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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미리 Mar 31. 2021

열정이라는 건 뭘까

뜨거운 거 말고 뜨듯한 거


얼마 전 핸드폰 화면을 통해 ‘열쩡 열쩡 열쩡’을 외치는 한사랑 산악회를 보면 눈물을 쏙 뺐다. 그들의 메소드 연기에 한번, 열정을 외치는 회장님의 모습에 또 한 번.


그의 열정은 정상에 도착할 때까지 식지 않는다. 따라가는 회원들에게는 그런 열정은 없지만 그래도 산을 오른다.


나는 열정적으로 살고 싶지 않다. 나에게 열정은 너무 뜨겁다. 미지근하게, 포기하고 싶을 때 포기하고,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지치지 않도록 내 보폭으로 걷고 싶다.


요즘의 나는 변온동물 같다. 높은 온도에서는 뜨거워지고 낮은 온도에서는 차가워진다. 내 정상체온을 찾기도 전에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졌다가를 반복한다. 뜨거운 아메리카노처럼 사는 셈이다. 제 체온을 찾지 못하면 끝이다. 차가운 물수건도 해열제도, 어떤 백신도 치료하지 못하는 불치병이기 때문이다. 서른이 다 돼가는 나는 큰일 났다고 생각하면서도 냉탕과 온탕을 부지런히 왔다 갔다 거린다. 가끔은 데일 것 같은 뜨거움도 나쁘지 않다. 식힐 시간만 잘 주어진다면.


하루의 여덟 시간 정도를 그렇게 보내고 나면, 맥주 한 캔의 보상이 주어진다. 짧은 보상을 맛보고 나면 어느새 자야 할 시간이다.


침대에 누워서는 오늘 꾸게 될 꿈에 대해 생각한다. 꿈은 누가 물어다 주는 건지, 어딘가에 잠들어있는 정상체온의 내가 만들어내는 세상인지, 신화에 나오는 몽마들이 불어넣는 건지. 그런저런 실없는 생각을 하다 보면 정말 꿈속으로 갈 수 있게 된다.


꿈에서 나는 미세먼지라고는 하나도 없는 파란 하늘을 보며 유럽풍 테라스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신다. 높은 건물이라고는 없어서 시력이 4.0 정도는 되는 기분을 느끼며 유연하게 노트북을 켠다. 내가 꿈꾸는 삶은 디지털 노매드의 삶인가 아니면 백수의 삶인가. 어찌 됐건 꿈은 결말까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알람 소리가 들리면 꿈에서 깬다. 핸드폰 속 시계를 힐끔거리고 나서 별거 아니지만 아픈 허리에 도움이 될 것 같은 스트레칭을 해 본다. 조금은 빤빤해진 허리와 함께 온탕으로 헤엄친다.


그러다 문득 나와 함께 온탕을 헤엄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떠올린다. 추켜올린 마스크를 쓰고 나와 함께 더울 때나 추울 때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매번 같은 시간에 만나는 익숙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그들의 삶을 상상해본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가만히 팔짱을 꼈다. 웅크리기의 자세다. 버스에서 체온을 보존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자세다. 삼 년간 버스에서 길러온 노하우다. 눈을 감기 전에는 역시 열정이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뜨듯함은 어디에 있을까. 버스에서는 꿈을 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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