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을 대충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친다.
오늘의 저녁은 매콤한 소고기 땡초김밥이다. 평범한 김밥 속에 한 번씩 씹히는 땡초 덕에 질리지 않고 세 줄이나 먹어버렸다.
김밥은 의외로 손이 꽤 많이 가는 음식이다. 밥이랑 김이랑 대충 속재료를 돌돌 싸매서 자르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면 큰 오산이다. 밥에는 고소하고 감칠나게 양념을 해 놔야 한다. 당근은 채 썰어 기름에 한번 달달 지져야 하고, 시금치는 소금물에 짧게 데쳐 내야 한다. 달걀은 또 어떻고. 도톰한 김밥용 달걀을 위해 몇 개의 알이 깨졌는지는 비밀이다.
자, 대충 준비가 됐으면 김밥을 싸는 발 위에 김을 올린다. 그리고 양념해 둔 밥을 올리고 적당히 펴 준다. 그 위에는 시금치와 우엉, 당근과 달걀, 그리고 단무지가 올라간다. 기호에 따라서 소고기나 땡초를 넣어도 좋고 참치를 넣어도 좋고 치즈를 넣어도 좋다.
그다음에서야 돌돌 말아질 수 있다. 말고 나면 그 위에는 참기름이 솔솔 올라간다. 약간의 시간을 기다렸다가 적당한 크기로 자른다. 이때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김밥의 옆구리가 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밥은 이렇게나 번잡스러운 음식이다. 이렇게 정성이 들어갔으니 맛이 없으면 그게 반칙인거다.
나는 김밥처럼 살기로 했다. 그냥 평범하게 싸도 맛있고, 치즈도 참치도 소고기도 땡초도 어울리는 멋진 음식. 떡볶이 국물에 찍어 먹어도, 라면에 같이 먹어도 맛있는 만능 음식. 그럼에도 쉽사리 싸기에는 정성이 많이 필요한 그런 음식.
어디에 가져다 붙여도 중간 이상은 하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는 뜻이다. 지금 써 놓고 보니 너무 큰 목표라고 느껴지지만, 뭐. 나는 3년 차 마케터다. 마케터보다 마케팅을 잘하는 사람이 넘쳐 흐르는 시대에 마케터란 매일을 자괴감을 달고 사는 직업이다. 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기죽지 않고 살아남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 전, '마케터로서 잘한다는 게 뭐라고 생각해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뭐, 일단 재능이지 않을까요? 고객이 원하는 걸 척척 만들고 척척 가져다 낼 수 있는 거 말이에요.' 무심하게 답했다. 사실 내 속은 하나도 무심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그런 재능은 없다. 재능이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나는 꽤 오랜 시간 방황했다. 남들보다 잘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마케터는 성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닌가. 그 과정에서 나는 철저하게 재능이 없음을 느꼈다. 다행인 건 세상은 재능으로만 이루어진 건 아니라는 점이다. 프로 셰프의 손길과 최고급 고기가 아니면 어떤가. 속에 무엇이건 넣고 썰어내면 제 맛을 내는 김밥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김밥이 될 참이다.
김밥의 준비 과정은 만만치 않다. 문득 엉덩이에 힘이 빡 들어갔다. 준비해야 할 재료가 많다.
이 모나지 않고 맛스러운 음식 앞에서 일에 대한 생각이라니. 어쩔 수 없이 한 줄을 더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