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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운찬 Feb 08. 2020

상상력을 이용하여 90%의 무의식을 다룰 수 있다면


의미부여가 삶의 질을 좌우한다.


몇 주전에 불현듯 머릿속에 떠올랐던 문장이다. 우리는 실제로 어떤 것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생각과 감정이 좌지우지된다. 우리가 흔하게 듣는 '물이 반 밖에 없잖아?', '물이 반이나 남았네'처럼 똑같은 상태를 목격하더라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느끼는 것은 정반대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저건 나쁜 거야', '저건 좋은 거야', '이건 내게 행복을 가져다줘', '저건 날 괴롭게 만들어', 길가에 가만히 있던 돌도 내가 걸려 넘어지면 천하에 나쁜 놈? 이 된다.


"나쁜 돌 때찌 해줭어어엉~"


만약 모든 것들의 의미가 개개인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뜻밖의 진실을 말해주고 있는 셈이다. 바로 모든 것에는 그 자체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돌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물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공기는? 산과 바다는? 동물은? 사람은? 그리고 나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그 진실은 '의미가 없다'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의미가 없다는 것은 사실 우리 개개인들에게는 굉장한 축복이다. 우리 각자가 자신의 삶과 세계를 스스로가 결정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나는 이 힘을 상상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모든 사람은 각자만의 삶을 살아가고 각자만의 세계관을 지닐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의미부여를 해야 하는 것일까? 마냥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 되는 것일까? 물론 긍정적인 의미부여는 내가 가장 자신 있어하는 특기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것만으로는 삶의 질을 만족스럽게 높일 수 없다. 책[공부하지 마라. 최면해라]의 저자 박세니 선생님은 그 해답이 '최면'에 있다고 말한다.


최면이란 무엇인가? 최면은 '고도의 집중 상태'를 말한다. 내가 집중하려고 노력해서 되는 의도적 집중이 아니고, 나도 모르게 강하게 집중이 되어버리는 상태를 최면이라 한다.


'인생은 최면이다'라고 단언하시는 박세니 선생님을 알게 된 것은 한창 자기 계발에 빠져 이것저것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최면'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레드썬? 같은 전생 체험이나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사람을 조종하는 최면이 아니다. 우리 뇌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무의식을 다루는 걸 말한다. 이 무의식은 의식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데 그것이 바로 '상상력'이다.


의식의 언어는 논리이다. 무의식의 언어는 상상력이다. 언제나 상상력(90%)이 논리(10%)를 이긴다.
[공부하지 마라. 최면해라] p51


상상력을 이용하여 90%의 무의식을 다룰 수 있다면 우리는 자기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내 완전하게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 바로 고도의 집중과 몰입 상태인 '최면'을 통해서 말이다.






자 그럼 우리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어떤 최면을 해야 하는 걸까? 다음은 책 [탁월한 인생을 만드는 법](이하 [탁월한])에서 언급한 '결핍된 사고'와 '풍족한 사고'이다.


[탁월한] p40


책 [탁월한]의 저자 마이클 하얏트는 결핍된 사고를 하는 사람은 '제한적 믿음'의 덫에 갇히지만 풍족한 사고를 하는 사람은 '해방적 진실'로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제한적 믿음은 나를 더욱 비루하고 불행하게 만들지만, 해방적 진실은 나를 더욱 자유롭고 행복하게 만든다. 우리는 제한적 믿음에서 해방적 진실로 믿음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프레임을 바꾸는 것, 바로 최면을 통해서 말이다.


나비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는 것은 내 믿음에 달렸다


최근에 제한적 믿음에서 해방적 진실로 업그레이드한 나의 예를 하나 들자면 다음과 같다.


몇 년 전에 생긴 신조어 'N포 세대'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여건상 연애, 결혼, 출산 등을 비롯해 다른 많은 것들을 포기하는 걸 뜻한다. 나 또한 직업·재정적인 영역이 안정적이지 못하다 보니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연애'였다. 나는 스스로에게 '지금 연애를 하면 안 돼, 나는 지금 연애를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 못했어.'라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이 최면은 무의식을 통해 내 행동으로 나타났고 나는 어느새 이성 앞에선 말 한마디도 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제한적 믿음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나는 나를 다르게 최면하기 시작했다. '나는 어떤 조건 없이도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야. 나는 언제든지 연애를 할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말이다. 이러한 해방적 진실을 알게 되니 내 행동에도 변화가 생겼다. 좀 더 내 감정을 이성에게 솔직히 표현할 수 있었고, 조금씩 조금씩 더 적극적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갈 용기가 생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지금 반드시 연애를 해야 한다'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언제든지 가능한 상태'임을 나 스스로에게 각인시킴으로써 용기와 자유를 얻은 것이다.







자기 최면을 하는데에 있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자기 암시'이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에밀 쿠에의 '자기 암시 요법'-


자기 암시 요법은 인간의 자아를 의식과 무의식적 자아로 구분하고, 의식적으로 무의식적 자아를 조절·유도하는 요법으로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플라세보 이펙트(위약효과)도 이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몇 달 전에 나는 스윙스의 '나는 자기 암시'를 듣고서 비슷한 방식으로 자기 암시를 녹음한 적이 있었다. 이는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있었다. 두려움이 줄었고, 자신감이 생겼으며, 내가 원하는 삶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새로운 자기 암시 방법을 만들었다. 바로 '이매진 이브닝'이다. 방법은 다음날 저녁 하루의 목표를 달성한 나의 모습을 상상하고 스스로에게 암시를 하는 것이다. 나는 매일 밤마다 아래와 같이 녹음한다.


"현재 시간 0월 0일 저녁 9시(실제로는 다음날이다) 나는 000이다.(원하는 정체성이나 원하는 비전을 말한다) 나는 오늘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해냈다.(다음날 목표 달성을 과거형으로 말한다) 나는 날마다 모든 면에서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


녹음 후에 나는 믿을 수 있는 지인들에게 파일을 뿌리기도 했다. 지금은 함께 밴드를 만들어 매일 올리고 있다. 그리고 아침마다, 혹은 중간중간에 한 번씩 들어본다. 가장 짜릿한 것은 내가 정말 그 시간에 말했던 것을 지켜냈을 때이다. 이것이야말로 상상이 현실이 되는 경험인 것이다!


매일매일의 목표와 성취는 작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이를 무시한다면 자신의 원대한 목표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작은 성공이 모여 큰 성공을 이루기 때문이다. 나는 이를 '이매진 이브닝'이라는 자기 암시를 통해 해내고 있다. 나라는 사람이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작은 성공으로 증명해내고 있는 것이다.




'믿음(사고방식) 업그레이드'와 '자기 암시'는 '자기 최면' 방법 중 일부이다. 그렇게 키운 우리의 가치를 타인에게도 인정받고 합당한 보상을 받으려면 결국 우리의 가치를 타인에게 나누는 '타인 최면'이 되어야 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모든 사람은 최면을 당하고, 모든 사람은 최면상태를 원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박세니 선생님의 말을 인용하며 글을 마치겠다.


완전하게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다면, 그래서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남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을 주는 타인 최면으로 완성해야 함을 반드시 기억하라. "인생은 최면이다"
[공부하지 마라. 최면해라] p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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