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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오 Apr 27. 2021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자주 감기에 걸리고 잘 체하는 체질을 타고났다. 그래서일까 나는 유난히 통증에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엄살이 심하다, 엄살이 많다고 말한다. 아픈 걸 아프다 하는 것도 엄살인가 하는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편은 진찰한 정형외과 의사가 말하길 매우 심한 허리 디스크 환자 중에서도 몇 번째에 들 정도로 심한 허리디스크 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처음 발병해서 심한 통증으로 걷지도 못할 때 병원에서 가장 강한 진통제를 조제해줬지만 그는 먹지 않았다. 진통 효과가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프다고 소리치지도 짜증을 내지도 않았다. 그가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사이에도 나는 머리도 아프고 목 근육도 뭉쳐서 아팠다. 나는 아플 때는 빠짐없이 아픈 곳과 세세한 증상을 주변에 알려주는 편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나의 아픔을 엄마에게 언니에게 동생에게 고했지만 그들이 멀리 있으니 가까이 있는 남편에게 여기저기가 이렇게 저렇게 아프다고 자세히 일러주었다. 내 얘기를 듣고서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고민이 되면 그는 눈치를 보며 성의를 보이느라고 한마디 한다. '배는 안 아프고?'



엄살은 '아픔이나 괴로움 따위를 거짓으로 꾸미거나 실제보다 보태어서 나타냄. 또는 그런 태도나 말'인데 나는 아픈 만큼 표현하는 것이니 엄살이라 할 수는 없다. 신체적인 고통에 민감한 나는 남들이 잘 이해 못하는 타인의 고통에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심리적인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으로 아프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의 고통을 견주어서 얼마나 아플까 짐작이 가서 같이 아픈 것처럼 얼굴이 찡그려지고 아픔을 공감하는 기색을 보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가끔 유리 같은 내 몸이 원망스럽다.  남들은 괜찮은데 아침저녁 기온 차가 나고, 집과 바깥의 온도 차가 심하면 두통이 생기고 잘 체하기도 한다. 요가를 열심히 하면 온 몸이 아파서 끙끙 앓는다. 왜 아픈가 생각해보면 전날 스쿼트를 열심히 했을 뿐이고…


며칠 일찍 일어나서 강변이 보이는 식탁에 앉아 글을 읽든 쓰든 해보자 한 적이 있다. 미세먼지로 주변이 온통 흐린 날, 북쪽 창 밖으로 늘 보이던 남산 타워가 감쪽같이 지워져 있었다.  평상시 무심히 보던 풍경이라 남산 타워가 없다는 것만 알겠고 어디쯤 있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상상 속에서 흐릿한 남산 실루엣의 정상에, 왼쪽에, 오른쪽에 남산 타워를 놓았다가 지웠다.


늘 보던 풍경에서 지워지고 나서야 존재가 드러나는 것처럼 무언가의 존재는 없음으로 증명된다.


건강한 나는 내게 귀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나는 이관염이라는 병을 자주 앓는데 그럴 때는 머리 왼쪽 토막은 기계실에 들어가 있는 것만 같다. 윙 하는 소리가 울리고 내 말은 0.1초 뒤늦게 내 귀에 도착한다. 공교롭게도 그런 상황에서 회사에서 고객 대상의 세미나에서 발표를 하고 질의응답까지 했던 적이 있다. 그때는 내 온몸이 귀다. 내겐 귀만 느껴진다. 내게 어깨가 있다는 것도 내게 목 뒤에 어느 지점이 있다는 것도 그들이 고통으로 자기주장을 할 때에서야 알게 된다.


나에게 소중한 무엇인가가, 그것이 건강이거나 사랑이거나 또는 인정이거나 갖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는 그것을 자각하고 맹렬히 원하게 된다.


우리는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자신이 치료하던 조현병 환자에게 죽음을 당한 임세원 교수는 신경계의 문제로 심한 고통을 겪으며 그 자신이 우울증을 앓았다. 그가 자신의 저서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에서 자신이 겪는 신체적인 고통을 묘사한 장면을 읽고 있으면 내 몸이, 발바닥이, 허리가 아파온다. 머리가 쭈뼛할 정도다. 그는 ‘고통이 나를 지배하게 해선 안 된다’고 한다. 고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것이 단지 내 인생의 작은 조각이 되도록 하겠다는 마음이다.

 

물론 그가 겪었던 고통과 비교할 수준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고통이 두렵다. 일주일 동안 처음 하는 온라인 강의를 진행하며 병원 갈 시간이 없었던 나는 지금 온통 사랑니 하나밖에 없는 듯하다. 그래도 고통이 나를 지배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내 인생의 작은 부분일 뿐이다. 사랑니와 그 주변만이 살아서 내가 여기 있다고 외치고 있는 지금도.


삶을 살지 않은 채로 죽지 않으리라

                                                    도나 마르코바


넘어지거나 불에 댈까

두려워하며 살지는 않으리라

나는 나의 날들을 살기로 선택할 것이다.

내 삶이 나를 더 많이 열게 하고,

스스로 덜 두려워하고

더 다가가기 쉽게 할 것이다.

날개가 되고

빛이 되고 약속이 될 때까지

가슴을 자유롭게 하리라.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상관하지 않으리라.

씨앗으로 내게 온 것은

꽃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로 가고

꽃으로 내게 온 것은 열매로 나아가는

그런 삶을 선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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