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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eric Kim Nov 30. 2019

자식이 행복한 날이 부모가 행복한 날이다.

하키 경기를 보다가


본인 집에 머무는 동안엔 '할머니 베이비시터 찬스'를 원 없이 쓰라며 매일매일 무료 쿠폰을 발행해주시는 고마운 시어머니 덕분에 하루에 한 번씩 바깥바람을 쐬고 있는 요즘이다.

처음 아이를 시어머니께 맡기고 나갔던 날엔 눈은 계속 시계를 향하고, 많은 사람들의 수다에 적응을 못한 귀에서는 연신 윙윙 소리만 들렸었는데,

뭐든지 처음이 어렵지 이제는 몸이 알아서 밖으로 향하는 걸 보며 나라는 인간은 참 적응력이 뛰어난  동물이 맞음을 실감하게 된다.


응원단의 경쾌한 연주와 귀여운 몸동작에서 대학생들에너지와 풋풋함이 느껴진다. 얼음이 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서늘하게 유지된 실내를 젊음의 열기가 가득 채운다.

'나도 저들처럼 두 발이 땅 위에 둥둥 떠있는 것처럼 뭐든 신나고 재미났던 그 시절이 있었지' 하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늙은이 같아 피식 웃고 만다. 코끝은 시린데 마음은 따뜻하다.


주심이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하키 퍽을 차지하려는 다툼이 치열하다. 하키 스틱끼리 서로 부딪히며 만들어낸 소리가 아이스링크 천장에 닿았다가 툭 하고 떨어진다. 사각사각 얼음을 깎으며 스케이트를 타는 선수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링크를 한 바퀴 돌아 상대편 골대 앞에 와있다. 잠시도 눈을  수 없게 만드는 박진감에 나도 모르게 쥐어진 주먹에서 땀이 난다.


경기가 잠깐씩 멈춰진 틈을 경쾌한 음악에 맞춘 치어리더들의 절제된 안무가 메워준다. 그녀들의 손에 들려있는 반짝이 응원수술만큼이나 빛나고 예쁜 그네들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여자인 내가 봐도 참 어여쁜 치어리더들이긴 한데, 남편 옆에 앉아있는 한 중년의 남자가 그녀들을 향해 수도 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진다.

너무 대놓고 휴대폰을 들이댄다 싶어서 그 아저씨가 눈치채게끔 나도 대놓고 그를 쳐다본다. 그런 내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그 아저씨가 남편 오른쪽 귀에 대고 뭐라 뭐라 한다. 그러고는 둘이 같이 웃는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더더욱 어이를 상실한 표정을 한 내게 남편이 말한다.

"이 분은 저 여학생 아버지 이시래!" 하며, 치어리더들 중 한 명을 손으로 가리킨다.

"뭐?!"

놀란 눈을 하고 그 아저씨 쪽을 쳐다본 나는 내 착각이 불러일으킨 실수에 그리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자상하게 웃고 있는 아저씨와 그의 옆 좌석에 앉아있는 여성분, 그리고 그 옆에 계신 할머니.

자세히 보니 모두가 다 닮았다. 그들흐뭇한 시선은 경기장 쪽이 아닌 다른 한곳에 집중되어 있었다. 딸이자 손녀인 그 치어리더에게로.

부모님과 할머니의 사랑 가득한 눈빛이 오직 본인만을 향해있는 것을 아는 그녀의 율동과 표정이 찬란하게 빛났다. 아름다웠다.


다섯 시간 동안이나 아이를 돌봐주신 시어머니께 힘들지 않으셨냐고 여쭤봤더니, 웃으시며 하나도 안 힘들었다 하신다.

즐거운 시간 보냈냐고 물어보시길래 덕분에 정말 행복한 날이었다고 하니,  다행이라며 어머님이 덧붙인 말씀.


"너희가 행복한 날이 내가 행복한 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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