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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H Mar 29. 2024

채식해도 먹방은 볼수 있지...

부서진 영혼의 자가처방

그렇게까지 놀랄일?

먹는 걸가지고 그사람의 전체를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가. 채식하는 한명으로 모든 채식인을 판단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반경 100미터내에 나말고 채식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사무실에선 날 기준으로 채식인을 일반화하거나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채식인이라 그런거라고 확대 해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런거다.

 

 업무로 처음 알게된 회사 사람과 점심하던 중에 내가 먹방을 즐긴다하자 그가 화들짝 놀랐다. '채식하는데 먹방을 보냐'는 놀람에 이어 '모든 채식인이 먹방을 즐기는 거였냐'는 연이은 콤보 반응에 더 놀랐다.

먹방을 보는 것이 좋은 습관은 아니지만 채식하니 먹방은 안되라는 거 같아 차별받는 느낌이었다. 그가 채식과 먹방이 상극이라 여긴 이유는 아마도 먹방에 고기음식만 떠올라서 일것이다. 그래서 내가 못먹는 음식들을 간절하게 처다본다 안타까워 한 것 같다.   

 먹방을 찍는 이의 90%이상이 잡식(omnivore, 모든것을 먹는) 사람이라 고기 섞인 요리가 많다. 하지만 고기를 못먹어 생긴 불만을  남들 먹는 걸 보며 대리만족한다는 건 진짜 오해다. 내가 먹방을 보며 얻는 위안은 다른데 있다.  


드라마가  연애나 성공에 대한 스토리를 깔아주고 시청자가 간접 경험을 하게 해준다면 먹방은 리얼하게 먹는 장면을 통해  평소 먹고 싶은 음식을 음미하는 경험다. 하지만 미국 연애 드라마를 본다고 현실에서 백인애인 찾는 사람 없듯이 먹방에 특정음식이 나왔다고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음식만 상상하며 찾아먹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먹방에 나온 메뉴를 보며 비슷한것 중 가장 맛있게 먹은 걸 떠올리며 즐기는 경우가 많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게 먹방을 보는 이유다.


설탕ㅊ돌이, Sweet Tooth

그래서 내가 먹방으로 즐겨보는 음식종류는? 고백하자면 난 짭짤이보다는 달달이 입맛이다. 달달이라면 너무 순한 표현이고 사실은 떡, 쿠키, 케잌, 도너츠, 시리얼, 아이스크림같은  가공디저트, 과자에 환장한다. 밀가루, 쌀가루, 설탕, 기름으로 만든 가공 디저트의 매력은 한마디로 혈당이 솟구치는 이다. 이런 자극적 면 때문에 가공디저트에 빠지는 걸 중독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디저트 먹방을 좋아하는 것은 디저트 중독의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the Takedown Twins

내가 보는 먹방 채널 중  우유, 버터가 들어간 일반 디저트도 있다.(채식 채널은 주로 건강을 추구하다보니 채식정크를 먹는 먹방은 드물다) 그런데 일반 도넛먹방을 본다고 그 속에 우유, 버터 맛이 떠오르진 않는다. 그보다는 밀가루 반죽을 기름에 튀기고 설탕(글레이즈)을 듬뿍 적셔 완성되는 황금공식의 맛이 상상된다.

우유, 버터, 설탕은 도넛의 황금 공식에 들어가는   x, y, z 값 중 하나다.  x, y에 두유, 코코넛오일 혹은 마가린을 넣어도 악마의 맛은 나온다. 채식도넛은 건강하고 맛이 덜할거라는 생각은 편견일지도 모른다. 난 두유, 코코넛오일로 크림을 올렸다고 그 도넛이 더 건강하다거나, 맛이 부족하다고 느낀적은 없다.  


게다가 요즘 세상이 좋아져서 네이버 검색하면 온갖 채식 디저트가 결정장애를 유발할 만큼 튀어나온다.  빵, 쿠키, 아이스크림에도 이미 채식버전이 생겼고 왠지는 몰라도 채식 옵션이 은근 건강에 좋다는 후광이 있어 인기를 얻는 모양새다.  건강은 평소에 먹는 걸로 챙기지 왜 디저트에 건강을 섞으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덕에 선택지가 많아진다면 나에게 유리하니 불만없다. 가격이 좀 비싸다는 단점이 있는데 다른 데 돈을 잘 안써서 디저트살 돈은 충분하다. 그러니 나도 디저트 먹방에서 보는 환타지를 현실에서도 충족시킬 여지가 있는 거다.



배고픈 영혼

그럼 먹고싶을때마다 사 먹지 왜 추접스럽게 남 먹는걸 보냐는 평가도 있다.

내가 먹방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일반인들과 같다. 먹고 싶어도 맘껏 못먹는 음식에 대한 억눌림을 영상을 보며 푸는 거다. 고상하게 표현하면 탐욕스러운 식욕을 이성으로 억제하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왜 디저트를 맘껏 못먹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내게 고자극을 주는 디저트 치고 건강하고 자연적인 것은 없다. 과일같은 자연식은 내 기준에서 쾌락의 디저트가 아니다. 내가 알기로 쾌락을 주는 디저트 중에서 일반인이 절제없이 원없이 먹을 수 있는 건강식은 없다.


가공식없이 사는게 제일 좋고 가공식을 먹더라도 적당히 먹으면 된다던가 그런 교과서적인 얘기는 나도 알고 있다.  여러 현명한 선생님들(책, 논문, 학자, 철학자, 인터넷)의 가르침을 받아 자연의 건강한 음식으로 식단을 바꾸고 나서 배가 부르고  건강해지는 것을 직접 체험했다. 자연식은 훌륭했지만 문제는 자연식이 아니라 나였다.

  

내 영혼은  표면적으로는 밝고 건강한 버전이지만 뒷면엔 좀 부서진 부분이 공존하고 있다. 기분이 좋고 안정적일땐 있는지도 모르지만 몸이 피곤하거나, 위기의 상황에 몰리면  부서진 영혼이 몸을 차지하고 불안과 두려움으로 나를 압도한다. 그리고 그 영혼의 불만은 육체적 배고픔과 똑같은 느낌으로 볶아친다. 건강한 음식은 아무리 먹어도 영혼의 빈공간을 채울 수 없다.  한번에 솟구치는 혈당 스파이크 정도는 만들어야 성난 영혼이 달래진다.


나는 부서진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을 정신과 의사인 마테박사(Dr. Gabor Maté)는 배고픈 영혼("In the Realm of Hungry Ghosts") 라고 했다. 설명하자면 인간에게 중독이란 어린시절부터 잠식해있던 불안, 두려움 혹은 트라우마로 부터 탈출하기 위한 자기 처방이라는 것이다.  그 한줄을 읽자마자 바로 내 상황이 이해 되었다. 왜 건강한 음식을 먹었는데도 내 영혼은 늘 허기졌는지 말이다.


 기분좋은 디저트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분위기 싸하게 내안의 배고픈 영혼에 대한 커밍아웃을 했다. 어린시절 맞벌이하는 부모님 밑에서 하루종일 혼자 방에서 지내야했고, 혼자 인형놀이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누구나 한번쯤은 겪었을 어린시절의 결핍감이지만 안타깝게도 난 어른이 되어서도 극복을 못했고 그 부서진 부분은 내가 불안정할땐 어김없이 튀어나왔다. 그러면 그저 강한 자극의 음식만 생각나고 삼시 세끼 잘 차려먹고도 밤에 허기로 울부짓는다. 그때 먹방을 보면 잠들기전까지 정신줄을 잡게 도움을 좀 준다.

먹방에서 쿠키에 크림을 산만큼 올리고 거기에 카라멜시럽을 칠갑해서 먹는 모습을 보며 마치 내가 먹는 듯한 느낌에 잠이 들 수 있다.


쿠키위에 화이트크림과 카라멜시럽을 뿌리고 로스트피넛이 올라앉은 모습에 영혼의 긴장이 녹는다


 나만의 먹방치료, 치트데이

나름 혹독한 유년기를 거쳤지만 어린시절의 상처를 누군가의 잘못으로 돌리고 원망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 이만큼 제역할을 하는 성인으로 성장했다면 감사해야할 일이 더 많다는 것이고 이미 받은 상처를 되돌려주는데 몰입하기 보다는 지금부터라도 상처가 아물고 행복해지려고 노력한다.


가공 디저트에 대한 과한 집착이 정상적이라는 건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 집착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어린시절 구김살이라는 걸 인정하고 대처하고 있다. 먹방의 도움을 받지만 이것도 만병통치 약이 아니다. 내 영혼이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진짜 원하는 걸 눈이 아니라 입에 넣어주어야 폭발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유년기의 트라우마를 드러내야 근본적인 치료기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마테 박사 같은 분을 찾지 못했고 그때까지 배고픈 영혼에겐 정기적으로 고용량 디저트를 임시처방하기로 했다. 너무 남발하면 안되니 주말 하루를 정해 그 날은  식사대신 디저트를 배가 부르게 먹는다. 마치 먹방을 찍는 것처럼 정성을 가득 담아서 말이다. 이렇게 미리 약속한 규칙적 일탈이 나만의 치트데이다.

어느날의 빵파티

그냥 로프브레드나 캄파뉴는 디저트 빵이 아니지만 땅콩버터에 혹은 아이스크림을 치덕치덕 발라 먹으면 디저트로 손색이 없다. 


때론 평일에 많이 지치면 주말 치트데이만 바라보며 산다. 그리고 주말이 되자마자 이성의 끈이 뚝 끊어진다.

채식 도넛의 성지

 

친구를 만나게 되면 그날이 치트데이가 되기도 한다.  밥 다먹고도  크림이 한 2~3센치 두께는 되보이는 채식 베이글을  먹어준다. 

일반크로아상 그리고 채식 베이글, 채식베이글 쪽이 훨씬 혈관 막히는 비주얼

각자 자기빵먹는다고 저 초코크림베이글은 나혼자 크림 한톨 안남기고 먹었다. 혈관에 기름끼는 맛은 역시나 만족감이 높다.   

 

나의 치트데이는 정서관리를 위함이지 이거먹어도 난 몸관리 잘한다는 과시목적이 아니다. 주말 하루 디저트를 맘껏 먹으려고 나머지 평일은 주먹 꽉쥐고 참는 것이다.   

평일의 내가 지독한 건강관리로 하나의 첨가물도 절대 허용하지 않는 지킬박사라면 주말 치트데이때는 도파민이 솟구치는 맛을 위해서 첨가물 따윈 잊고 고도로 정제된 설탕과 오일의 세례에 행복해하는 하이드씨가 된다.


하이드씨는 이번 주말도 과자를 한보따리 먹겠다며 쿠팡직구를 하셨다. 웰컴쿠폰으로 1키로가 넘는 오레오를 만원도 안되게 구매하면서 말이다.

미쿡 오레오는 채식이다.  양잿물도 채식인데...


'인간이 이렇게 모순적이다'는 말을 남기고 금요일 저녁의 지킬박사는 서둘러 사라졌다.


크림빵과 단팥빵 그리고 소보로빵은 못참지

할머니가 이해못하는 첨가물은 어쩌고 저쩌고 하던 지킬박사는 주말엔 근무 안할예정이다.



덧...

Featuring -  레헴 우리밀제빵소, 오베흐트, 그린치앙마이, LOOP, 쿠팡직구 그리고 더브레드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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