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푸른 Nov 29. 2019

<새로운 눈을 갖는 것>

기억을 더듬어 지하철 3호선에서 내려 터벅터벅 길을 걸어갔다. 왼쪽으로 꺾어 계속 걸어가니 대림미술관이 눈에 보였다. 친구와 갔던 코코폴리탄 전시회 이후로 2번째 방문이었다. 스페인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인 하이메 아욘의 전시회였다. 기대를 하고 왔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으로 작가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건지 궁금했다. 그의 작품과 스케치에서 느껴졌다. 아이처럼 순수하며 새로운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나의 눈길을 끈 스케치가 하나 있었다. 나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아닌 오른쪽에서 칼을 들고 왼쪽에 있는 사람의 목을 찌르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치 피카소의 그림을 생각나게 하는 얼굴이었다. 처음에는 거대한 두 사람에게만 눈길을 주었다. 나는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왔다갔다 거리는 것에도 불구하고 쪼그려 앉아 그림을 샅샅이 살펴봤다. 다른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왼쪽에 있는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목이 벌어져있는 사람이 입고있는 팬티에 늑대와 칼이 그려져 있었다. 또한 머리에는 탁한 연기를 내뿜고 있는 두 개의 관이 있었다. 늑대와 칼을 그린 이유는 남성에 대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편견을, 관을 그린 이유는 산업화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나는 작가가 이렇게 그림을 그린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를 수도 있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림 오른편은 동심의 세계이며 왼편은 동심이 파괴된 현실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주관적인 해석이지만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 나에게는 위협적이기보다 동심을 지키기 위한 저항의 몸짓으로 읽혔다.


예술가 하이메 아욘과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어떨까. 그런 세상에는 상상속의 생명과 신비로움이 가득찬 동화같은 그림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다. 상상만 해도 즐거운 기분이다. 작가는 우리가 사회적인 통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기를 적극 권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로 나도 시도해보기로 했다. 누구에게도 영향을 받지 않고 때묻지 않은 순수한 눈을, 시선을 갖기로 했다!


여기서 글을 마무리지으려고 했으나 하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전시회를 보면서 나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친구와 봤던 전시회에서도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다.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태도와 감상하며 나누는 말에 놀라기도 했다. 친구와 봤던 것처럼 핸드폰을 당당히 손에 쥐고 카메라 셔터를 꾹 눌러 '타타타타탁!' 소리를 내며 연속촬영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사람은 없었지만 전시회를 보러 온 목적이 사진 찍으러 온 것이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은 많았다. 간혹 나처럼 혼자 이어폰을 끼고 작품 설명을 들으며 천천히 감상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나는 당황하면서 동시에 안타까웠다. 나는 전시회를 보러 오는 목적은 작가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무슨 말을 하는지, 그에 대해 나는 어떤 의견을 갖고 있는지 주고받는 행위가 전시회를 보는 목적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저 사진을 찍을 뿐이었다. 전시회를 통해서 사람들이 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 오늘 전시회 가서 이런 것들 보고 왔어! 어때? 너도 한 번 가보고 싶어지지 않니?'라고 말하기 위해서일까? 사진을 찍는 것 자체에 대해 뭐라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나 또한 사진을 많이 찍어왔기 때문이다. 그저 사람들이 단순히 유명한 작가의 작품을 보고 왔다는 증명사진을 찍기 위해서 전시회를 보는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를 살짝 들으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나 또한 작가가 원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작가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 이 그림은 뭐를 닮았는지 등 이미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만으로 전시회를 판단하고 있었다. 작가의 특이한 작품을 보면서 모든 예술가를 정신이 '이상한',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말도 있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할 권리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전시회를 즐기는 순간만이라도 사람들은 사회적 편견과 개인적 편견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까. 작품 그 자체에 빠져 이것저것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의 즐거움을 맛보면 그 즐거움이 얼마나 크며 매력적인지 알 수 있을 텐데. 즐거움에서 쉽게 헤어나오기 힘들다는 것도! 작품 감상의 진정한 매력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예술적인 '감성'을 일깨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새로운 눈을 갖고 주변을 바라볼 때 나타날 변화가 얼마나 클지 상상해 보시기를 바란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