원 이상은 한다. 그런데 내 일주일치 마트 식재료비용이 대략 80000원이고 21끼로 나누면 한끼에 4000원 꼴이다. 가격은 싼데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음식과 비교하면 양과 영양분, 그리고 신선도 면에서 내 도시락이 우월하다. 

어떤이유가 되었는  점심을 사먹지 않은지 한 5년 넘었다. 

 (가끔 동료들과 사회적인 어울림을 위해 점심모임을 하고 내가 돈을 내는 경우가 있다. 이건  회계기준에서 밥항목이라기 보다 모임비용이라 본다.) 


안사는 것 다섯, 배달음식

배달음식은 점심과 마찬가지로 이유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먹을만한 완전채식 배달음식 찾기가 쉽지 않다. 친구는 요즘 배달해주는 샐러드집 많다며 편하게 살라고 했다.  그런데 샐러드야말로 직접 야채를 사서 준비해보면 절대 그 돈주고 배달시켜 먹을 수 가 없다.  그리고 한그릇 시켜도 한보따리 나오는 비닐과 플라스틱용기 그리고 수저...

재활용분리수거하는게 귀찮다며 그냥 냉장고 식재료 파먹기가 속편하다는 건 핑계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식재료를 씻고 썰고 다듬어 먹는 그 귀찮음에 그냥 익숙해져 버린거 아닌가 싶다.

 


내가 안사는 것 여섯, 건강보조제

예전엔 온갖 비타민, 오메가3, 미량소를 직구해다가 먹었다. 그런데 신선한 식재료로 식사하는 내가 음식이 아닌 건강보조제를 찾아먹어야 할 특별한 불편함(증상)이 없었다. 주관적 증상말고도 매년하는 건강검진에서 수치역시 한번도 정상을 벗어난 적이 없어 뽑는 피가 아까울 정도다.  완전채식으로 부족해질 수 있는 비타민 B12말고는 건강 보조제는 더이상 사지 않는다.  



안사는 것 일곱, 꽃

이건 주관적인 취향의 문제이다. 꽃은 화분이 아닌 이상 살때이미 몸통이 잘린상태라 내손에 들어온 순간부터 일주일 정도의 모래시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내가 이 꽃을 원하는 순간 그 꽃은 시한부가 된다는 기묘한 생각을 한적이 있다.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고 하훼농가나 플라워샵 산업에 대한 악감정은 없다. 그리고 나 없이도 꽃에 대한 수요는 차고 넘처서 꽃산업이 망할거 같지는 않다. 

결론은 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서 괜히 내가 아닌척 주기적으로 꽃을 구매하지 않는다는 것. 


안사는 것 여덟, 디자이너핸드백

이것 역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난 소위 명품백을 사지 않는다. 이유를 대라면 여러가지가 있다. 완전채식하면서 가죽제품을 구매하지 않는데 대부분 명품백은 여기저기 가죽이 들어간다. 물론 가격도 중요한 이유다. 앞서  커피도 원가로 따지던 내가 그 백 가격에 세탁기, 냉장고 아니면 일본여행 가격을 비교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가장 중요한건 내 신조도, 기회비용도 아닌 어울림이다. 그 명품의 디자인과 내가 그냥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백이 어울리는 사람이 들면 그 가격의 가치를 하지만 그 백과 어떻게든 어울리지 않는 내가 들고 있으면 금전의 낭비다. 


안사는 것 아홉, 자동

친구는 예전에 그랬다. '사람은 말이야 자고로 자기가 살수 있는 수준 한단계이상의 차를 사야해'라고.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들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기준이야말로 남의 눈에 맞춘 소비의 대표적인 사례였던 것 같다.  

체면때문이 아니라 진짜 차를 사야하는 사람은 세 부류다. 차가 필요한 사람, 차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운전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들은 차를 사야한다. 그런데 난 출퇴근에 차가 필요없고, 차를 좋아하지 않으며 운전을 싫어한다.(운전대만 잡으면 졸리다)  차를 사야할 이유를 찾는데 실패 했고 남들에게 차의 수준으로 내 수준을 증명해야할 압박을 느끼지 못해서 아직 차가 없다.  

다만 노후에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가게되면 차가 필요해져서 살수있으므로 영원히 안살거라는 섯부른 결론은 내지 못하겠다.  

 



마무리 

돈쓰는게 나쁜것은 아니다. 열심히 번 돈이 의미있는 곳으로 쓰여지는 것이 건강한 돈의 순환이다. 

많은 돈을 악착같이 쥐고 살 필요는 없지만 내가 하고싶은 것을 하는데 영향을 주지않을 정도의 돈은 독립적인 인간으로 사는데 힘이 된다. 

그리고 그 최소의 금액을 모으기위해 때로는 지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우선순위가 낮은 것은 돈의 흐름을 멈추고 절제하는 것은 필요하다. 물론 지출의 우선순위는 사람마다 다르고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내가 선정한 9개의 항목이 누군가에겐 매우 충격적이고 이러고도 사는 재미가 있을까 여길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대고 '아니다 난 충분히 즐겁다', '사람은 이렇게 살수도 있다'며 이해를 강요하거나 억지로 납득시키려는 의도는 없다. 

그저  '나말고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혹은 나만 이상한게 아니었구나' 하며 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것 만으로도 이 긴글의 보람이고, 내가 누군가에게 받았던  위안을 돌려주었다는 뿌듯함이 될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면 누군가 이런 특이한 인간도 있구나하고 미소짓는 것만으로도 글쓴기쁨이 되기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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