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미리 Dec 22. 2020

냄새가 따라다닌다

여지의 냄새가 하염없이 난다

나는 코가 예민하다. 어릴 적에는 냄새로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할머니에게서 나는 냄새, 엄마에게 나는 냄새, 짝사랑하던 고등학교 선배에게서 나는 냄새, 친구들의 냄새까지 나는 아주 잘 구분하는 코를 가졌다.


냄새는 필연적으로 자취를 남긴다. 그리고 그 자취는 고스란히 기억이 된다. 꼬리가 달린 것도 아니고 자국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보이지도 않는데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매일 따라다니는 냄새를 맡는다.


내가 속한 세상이 조금 더 복잡해지면서 냄새에도 종류가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에게는 하나의 냄새만 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나를 꽤 오래 마음 쓰이게 하는 냄새가 있다. 여지의 냄새다.


물방울 소리를 내는 것 같은 그 냄새는 좀 꾸덕하다. 스멀스멀 올라와, 잘 빠지지도 않는다. 냄새는 얼굴에, 표정에, 손 끝에, 발걸음에 묻어서 자꾸 울상으로 만들고, 발걸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한다.


“무슨 일 있어?”

저절로 물어보게 만드는 그 냄새는, 스스로도 속인다. 대체로 저 질문의 대답은 “괜찮아”니까. 아, 물론 말뿐이라는 건 질문을 한 사람도, 대답을 한 사람도 안다. 그러면 속이는 게 아닐지도 모르지만 사람은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으니 사소한 건 넘어가도록 한다.


언제였더라, 회사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다리 밑이었다. 여지의 냄새가 짙게 베인 그림자가 보였다. 아, 아니 여지의 냄새를 맡았다. 맡자마자 나는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대수롭지 않게 집으로 가는 길, 여지의 냄새는 질기게도 따라붙었다. 자꾸 발이 무거워지는 것 같아 발을 한번 털었다. 냄새는 여전히 빠지지 않았다.


휴. 한숨이 났다.

“무슨 일 있어?”

“아니. 괜찮아.”


여지가 습관적인 대사로 답했다. 어김없는 퇴근길이자 첫 회사의 마지막 퇴근길에 나에게도 여지의 냄새가 났다. 여지는 어김없이 괜찮았지만, 냄새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계속 길어졌다.

작가의 이전글 하마터면 설렐 뻔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