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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쭈 Oct 19. 2022

냄새보다 좋은 단어

출근 시간의 엘리베이터는 향으로 요란하다. 그 속에는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는 다짐 같은 의욕이 있다. 마실 수 있다면 박카스 같은 것. 깨어나려 한다. 밤새 느려진 졸린 마음에 뿌린다.    칙. 톡. 톡.    


가득 하나 조용한 아침의 엘리베이터. 물기가 마르지 않은 그녀의 머리칼이 보인다. 울리는 핸드폰을 찾기 위해 고개를 내릴 때, 물먹은 머리칼은 끊어지듯 움직인다. 물결에 뭉쳐진 급한 머리칼은 아침 전쟁을 한바탕 치른 그녀의 표식이다. 그리고 그 속엔 아직 발화하지 못한 향이 담겨있다. 코가 아니라 눈으로 맡는 향. 그건 보이는 향이다. 물방울에 잠겨있으나 조만간 터지고 나올 것들. 상상으로 맡는다. 그녀의 뒷모습을 무안할 정도로 쳐다본다. 나의 시선은 그녀의 머리칼에 고정되어 검은 자는 멍해지고, 여러 추억들이 머릿속을 헤맨다.        


텅 빈 엘리베이터에도 향은 남아있다. 그러나 향에 적신 그 사람은 가고 없다. 흔적이 강렬할 수 록 떠난 사람이 궁금해진다. 코를 찌를 정도의 향을 품고 다니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 코는 생각보다 무뎌지므로 그 에겐 이미 옅은 걸까..? 주인 없는 짙은 농도는 코로 들어와 목구멍까지 적신다. 먹는 게 아니므로 잠시 숨을 멈춘다.      


향은 봐 달라는 꼬리표 같다. 나 여기 있다는 외침. 두 눈에 반사된 ‘시선’과 귓속을 울리는 ‘소리’는 순간을 보여주고 사라지지만, 향은 코에 달라붙는다. 수평의 물속에 떨어지는 한 방울 잉크처럼 부드러운 갈퀴를 남기며 넓게 퍼진다. 어쩌면 향은 맡는 것이 아니라 녹는 것이다. 몸속에 녹아내리는 것이다. 코는 곧 무뎌지지만 잔향의 흔적은 녹아져 몸속 어딘가에 자리 잡는다. 그러다 어느 날 비슷한 향이 또다시 나를 감싸면 순간 알아차린다.      


‘아.. 그래~ 너였구나!!’ 

여태껏 설명할 수 도, 표현할 수 도 없었던 향이 온몸으로 퍼져온다. 머리가 아닌 몸을 반응하게 하는 것들은 유혹하는 것들이다. 머리를 내세워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은 언제나 위험하다. 취하고, 금세 잊어버리고... 모르게 중독되어 다시 찾는다. 


향은 그래서 짧고 강렬해야 한다. 그 순간 나를 사로잡아야 한다. 꽃은 일 년 내내 피어있지 못한다. 유혹해야 할 때, 있는 힘껏 그 향을 사방 가득 퍼뜨린다. 그래야 평소엔 일만 하던 무식한 벌들도 눈먼 향에 이끌려 선택이란 걸 할 용기가 생기는 게 아닐까. 당신에게도 손을 뻗친다. 만약, 활짝 핀 ‘꽃’ 다발을 든 ‘향수’ 뿌린 사람이 당신을 향해 웃고 있다면 긴장해야 한다. 그 사람은 너를 향해 어찌 됐든 오늘 끝을 볼 작정인 것이다.     


향기와 비슷한 말을 찾아보니 냄새가 나온다. 비슷한가? 오히려 반대 아닌가? 향기와 냄새. 두 단어 모두 무심하지 않다. 이미 단어 속에 형용사를 품고 있다. 향기는 왠지 기분 좋고 냄새는 조금 꺼려진다. ‘사랑스런 냄새, 청량한 냄새...’ 어울리지 않는다. 냄새 앞에 형용사를 붙여 꽤나 치장을 해도 말끝은 미심쩍어진다. ‘냄새’로 탁해진다.     


그러나 냄새는 잘못이 없다. 그저 눈치가 없을 뿐이다. 냄새는 주위를 머무는 당신의 코에 불현듯 스친다. 당황 스러 울 때 가 있다. 가끔은 불쾌하기도 하다. 그러나 의도가 없으므로 탓하진 말자. 냄새는 옷을 걸치지 않은 알맹이에서 나온다. 욕망의 손장난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어 터져 나오는 것. 그저 나오는 대로 번져가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코로나로 두 달간 후각을 잃었다. 짜장면을 먹는데 소금 맛 만 났다. 짜장의 풍미와 불에 그을린 재료 냄새는 사라졌다. 의사 선생님은 키보드를 빠르게 치며 태연하게 말한다. “열에 아홉은 돌아옵니다.”... 하나가 되면 어쩌지... 재수 없게 걸려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되는 건가. 생각이 들자 우울해졌다. 그가 준 스테로이드 성 시료를 열심히 코에다 뿌려댔다.     


‘후각 장애인’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시각 또는 청각에 비해 후각은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듯하다. 후각이 예민하지 않다며 고민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강하게 반응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로 폄하된다. 냄새를 맡는다는 것, 그것에 집중한다는 건 뭔가 동물적이다. 강아지가 킁킁거리며 바닥을 두리번거리는 모양은 귀엽지만, 김이 모락 나는 푸짐한 음식 쟁반에 코를 박고 있는 나는 추하다.      


수만 년 동안 먹고살기에 급급했던 우리의 유전자 때문일까. 살아있는 것, 살아있던 것, 그래서 먹을 수 있는 것에 집중하여 맡아지는 냄새들. 이런 먹고살기 위한 냄새를 제외한 나머지, 셀 수 없는 것들 중 강렬하고 유혹적인 냄새를 따로 모아 향기라 부르는 게 아닐까.     


살기 위한 냄새 그리고 나는 특별하다며 일상을 지우는 의도된 향.     


이 둘을 제외한 수많은 냄새들은 어디론가 흩어져 버렸다. 이름조차 없는 희미한 냄새들. 마비된 코를 세게 문지르면 잃었던 냄새를 맡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다는 데.. 욕망을 조금 물릴 수 있다면, 우리 곁에 언제나 떠돌던 무심한 냄새들이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바삭하게 마른 수건에는 햇빛 냄새가 담겨있다. 의류 건조기를 쓰지 않는 엄마의 집, 베란다 행거 위, 넓게 핀 미역처럼 딱딱하게 걸려있는 그 수건엔 향이 없다. 그나마 붙어있던 세제는 햇빛을 받아 다 날아갔고 그 속엔 무취의 햇빛만이 남아있다. 햇빛은 굳이 더하지 않는다.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수건. 그런 수건으로 얼굴의 물을 닦으면 정말 다 닦아버린 느낌이다. 그렇게 수건은 온전한 내 체취를 받아간다. 가식 없이 친밀해진다.     

운동을 하다 가끔씩 그을린 팔뚝에 코를 갖다 댄다. 땀끼가 배어있는 팔등은 따뜻하다. 구운 보리 냄새가 난다. 사실 보리 냄새를 정확히 모른다. 보리의 이름을 갖다 붙이 면서 친근하단 막연한 느낌만 빌려온다. 만들어 뿌리지 않고 자연스레 일어나는 냄새. 몇 번이고 코와 입술로 팔등을 문지른다. 정신없이 놀다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아이가 돼버리는 냄새. 숨을 들이시며 편안해진다.     


누가 나의 냄새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난 주저 않고 그 팔을 내밀고 싶다. 상대는 꺼려하겠지만 그래서 나인 냄새이다. 나만 알고 좋아하는 것. 하나도 보탤 것 없는 나의 비밀스러운 곳.    


햇빛이 사라지면 숨어있던 냄새들이 꾸물거린다. 초여름 소나기, 어두운 빗방울이 흙을 때리면 뜨거웠던 한숨이 땅을 품고 올라온다. 나는 그 섞인 냄새가 좋아, 이건 혹시 내 코까지만 올라오는 게 아닌가 라며 두근거린다. 까치발을 들어 숨을 들이셔 보고 어깨를 내려 다시 맡아본다. 그 속에는 땅의 온기가 들어있다. 까끌거리던 도시를 숨죽이게 한 후 무겁게 올라오는 것들. 묵직하게 들어오고 천천히 나간다. 뱃속까지 들이쉬고 천천히 내쉰다.    


그러다 눈을 지그시 뜨면 길 건너의 자동차는 빙판을 미끄러지듯 스르르 움직인다. 구르는 타이어의 마찰음은 빗물에 휘감겨 웅웅거린다. 코가 열리는 대신 눈과 귀는 옅어진다. 나른해진다. 갑자기 데자뷔가 일어난다. '그래 올해도 찾아왔구나..’ 가슴으로 말한다. 어김없이 돌아온 계절에 취한다.     

추억들이 하나둘 떠오른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치맛폭. 주말 아침이면 감긴 눈을 비비며 할머니의 방에 들어갔다. 홀로 화투점을 치는 할머니의 품으로 기어 들어가면, 요놈~ 하면서 등을 긁어 주신다. 치맛폭에 눌린 얼굴에선 희미한 나무 냄새가 났다. 동생과 숨바꼭질을 하다 몰래 들어갔던 할머니의 옷장 속. 합판에 코를 갖다 대면 싸하게 퍼지던 그 냄새였다. 할머니로 가득 차 있는 그 공간은 은밀하고 서늘했다.     


옷장 문틈으로 갈라져 들어오는 햇빛을 옷으로 가리면 눈을 떠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검은 공간. 시선의 무게가 사라지자 몸은 균형을 잃고 떠올랐다. 가벼워진 동공 속에서 심장은 날뛰고 눈을 잃어 만질 수 없는 손끝은 간지러워진다. 본능적으로 숨을 멈추다 살기 위해 크게 내뱉었다. 다시금 친밀한 것들이 코로 밀려와 바닥으로 주저앉는다. 두 손으로 옷장에 걸린 할미의 치마를 간신히 잡아 쥐었다.


계속 코를 박고 치맛폭에 숨을 내쉬면, “늙은 할미 냄새가 뭐가 좋다냐?” 라며 더 시원하게 등을 문지르던 그녀. 무안해하며 나를 사랑해줬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 쌓인 냄새. 편안히 가라앉는 냄새.    


그렇게 무심해서 아련해지는 것들.    

나뭇결에 배인 할머니의 치맛폭, 그을린 나의 팔등, 빗물에 올라오는 흙을 담은 공기, 그리고 햇빛을 받아 바싹 마른 수건.


코를 통해 내 몸까지 들어오는 이런 것들은 결국 냄새이지만, 냄새라는 한 단어로 묶어버리기엔 

아쉽다. 

그리고 허전하다.    


냄새보다 좋은 단어.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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