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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레오 Nov 25. 2021

1. 목공이라는 일

< 나에게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6개월 쿠폰이 생긴다면  무엇을 배우겠는가 >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6개월 쿠폰에

내게 6개월 무엇이든 배우고 싶은 일에 쏟을 수 있는 시간까지 허락하기를 바라며

복권에 당첨된 기분으로 온갖 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해 본다. 

스포츠센터 에어로빅 반에 들어갔다가 비록 노래 한 소절만큼의 율동도 못 따라 한  몸치지만

그래도 차근차근 하나씩 가르쳐 준다면 춤도 배우고 싶고,

혹시 대단한 보컬 쌤을 만난다면 나 같은 음치도 코로나 끝나고 노래방 갔을 때

동행들 깜짝 놀라게  잘 부를 수 있는, 아니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 몇 곡쯤 배우고 싶기도 하다.


그래, 결심했어!

난 목공을 배우겠다.

손으로 뭘 만드는 일에도 재주는 없다. 내게 있는 건 그저 부러움과 열정이다.

국산 느릅나무로 만든 도마에 공들여 샌딩을 하고 미네랄 오일을 발라 반들반들 만들어서 주방에 세워놓고

지인들에게 선물도 하고 싶다.

오래전부터 큰 테이블을 만들고 싶었다. 단단한 오크나무를 통으로 만들어도 좋고,

쪽을 이어서 만들어도 좋다.

다 만든 테이블에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하고

한가한 오후 조용히 책을 읽을 날 도 있으리라.



꼭 소장해야만 하는 책으로만 고르고 골라 선정한 200권만 유지하는 책장을 만들어야겠다.

100권으로 하려니 현재 책장의 한 줄을 세어보고 너무 아쉬움이 많을 것 같아 200권으로 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 단에 20권이 들어간다면 무려 10단이 필요...

아 아니다 이건 아니다.

그냥 딱 좋은 크기의 이쁜 책장을 만들고

그 책장 이상의 책은 갖지 않으리라.

내 미니멀하게 살기로 결심하고 도미니크 로로도, 곤도 마리에도, 하루 15분 정리의 힘도 읽지 않았던가.

책장에 책으로만 남은 미니멀 라이프.. 그 책들도 정리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6개월 동안 나무를 만지고 냄새를 맡고, 나무 덩어리에서 저마다의 쓸모를 가진 물건으로 변화되는 것,

나로 인해 생명을 갖게 되는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

아직 갖지 못한 그 시간은 평화롭겠지. 무념무상의 시간이 되겠지.


목공은 그런 게 아닐지도 모른다.

만들고 싶은 테이블과 도마의 완성품만 본 나로서는

나무를 자를 때의 '우우웅' 톱질하는 소리나, 뿌옇게 피어오르는 나무 가루 먼지들과 그 외에 번거롭고 소란한 모든 과정을

미리 다 생각할 수는 없지만

짐작은  수 있다.

내가 아직 해보지 못한 거친 노동과

안전을 위해 착오를 허용하지 않는 엄격함과

오랜 시간 공들여 나무를 다듬어야 하는 성실함이 요구되는 일이라는 것을...


나무를 자르다 예상하지 못한 옹이가 만들려는 도마나 테이블을 영 다른 모양으로 변경하게 할지도 모른다.

나무라는 생명체가 내어준 재료의 의외성을 만나며 성실과 열심으로

무엇이 만들어질지 어떤 모양이 될지 궁금해하며 6개월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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