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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오 Nov 25. 2021

나는 기억한다

나는 잊고 싶은 것들을 잊으려 하고 기억하고 싶은 것들은 기억하려고 하지만 때로 기억나는 것들 중에는 잊고 싶었지만 기억 너머로 사라지지 않고 물속에서 스트로품이 불쑥 올라오듯이 떠오르는 것도 있다.


어린  시절 억울해서 꼭 기억해 놓아야지 했던 것을 기억한다. 엄마가 TV를 못 보게 했던 일인데 왜 못 보게 했는지는 잊었고 무척 분해서 내가 꼭 기억해 둘 거야 했던 것만 기억으로 남았다.


어린 시절 울며 걸어가던 길에 반짝이던 사금파리 한 조각, 엄마가 소풍 전에 사주었던 원피스, 괴도 루팡 소설책의 표지가 기억난다. 2부제 초등학교 오후반, 학교로 가던 길은 좌우에 기계설비나 철물점이 즐비한 거리였다. 걸어가는 길바닥에 떨어져 있던 온통 검은 부스러기들, 구부러진 못이나 녹슬어 쓸모없는 철 조각들, 학교를 마치고 다시 그 길을 걸어올 때  해가 지려할 때의 쓸쓸하고 공허한 기분, 외로움 이었을지도 모를 배고픔, 그런 날을 기억한다.


나는 기억한다. 산에서 힘들여 올라가 힘들었던 기억이 아니라 산등성이에 오르면 갑자기 불어온 바람으로 산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던 분분한 꽃 이파리들, 바라보던 순간의 봄날의 나를 기억한다.

어제는 기억하지 못하는데 먼 과거의 날들은 새롭게 직조되어 떠다니곤 한다.


나는 기억한다. 지나온 날들을. 그러나 지금을 더 많이 기억하려 한다. 무엇을 생각하고 겪고 느끼는가. 지금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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