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27일.
드디어 대망의 빌바오로 가는 날.
어제는 놓쳤던 오전 11시 비행기를 타고 겨우 2시간 만에 빌바오에 갈 수 있었다. 이틀간 어디에 있었는지 모를 수하물도 알맞게 도착했다. 이 두 시간 여정의 비행기를 타려고 어제 얼마나 그렇게 노력했는가. 뭔가 허무하게 끝나 아쉽기까지 한 여정이었다.
감동적 이게도 먼저 빌바오에 와있던 교환학생 오빠들이 우리를 마중 나와주었다. 미리 계약했던 flat 주인아저씨 루이스와 늦은 만남을 가진 후, 서로 각자 방을 정하고 서둘러 점심을 먹었다. 빌바오에서의 첫 식사로는 한국에서 가져온 짜파게티와 불닭볶음면. 후딱후딱 먹고 씻고 드디어 옷도 갈아입고(!) 짐을 풀 새도 없이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여독을 푸는 것도 뒤로 하고 점심을 먹자마자 다시 나간 이유는 바로 오늘, 8월 27일까지가 빌바오의 최대 축제 기간이기 때문이다. 이틀을 날려버린 만큼 축제 마지막 날이라도 즐겨야겠다고 마음먹고, 거리 구경도 할 겸 버디가 알려준 Casco Viejo 일대로 향했다.
교환학생 버디인 페르난도의 말로는 이번 주 내내 Semana Grande(세마나 그란데)라고 하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세마나 그란데는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 축제로, 바스크어로는 Aste Nagusia라고 부른다. 매년 8월 중순부터 말까지, 열흘 가까이 열리는 빌바오의 최대 축제이다.
본래 성모승천을 기념하는 축제인 Aste Nagusia의 마스코트는 바스크 전통 복장을 입은 채 두 팔을 높이 든 Marijaia(마리하이아)라는 인형이다. 어찌 보면 섬뜩하게 느껴지는 얼굴에 풍만한 몸집을 가진 이 인형은 춤과 오락, 낙천성의 의미로 두 팔을 크게 벌린 채 축제 내내 빌바오의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는다.
축제기간 동안 거리에서는 온통 부스를 열어 술과 음식을 팔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는다. 통나무 자르기 등의 전통 게임이나 음악 콘서트, 바스크 전통 춤과 퍼레이드도 이어진다.
사람들을 따라 누에바 광장(Plaza Nueva)에서 바스크 전통 춤인 Aurresku(아우레스쿠) 공연을 구경했다. 언뜻 발레 동작같이 보이는 이 춤은 바스크 지방에서 결혼식, 축제 등의 행사에서 많이 선보여진다고 한다. 무용수가 가볍게 발을 움직이면서 다리를 위로 차올릴 때마다 사람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온통 새로운 사람들과 풍경, 그리고 분위기. 아직은 이 모든 것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마냥 낯선 것 같지만, 천천히 거리와 골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활기찬 에너지를 느끼는 것조차 좋았다.
플랫 룸메이트이자 6개월 먼저 스페인 교환학생을 시작한 성민이가 맛있는 맥주집을 알려주겠다고 데려갔다. 맥주와 안주를 단 1유로대에 먹을 수 있는 가성비 넘치는 음식점 100 Montaditos.
스페인에서 맥주와 함께 먹는 한입거리 음식을 tapas(타파스)라고 부르는데, montadito는 타파스의 한 종류인 작은 샌드위치를 말한다. 가게 이름답게 정말 많은 종류의 타파스가 있었다.
무엇보다 레몬주스를 함께 섞은 맥주 cerbeza con limon의 맛에 홀딱 반해버렸다. 이제껏 먹어본 라들러와는 다른 진한 레몬의 맛에, 교환학생으로 있는 내내 이 맥주만 시켜먹었다.
스페인의 간편 음식점은 주문번호 대신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Park'이라고 하고 왔는데 찍힌 이름은... Pokㅋㅋㅋㅋㅋㅋ 이때부터 주훈오빠의 별명은 폭이 되었다.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나라들은 여름에는 해가 9시~10시가 되어서야 진다. 밤이 되니 조명도 켜지고, 더욱더 축제다운 분위기가 났다.
축제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밤에는 축제의 폐회식이 있었다. 고요한 음악과 함께 올해의 Marijaia 인형이 강을 따라 내려오면, 빌바오 시민들은 인형을 따라 시내를 한 바퀴 걸으며 즐거웠던 축제를 마무리한다.
불꽃놀이도 크게 한다고 들었는데, 축제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조그맣게 하고 끝나서 조금 아쉬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밝은 조명의 빌바오 시청 건물이 우리의 감성 본능을 자극했다. 누가 봐도 관광객인 것 마냥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인스타 감성을 남기고 나서야 만족스럽게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더 일찍 구경했다면 좋았을 Aste Nagusia.
아쉬움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먼 나중에 다시 빌바오를 찾아오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