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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오 Jan 21. 2021

달리는 열차에서 뛰어내리다

사람을 온전히 담을 만큼 큰 직업은 없다

생애 가장 아름다운 가을이었다. 아파트 내 은행나무 무성한 잎들이 일제히 노랗게 물들었고 붉고 붉은 단풍나무가 아파트 안 대로에 꽃처럼 피어있었다. 출퇴근길에 매일 걸어 다녔던 길인데 새삼 아름다움의 신세계를 본 것처럼 벅차고 설렜다. 만물이 결실을 앞둔 아름다운 계절 대낮에 마음껏 햇살을 즐기는 자유 앞에서 며칠 전까지 그토록 중요하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고객사 이슈나 경쟁사 대응방안 같은 회사 업무는 한없이 하찮게 여겨졌다.


2003년 가을 퇴사했다.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14년 만이었다. 그 사이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첫 회사가 컨설팅 회사여서 프로젝트를 하느라 결혼을 앞두고 혼수물품을 사러 다니기가 힘들다는 이유로 퇴사를 해버렸다. 결혼 큰아이를 출산하고 다시 입사해서 일하다가 외국계 솔루션 회사로 이직한 이래 줄곧 직장생활을 계속했다.


가정과 직장 외에는 다른 생각할 틈도 없는 삼십 대를 보냈다. 가정과 아이들이 내게 가장 높은 우선순위였으나 현실은 위급한 2순위가 덜 급한 1순위를 밀어내는 일이 많았다. 때로 직장은 가정의 도피처이기도 했다. 도우미가 있었지만  집안일은 시시콜콜한 일까지 모두 나의 손과 판단을 거쳐야 했다. 주말이 되면 모시고 사는 시어머니와 가족을 위해 평일에 직장 다니느라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분주했다. 특식을 하느라 종종거리며 바빴고 일주일치 장도 미리 봐서 냉장고를 채웠다. 일요일 저녁 누우면 다음날 회사 간다는 사실이 반가울 정도로 가정에서 더 휴식이 없는 바쁜 세월이었다.


피로가 누적되는 나날이었지만 일을 그만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일은 거기 따르는 보수 이상의 의미였다. 내가 세상에서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으며 가치 있는 인간인가가 해내고 있는 일로써 증명된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기술과 트렌드를 따라가기 위해 항상 고민하고 공부했다.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긴장과 스트레스도 내가 선택한 일이라 여기며 견뎌냈다.


균열은 뜻밖의 곳에서 시작됐다. 공과금을 자동이체로 납부했는데 무슨 이유에서 자동이체가 해지되면서 연체가 되었다. 몇 개의 공과금과 마땅히 처리되어야 할 일들이 제시간에 해결이 안 되는 사소한 일은 임계치에 다다른 피로한 심정이 와르르 무너지게 하는 마지막 성냥개비 같은 역할을 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하느라 자정을 넘겨 일하다가 택시로 귀가하던 기간이 얼마간 이어지던 중이었다. 출근길에 운전을 하던 남편이 말했다. ‘큰 애 손톱 밑에 때가 잔뜩 끼어있더라. 당신은 집에서 뭘 하길래 손톱도 못 깎아줬어?’ 황당했다. 남편은 자타공인 평소 자상하고 배려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 나이 평균 남자들이 지니고 있는 가부장적 경향과 남녀 역할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곤 했다.


팀이 바뀌면서 새로 입사한 대기업 출신 매니저와 맞지 않아 갈등도 있었다. 일이 없어도 팀원들을 끌고 나가 저녁과 함께 반주도 하고 친소관계를 형성해가며 야근을 종용하는 타입이었다. 업무 시간에 최선을 다해 처리하고 퇴근하려는 나와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일 그만 두실 것 같지 않은데요’ 퇴사 결심을 미리 전했을 때 친한 동료들은 내가 일을 그만두고 사는 삶에 우려를 표했다. 나 역시 알 수 없었다. 퇴사 전 파트타임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타진해 본 몇 회사에서는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나는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종이에 그 일을 하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나열하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를 분석하는 방법론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퇴사는 그렇게 합리적인 방법으로 되지 않았다. 잃게 될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발목을 잡고 거기까지 이룬 알량한 자리에 대한 욕심은 나를 제자리에 눌러놓으려 했고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에 묶으려 했다. 당시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직장으로 꼽히기도 했던 외국계 회사의 시니어 컨설턴트라는 자리도 쉽게 버리기에는 아까운 기득권이었다.


나는 더 이상 분석하지 않고 가슴이 시키는 대로 했다. 정차역이 정해져 있지 않은 현실이라는 달리는 열차에서 내리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바로 지금 뛰어내리는 것이다. 백화점에서 티셔츠를 화이트를 살까 블루를 살까 고민할 때는 갈피를 못잡고 사정없이 흔들리지만, 인생의 터닝포인트마다 중요한 결정에는 단호했고 마음이 선 뒤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퇴사로 인해 나의 삶이 달라졌는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름다운 가을을 한 달쯤 즐기고 나니 일거리가 들어왔다. 전 직장에서 강의 업무를 수년 했던 경험이 있어 다시 강의를 시작했고 지금까지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다. 다음 달부터 시작된 강의는 이어져서 한 달에 반 정도는 프리랜서로서 일하고 있다. 프리랜서도 나름 바빠서 과정 개발도 하고 강의 준비도 해야 한다. 일이 들어왔는데 연속으로 거절을 하면 진짜 프리 해질 수 있기 때문에 맘 내키는 대로 할 수도 없으니 일에 매이기도 한다. 회사원으로서 강의를 했을 때와 다른 점은 강의할 때나 강의가 없을 때 둘 다 행복한 시간이라는 것이다. 강의를 하면 수입이 생겨 좋고, 강의가 없으면 놀 수 있으니 좋지 않은가.


퇴사 후에 삶에 대한 나의 태도와 지향은 달라졌다. 회사를 그만두기 전에도 나는 현실에 순응적인 편이라 시스템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을 할 때는 시간을 회사에 맡겨놓은 것과 같았다. 하루를 맡기고 남은 시간조차 그 시간을 위해 예비하는 시간이 되곤 했다.


출퇴근의 기나긴 행렬에서 빠져나오고 나니 다양한 세상이 보였다. 무엇이든 배우기 좋아하는 터라 여러 배움터에서 관심 있는 분야 강좌들을 수강했다. 어떤 강의는 지적인 열망을 채워줬고 어떤 강의는 시간이 아까웠다. 학부 때 전공을 살려 잠시 중학교 방과 후 국어교사도 하고, 논술강사도 해봤다. 생계를 위해서는 IT 강의를 계속하며 틈틈이 한 모든 경험은 다 의미를 남겼다. 나는 세상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 새가 새로운 세상에 나오려면 알을 깨고 나오기 전에는 다른 세계를 얻을 수 없으니 그가 속한 세계를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그 길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길이 있다. 일이 나의 의미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을 온전히 담을 만큼 큰 직업은 없다. -스터즈 터클의 <일> 중에서


-최근에 읽은 <9번의 일>이라는 김혜진 작가의 소설 첫 장에 쓰여있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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