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미리 Dec 27. 2020

글쓰기를 계속할 예정입니다.

이유를 만들어서라도요.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나는 대단한 작가도 아니고, 원고 마감이 닥쳐오지도 않았으며, 그 누구도 나의 글을 기다리지는 않지만 그래도 거의 매일 글을 썼다. 할 말이 너무 많고 다양해서 대부분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말을 써내려 갔던 것 같다. 누가 보던 말던!


그런데, 100일 동안 글을 쓰는 프로젝트를 시작해 버렸다. 100일을 꼬박 글을 쓰고 공유한다. 글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 약 3번의 합법적인 빠짐 기회도 준다. 참가비는 있지만 매일 글을 쓰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은 없다. 글의 길이는 짧던 길던 상관없다.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건 간단하다. 업무적인 글쓰기를 제외하고(나는 스타트업에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고 사실상 에디터와 비슷한 일도 하고 있어 매일 여기저기에 올라갈 글을 쓴다.)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엉덩이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다. 생존 필라테스를 하는 사람들처럼 글쓰기 코어 근육을 기르기 위해 강제성이 한 푼 들어간 프로젝트를 시작한 셈이다.


100일, 얕봤다간 큰 코 다치는 시간이다. 30일이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나는 벌써 글이 써지지 않는다는 글을 쓰고 있다. 도대체 글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머리와 가슴, 발끝이나 손끝에서 맴돌고 있는 단어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정말 알 길이 없다. 원래부터 이렇게 몰랐나 싶을 정도로!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를 대비해 수필인지 편지인지 알다가도 모를 매거진까지 정해 두고도 나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쓰지 않는다.


글쓰기에는 분명한 매력이 있다. 그냥 날아가버리는 마음, 혹은 순간, 혹은 기억 같은 이야기들을 담아내기에 적절한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래서 매일 글을 썼다. 고장 난 라디오처럼 말하고 싶지 않을 때마다, 억울하고 분할 때마다, 걱정이 많아서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사람에게는 이유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행동할 이유! 아마 이걸 '동기'라고 부를 테지만, 나는 동기라는 단어가 너무 거창하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대충 이유라고 표현하고 싶다. 글을 쓰고 싶게 하는 이유를 만들어 주고자 시작한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가 더 이상은 이유의 역할을 못하고 있는 듯하다. 글쓰기를 위해 더 강력한 이유를 붙이지 않고서는 나는 또 한 번 두 손을 들고 "실패!"라고 외치고 있겠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이 이럴 때는 참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계속 글을 쓰려고 하는 걸까? 기록의 쓸모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은 기록이 모여서 긴 이야기가 되기도 하고, 실제로 일을 할 때 얻는 영감이 되기도 한다. 어찌 됐든 글쓰기를 통해 나는 매일 조금씩 다른 기록 위에 서 있게 되는 셈이다. 나에게 글쓰기는 내가 서 있는 땅을 넓혀가는 행위다.


오늘 밤은 침대에 누워 글쓰기의 이유를 찾아볼 심산이다. 매일 쓰고, 매일 보는 텍스트 친화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조금 더 강력한 이유를 만들 예정이다. 아마 그 이유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제목만 대충 쓰고 '저장'을 눌러 둔 작가의 서랍 속 이야기들을 마무리 지어 '발행'을 눌러버릴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냄새가 따라다닌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