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일기 (2)
나라 간의 교류가 원활한 유럽은 타국에서 공부하며 문화를 교류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인 Erasmus Programme이 잘 되어있다.
학교에서 뿐만 아니라 외부에서도 교환학생을 지원하기 위한 여러 학생단체들이 활동하고 있다.
특히 내가 만난 교환학생 네트워크 ESN(Erasmus Student Network)에서는 매주 크고 작은 행사를 통해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이곳의 문화를 보다 쉽게 접하고 서로 교류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9월 4일 Bilbao City Tour.
이번 학기 ESN에서 여는 첫 행사여서인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투어를 신청했다. 스태프들이 각각 영어와 스페인어 팀으로 나누어 빌바오 시내의 이곳저곳을 소개했다.
빌바오 시청에서부터 시작해 Nervion 강을 따라갔다. 빌바오에는 강을 가로지르는 여러 다리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다리는 바스크어로 '하얀 다리'를 뜻하는 Zubizuri이다.
기울어진 유선형의 아치와 함께 곡선으로 꺾인 보도가 인상적인 이 다리는 비가 올 때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미끄러져 다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Abando 기차역 건너편에 있는 멋진 아리아가 극장(Teatro Arriaga)은 빌바오 시청을 지은 건축가 Joaquín Rucoba가 지은 네오 바로크 양식의 오페라 극장이다. 지어진 지 100년을 훌쩍 넘겼지만 아직도 오페라나 뮤지컬 공연이 이곳에서 열린다고 한다.
투어를 마치고 까스코 비에호에 있는 어느 바에서 핀초를 먹으며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바스크 지방에서는 핀초를 술과 함께 보다 저렴하게 파는 시간이 있는데, 그때를 핀초 포테(Pintxo Pote)라고 부른다. 도시마다 핀초포테가 이뤄지는 요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목요일 저녁이 핀초포테이고, 이때만큼은 많은 사람들이 1~2€대로 저렴한 핀초와 맥주를 먹기 위해 바로 모인다.
ESN 스태프 Saul이 핀초와 함께 흔히 먹는 깔리모초(Calimocho)라는 음료를 추천했다.
와인과 콜라를 섞어 만들어 단순하지만, 각각이 가진 특유의 맛과 향이 은근히 잘 어울려 금세 내 최애 음료 중 하나가 되었다. 여느 사람들처럼 광장 길바닥에 앉아 핀초를 먹으면서 빌바오에 대해 한층 더 알아갔다.
9월 19일. 소각장으로 견학을 다녀왔다.
Environmental Technology 과목에서 선택활동으로 근처 소각장 Zabalgarbi로의 견학이 있었다.
환경공학을 공부하는 나는 우리나라와 스페인의 폐기물 처리 방식을 비교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용기 있게 견학신청을 넣었다.
소각장에 도착해서 먼저 회의실에서 소각장에 대한 소개와 간단한 운영방법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직원분이 스페인어로 설명해주셔서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폐기물 유입부터 처리, 소각 후 에너지 전환까지 전 과정의 현장을 돌아보았는데, 다행히 같이 수업을 듣는 Asier가 곤란해하는 나를 위해 영어로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현장학습이 끝나고 아씨에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같은 반 친구 Amaia와도 말을 텄다.
Kaixo(까이쇼)! 바스크어 인사말과 함께 바스크가 짱이라며 서로 입을 모아 알려주는 걸 보니, 지역색이 강한 스페인에서도 바스크인의 자부심이 느껴지는 듯했다.
견학을 다녀온 후 소각장 웹페이지를 조사하고 블로그에 올리며 나름대로 본 것에 대한 정리를 해 보았다. 많이 배웠지만 친구들의 도움을 받은 게 더 기억에 남는 날이었다.
9월 20일. 성민이와 높은 곳에서 빌바오의 시내 풍경을 감상했다.
Uribarri 근처에 있는 전망대 Artxanda로 가기 위해서는 푸니쿨라를 타야 한다. 구글 지도에서 발견해 시험 삼아 가본 이후로도 산책이나 피크닉을 하러 자주 갔던 추억이 담긴 곳이다.
높이 올라온 만큼 탁 트인 지대에서 빌바오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산투츄 동네부터 학교 앞 산 마메스 스타디움까지, 휴대폰 카메라로 이 넓은 풍경을 다 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전망대를 내려와 돌아오면서 집 근처에 정말 맛있는 케밥집을 발견했다.
스페인에서 케밥집은 우리나라 김밥천국만큼 동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식당인 것 같다. 가격도 싸고 맛도 좋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룸메들과 함께 셋이서 케밥집을 찾았다.
우리들이 항상 주문하는 메뉴는 닭고기 케밥에 매운 소스 조금. 케밥집을 하도 많이 가서 나중에는 사장님이 알아서 메뉴를 준비해주시고, 혼자 왔을 때는 왜 셋이 같이 오지 않았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겉바속촉한 빵에 꽉꽉 채워진 닭고기, 아낌없이 뿌려진 소스!
왜 우리나라에는 주변에 케밥집이 없을까.. 이 맛을 그리워하며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케밥을 찾았다.
9월 27일 Welcome Party.
이때까지 한 번도 클럽에 가본 적이 없었다. 때문에 빵빵한 음악 속에서 춤추는 즐거움을 모르고 살았었는데, 빌바오에서 처음 가본 Discoteca에서 나의 숨겨진 흥이 깨어났다.
파티에 너무 빨리 갔더니 클럽 안이 텅텅 비어있었다. 처음엔 사람이 없어서 어리둥절했지만 염려할 새도 없이 넓었던 클럽이 어느새 사람들로 꽉꽉 찼다. 라틴특유의 통통 튀는 리듬을 가진 레게톤(Reggaetón) 노래가 이곳이 열정의 나라 스페인 클럽임을 알려주듯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어떻게 알았는지 강남스타일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주변 사람들이 모여있던 우리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부끄러워할 새도 없이 한바탕 말춤을 추고 나서야 무대를 벗어날 수 있었다. 모두들 흥에 취해 처음 보는 친구끼리도 같이 춤을 추며 놀았다. 이 맛에 다들 클럽을 가는 걸까. 이날 부로 클럽의 재미에 빠지고 말았다.
9월 30일 Nervion Kayaking.
한국인 친구들과 마유코, 리카코와 함께 ESN에서 여는 카약 투어를 갔다. 날씨가 궂다 못해 나중에는 비가 왔지만 개의치 않고 비를 맞으며 놀 수 있는 안성맞춤 프로그램이다.
카약 타는 법과 안전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두 명이서 한 팀이 되어 카약을 탔는데, 같이 온 친구들과 짝이 맞지 않아 ESN 스태프 사울과 함께 카약을 탔다. 빌바오를 가로지르는 Nervion 강 위쪽에서 출발해 구겐하임 미술관 부근까지 카약을 타고 내려오는 코스다.
시티투어 때 구경했던 Zubizuri 다리를 비롯해 강 한가운데에서 보는 빌바오의 풍경 또한 색달랐다. 하지만 주변을 감상하는 것도 잠시, 노를 저어가면서 친구들과 마주칠 때마다 엄청난 물싸움을 해대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고 말았다.
카약 투어가 끝나고 ESN 스태프 Asier, Jenni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집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멋진 행사를 만들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집에 도착해서 선물 받은 재료로 어묵 우동을 끓여먹었는데, 축축 젖어 추웠던 몸이 단숨에 녹아내리는 맛이었다. 마무리까지 완벽한 즐거운 하루였다.
매일같이 가족들에게 전화하며 적응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던 기억이 많았는데,
지나고 보니 힘들었던 그때조차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걸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