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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푸른 Aug 12. 2020

책을 먹다, 생각을 읽다

모두가 함께/『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_강남순





해묵은 갈등은

여전히



우리는, 아니 나는 언제부턴가 사람을 혐오했다. 특히 '남자'를 꺼려했다. 주로 '여자'를 상대로 일어나는 숱한 사건을 보며 남자는 여자를 성적인 대상으로만 인식한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진 순간부터 남자는 신뢰할 수 없는 존재였다. 나한테만 적용되는 문제는 아니었다. 곳곳에서 일어나는 소음도 '젠더' 갈등으로 불거진 것이었다. 젠더 갈등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해묵은 문제이다. 아직까지도 갈등은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해를 거듭할수록 격화되고 있다. 사회를 휩쓸고 있는 젠더 갈등은 '여성' vs. '남성'의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 그 속에서 둘의 관계는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대결 구도에서 여성은 절대적인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점차 혼란스러워졌다. 대립각을 세운 채 서로를 향하여 거친 비하를 일삼으며 문제가 심각해지도록 만드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혼란스러움과 겹쳐 충격에 휩싸여 있을 때이기도 했다. 한 여대에서 성소수자의 입학을 거부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법적인 절차를 거쳐 공식적으로 '여자'가 됐음에도 그녀는 발을 내디딜 수 없었다. 학생들은 그녀를 '진짜' 여자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애초에 가만히 있으면 될 것을 왜 문제를 키우냐'와 같은 공격적인 언행으로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다. 왜 그들은 그녀를 거부했던 것일까. 단지 여자이기 전에 남자였다는 이유만으로, 가부장제를 존속시키는 데 한몫한 존재였다는 이유로 성소수자를 매몰차게 밀어낼 수 있는 걸까.



서로를 향해 날 선 말을 쏟아내고 있는 젠더 갈등을 연상케 한다. 

Photo by Andre Hunter on Unsplash






적대자가 아닌 

연대하는 존재로

       



나에게 따뜻하면서도 밝은 한줄기 빛이 찾아들었다. 『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는 강남순 교수님이 집필한 책이었다. 처음으로 만나 본 페미니즘에 대한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지적하는 문제점은 정확함을 벗어나 예리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며 경이로움을 맛본 이유였다. 나의 머릿속을 장악하고 있던 혼란스러움을 파악할 수 있었다. 혼란은 이해의 부족으로부터 나왔다. 나는 폭력적으로까지 보이는 갈등에 뛰어들고 싶지 않았다. 대부분 남성을 향해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했지만 여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격적인 말투는 나로 하여금 갈등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고 난 후 그들의 폭발적인 분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가부장제에서는 여자와 남자 둘 다 희생자였다. 여자는 수백 년 간 남자의 성적인 욕망을 채워주는 존재로 치부되었다. '모성'의 신화를 바탕으로 하여 여자의 생물학적 기능만 강조해왔다. 여자다움이란 이미지를 만들어 여자들을 새장에 가두어 버렸다. 남자도 가부장제 사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남성성의 신화 때문이었다. 남자로서 갖는 힘을 주변 사람들에게 증명해 보이지 못하면 딱지를 붙였다. 그런 남자들을 '여성스러운 남성', '게이'라고 분류했다. 서로 피해를 입었는데도 마치 가해자인 것처럼 손가락질을 했으니 분노가 되풀이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페미니즘 논의에서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은 '우리(여성)-그들(남성)' 또는 '옹호자-적대자'라는 상충적 대립의 축을 굳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료 인간으로서 보다 나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 각기 지니고 있을 '인식론적 사각지대'를 어떻게 일깨울 것인지 '설득의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 이 설득 과정에서 상이한 이해를 가진 이들이라도, 지속적인 인내를 작동시키면서 여성과 남성이, 또는 다양한 성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결국 서로를 필요로 하는 '동료-인간'이라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_『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강남순, 한길사(2020), p.252~253 중에서  



지금처럼 갈등을 지속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고착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악화하는 과정을 밟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적대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같이 해결해 나가기 위해 '연대'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방법을 찾아나가기 위한 주체로서 싸움을 멈춰야만 하는 순간에서 우리는 어떤 사회를 지향해야 하는 걸까.




                            


모두가 평등한 

사회



"페미니즘은 긍정의 언어, 즉 대안적 세계를 제시한다. 현재 구조가 지닌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여성과 남성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서 간성이나 트랜스젠더, 장애, 국적, 종교 등 다양한 근거로 그 어떤 사람도 차별과 배제를 경험하지 않는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세계를 지향한다."

_『페미니즘 앞에 선 그대에게』, 강남순, 한길사(2020), p.261 중에서



어떠한 이유로도 한 사람을 배타적으로 대우하지 않는 것.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평등한 사회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대학교로부터 끝내 입학을 거부당한 그녀가 떠올랐다. 진정한 페미니즘이 원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 지금도 나는 평화롭게 글을 쓰고 있지만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을 소수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을 위해 새로운 사회를 향한 발돋움이 간절한 때이기도 하다. 이 글을 공유하며 누구도 차별당하지 않는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기를 바란다.




서로 다르지만 한마음으로 손을 모으는 것.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Photo by Tim Marshall on Unsplash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610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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