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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오 May 16. 2021

행복의 공식

바라지 않음을 바라는 마음

행복이란 무엇인가?

욕망하는 것을 분모에 놓고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분자로 계산하는 것이 행복의 공식이라고 한다.

자족하지 않으면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뜻 이리라.


부여 무량사의 동백꽃

차분히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이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러닝 머신 위에 올라 계속 같은 속도로 달려가는 것처럼 그렇게 급하게 뛰어다니던 젊은 시절, 어느 날이었다. 을지로 3가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러 바삐 가다가 전철 전광판에 LED로 표시된 글자가 흘러가는 것을 무심코 읽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강렬한 문구 앞에 나는 멈춰 서서 몇 번이나 글자가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며 읽었다. 나중에서야 그 글귀가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스스로 쓴 묘비명이고 LED 글자는 책 광고라는 것을 알았다.



   



학창 시절의 나는 경쟁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성적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우연히 좋은 결과가 나올 때도 있었지만 다음에 더 잘해보겠다 하는 장한 결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꿈이나 열정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지원한 대학에 합격 통지를 받은 해 연말 마지막 날에서 다음 해 1월 1일 0시로 넘어가는 시간에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방영되는 것을 지켜봤다. 평생 처음 보는 세기의 퍼포먼스를 놀라운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마음속에 열패감이 몰아쳤다. 기이한 선들이 어지럽게 화면을 채웠다가 예상할 수 없게 흩어지던 비디오 아트를 이해하고 감명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학교라는 제도권에서 아무 생각 없이 주어진 대로 살아왔던 순응적인 학생의 눈에 무정형의 의미 없는 선과 면의 조합은 놀랍고 무한한 세계의 가능성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그 세계에는 영원히 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자조적인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입학한 학교를 다닌다면 나는 4년 뒤 국어교사가 될 터인데 그 길은 가보지 않아도 너무도 뻔한 아무 기대할 것도 없는 고리타분한 인생이 될 것 같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당연히 걷게 될 길이라고 여겼던 교사의 취업 문이 생각보다 좁아 뻔한 인생조차도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가장 두려웠던 것은 같은 바퀴를 끝없이 돌려야 하는 다람쥐 같은 인생이었다. 나는 매일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IT 컨설턴트가 되었고 원했던 대로 늘 새로운 일을 하느라 매일 공부하고 새로운 것을 적용하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러나 자녀도 있고 시모님도 모시고 사는 대한민국 주부의 역할을 해내는 동시에 변화무쌍한 업무를 감당하는 것은 늘 해야 할 일들에 치여 전철 안에서도 뛰듯이 살아야 하는 피로하고 고단한 삶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제 몇 년 후 내가 도달해야 할 목표는 무엇일까?

나는 바라는 것이 내가 가진 것을 넘지 않아 욕망으로부터 놓인 삶을 꿈꾼다.

성경을 읽으며 신앙을 통해 내가 도달해야 할 경지도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했다.

입시나 취업 등 어려운 인생의 관문을 통과해야 할 때 기독교인들이 응원의 메시지로 애용하는 구절이 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절대자의 능력으로 어떤 어려움이든지 이겨 내고 승리할 수 있다는 메시지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성경 말씀 바로 앞 구절은 알려하지 않는다. 이 전능한 메시지는 전제조건이 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애초에 이 달콤한 만능 메시지는 사도 바울이 부귀영화나 박해의 핍박과 궁핍함이라는 세상의 굴레에서 모두 자유로워지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할 수 있었던 말인 것이다. 배고픔과 배부름 마저 초월한 그에게 능치 못할 일이 있겠는가.


몇 년 전 친구와 같이 주역을 공부하면서 나는 '戊土' 일간을 가진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 '토' 일간의 욕망은 '무욕'의 마음이라 한다.


나는 세상이 바라는 욕망에서 놓여진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 싶다.

내 존재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나와 세계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표지부터 Pixabay로부터 입수된 Pixabay로부터 입수된 Couleur님,  Jill Wellington님의 이미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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