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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poong May 22. 2023

제1장 1988년도 가을 아침조회 (4/4)

:: 훈화 삼매경

:: “봉지도 아무 데나 버리고(버리고)! 길에서는 절대 음식을 먹는 거 아니에요(아니에요)!! 알겠어요(알겠어요)?!”

:: 손으로 마이크를 덮을 때에는, 마이크에 손이 닿는 소리가 들렸다.





:: 1988년도 가을 아침조회 4부 (4/4)





상황을 잘 파악한 선생님 같은 경우는, 장난을 친 가해자만을 나오라고 할 때도 있었지만, 아닌 경우도 꽤나 많았다.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는, 둘 다를, 앞으로 불러내곤 했던 것이다.


 

그럼 피해 학생은 ‘아-하이 씨, 왜 그래 미친 XX야!’ 하는 얼굴로 상대를 향해 눈을 한번 흘긴 뒤, 줄 앞 선생님을 향해 나갔다. 입술을 모아 앞으로 삐딱하게 내밀면서였다.



하복 체육복은 반바지였다. 이 때문에 뒤에서 홈을 만드느라 발을 구를 경우, 모래가 앞의 아이의 종아리에 닿기도 했다. 그것은 하나의 재미였고, 지루함의 돌파구였으나, 당하는 입장에서는 유쾌할리 없었다.



그럼 앞에 있던 친구는, 뒤의 친구를 돌아보고 입모양으로 뭐라 말하다가, 하다 하다 이제 아이 XX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때에는 비상수단을 썼다. 앞으로 표적이 되어 계속 당할 수가 있었으므로, 자폭 작전을 폈던 것이었다. 물론, 극소수의 강심장과 괴짜만이 이런 작전을 펼칠 수 있었다.



가해학생도 일종의 피해를 입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사적인 장난이 공적인 문제로 순식간에 비화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 장난꾸러기 가해학생도, 피해 학생을 짧게 쳐다본 다음, 고개를 숙이듯 몇 번 저어대고는, “어후” 하고 한숨을 내쉬며 앞 쪽 선생님을 향해 나간다.

 


“이 녀석들이!(들이!) 크큼(크큼).”

스피커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럼 간혹 “삐-“ 하고 소리가 날 때도 있었는데,

그럼 마이크를 손으로 덮어서 소리를 멎게 했다.

손으로 마이크를 덮을 때에는, 마이크에 손이 닿는 소리가 들렸다.

  


“이제 마지막으로(마지막으로)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있겠습니다(있겠습니다).”

“전체 차렷(차렷)! 열중 쉬어(쉬어)! 차렷(차렷)!”



이 스피커 구령은, 행과 열에서, 착착 소리가 날 때까지 반복되었다. 이 반복에, 운동장 내 전교생은 일사불란해졌고, 단상 앞에서는 착착하는 동작음이 일었다.



앞으로 나간 준석이 형과 다른 형은 엎드려뻗쳐를 했다. 엎드려뻗쳐를 할 때는, 굵은 모래가 손에 박히지 않도록 곧바로 모래를 밀어내곤 했는데, 이런 태도는 요령을 피운다고 주의를 받기도 한다.


  

“어쭈, 요령피네? 시작부터 요령을 피워?!”

“읔! 으읔!” 엎드려뻗쳐 자세였기 때문에, 곧바로 아이들의 엉덩이로 몽둥이가 내려 꽂혔다.



“교장 선생님께(선생님께) 경례(경례)!”

주임 선생님이 교장 선생님을 소개했고, 아이들은 인사를 했다.



“바로 (바로).”

  


아이들은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이며 ‘바로’를 했다. 바로, 그것은 이제 말씀이 있겠다는 이야기였다. 여자 교장 선생님은 손끝으로 마이크를 두드리고는 "아아(아아)"를 했다.

  


“예(예). 아아(아아). 사랑하는 재동 국민학교 (국민학교) 어린이 여러분! (여러분) 네(네). 오늘은(오늘은),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습니다). 오늘은 짧게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겠습니다).”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는 높고 깨끗하고 선명한 톤이었다.

  


엎드려뻗쳐를 하고 있던 범죄자들은 엉덩이를 비벼댔다. 그들이 손바닥을 비벼내며 굵은 모래를 밀어냈던 것은, 모래 아래가 그나마 보드라운 흙이었기 때문이었다. 다시 자세를 잡은 범죄자들은, 요령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다리가 밀리지 않도록 운동화 끝으로 천천히 홈을 파댔다.

  


“ 자 그래서 어떻게 해야겠어요(겠어요). 학생 여러분들(여러분들). 손님들이 오고 그러면 어떻게 하겠어요(하겠어요). 전 세계에서(세계에서) 저~언 세계에서(세계에서) 우리나라에 구경을 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겠어요). 우리 길이건 도로건 구경하고 다니겠지요(다니겠지요)? 우리 동네 구경 올 수도 있겠지요(있겠지요)? 그런데 말이에요(말이에요). 여러분들 요즘 봐보세요(봐보세요). 저번에 문방구 앞을 지나가는데(가는데), 문방구에서 과자를 사 먹는 학생들이 있더라고요(더라고요). 불량식품이지요(이지요)? 네(네)? 그래요 안 그래요(안 그래요)? 학생 여러분들(여러분들), 요즘 불량식품을 먹는 학생들이 있습니다(있습니다). 그것도(그것도) 길거리에서 불량식품을 사 먹는 학생들이 있습니다(있습니다). 음식은 뭐예요(뭐예요). 길에서 먹는 것이 아니지요(아니지요)? 아닙니다 아니에요(아니에요). 아닙니다 길에서 먹는 게 아닌 것입니다(것입니다)."



이때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 톤은 굉장히 높아졌다.



"여러분(여러분)! 우리 자랑스러운 재동국민학교 학생 여러분(여러분)! 학생 여러분들은(여러분들은)! 거지가 아닙니다(아닙니다)! 거지가 아니에요(아니에요)! 음식을 길에서 먹는 것은 아니에요(아니에요)! 봉지도 아무 데나 버리고(버리고)! 길에서는 절대 음식을 먹는 거 아니에요(아니에요)!! 알겠어요(알겠어요)?!”    

  


준석이 형네 담임 선생님이, 막대기를 움직이며 “자 이제 자리로 가봐” 하자,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엎드려 뻗친 후에 자리에서 일어나면,

손바닥에는,

모래 알갱이가 묻어있곤 했다.



준석이 형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화가 나서일 수도 있고, 엎드렸다가 일어나서였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 표정은, 왜 내게 흙장난을 했냐는 뜻이기도 했고, 왜 선생님은 억울하게 나도 벌을 주느냐에 대한 뜻이기도 했다. 물론 그중에서 가장 큰 뜻은, 다시는 내게 장난을 치지 말라는 뜻이었다.



이때 준혁이는 저기가 자기 형이라면서 간단한 손동작과 함께 입모양과 작은 소리로, 주변 친구들에게 자랑질을 하고 있었다. 나를 포함해서 몇몇은 뭔 소리냐며 눈을 크게 떠보았는데, 몇몇은 알아듣고 몇몇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럼 어때요(어때요). 그렇지요(그렇지요)? 거지가 아니기 때문에(때문에), 길에서 음식을 먹거나(먹거나) 과자를 사 먹거나(사 먹거나) 아이스크림을 사 먹거나(사 먹거나), 그러면 되겠어요 안 되겠어요(안 되겠어요)? 안되겠지요(안되겠지요)?”

  


아이들은 결국 심심해했다. 지루해 했던 것이다. ‘과자를 사 먹지 마라.’ 그것은 달성 불가능한 주문이었다. 하굣길에 아무것도 사 먹지 말고 집으로 가라,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불가능에 마주칠 때면 많은 아이들은 지루해했다.



때문에, 나를 포함한 몇몇의 아이들은, 친구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생각에, 친구의 뒤통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잠시 과자를 생각해 보았다. 문방구 앞 멍청한 앉은뱅이 오락기 앞에서 과자를 집어먹으며 게임을 구경하는 모습을 생각해 본 것이다.



태양 아래에서 돋보기를 들고 있으면, 검정색 종이에 구멍이 뚫리기도 하는데, 친구 뒤통수를 째려보며 그런 생각도 잠시 해보았다. 뚫릴까?



친구 머리에 돋보기가 연상되었고,

그렇게 집중해서 쳐다보고 있으면,

친구의 뒤통수가 두개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럴 때면, 눈동자가 자동으로 한 가운데에 모이곤 했다.

  


“우리 재동국민학교에 앞으로 그럴 학생이 있습니까(있습니까)? 없지요(없지요)? 없지요(없지요)? 절대 없지요(없지요)? 네 우리 자랑스런 재동국민학교 여러분들은 절대 없어요(없어요). 절대로 없지요~(없지요~)?”

  


교장 선생님의 기대는 지나친 것이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없을 리가 없었다. 과자를 사 먹지 않는다? 내 전 재산을 걸 수도 있었다. 물론 돈은 없었다. 돈은 별로 없었다. 우리 집도 돈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아이들이 백 퍼센트 천 퍼센트 과자를 사 먹는다에, 내 전 재산을 다 걸 수 있었다.



내 생각에는,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도 교장 선생님의 말에 대답하지 않아야 했다. 사정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재동국민학교 어린이들은 제법 영리하게 굴었다. 곧장 원하는 대답을 우렁차게 내놓았던 것이다. 터무니없게 말이다.

  


"네!"

“특히(특히)! 음식을 먹고 길에 봉지를 버리는 아이들은(아이들은)!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것입니다)! 거지처럼 길에서 음식을 먹고(먹고)!”

  


그럼 나는 제비 쪽을 살짝 쳐다보면서 “후후” 하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날 좀 보라 하는 신호였다. 은근슬쩍 고개를 돌리던 제비가, 이제 가운데 모아둔 내 눈동자를 보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적중해서, 나를 발견한 제비는 침을 당기듯 입안을 강하게 움직였다. 웃음을 참기 위해서였다. 입 주변의 근육을 최대한 고정시키기 위한 노력이었는데, 이런 노력으로 입 주변이 씰룩거렸으나, 종국에는 실패하는 경우도 많아 웃음을 가리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많은 아이들이 장난을 쳤다. 어떤 아이는 어수선한 틈을 타, 친구에게 혀를 내밀어 보이기도 했다. 혀를 내밀어 코에 닿게 하는 모습을 친구에게 보여주곤 했던 것이다. 그럼 웃음이 터지곤 했다. 어깨 사이에 파묻고 어떤 아이가 제법 크게 큭큭거렸다.



“또또또(또또)! 거기 떠드는 학생(학생)! 왜 혀를 내밀고 그래요(그래요)?” 교장 선생님이 직접 장난치는 아이들을 지적하였다. 나는, ‘나인가’ 하는 생각에 짧은 순간 얼어붙었지만 이야기는 다른 것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선생님이 여기 서서 보면 다 보여요(보여요)!”

교장 선생님이 스스로를, 선생님으로 칭하는 부분이, 조금은 생경하게 느껴졌다.

  


'교장 선생님도 선생님인가?'

  


아무튼 나는 이에 놀라 눈을 풀고 자세를 바로 하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학생들이 많은데 다 보일까? 글쎄, 어쩌면 보일 수도 있겠지.’



“선생님이 여기서 서서 보면(보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것까지 다 보여요(보여요)!”

 


몇몇 아이들은 발가락을 살짝 꼼지락거려봤다. 엄지만 살짝 위아래로 움직여 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꼼지락거리지는 않았다. 그저 옛날 남준혁이 어떻게 코에 혀를 닿게 할 수 있었는지, 그것이 떠올랐고 신기했을 뿐이었다. 나는 멍청이처럼 코만 찡그려 보았다.

  


교장 선생님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

“여러분(여러분)! 과자 봉지를 길에다 버리는 행위는(행위는)!

이때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 톤이 다시 굉장히 높아졌다.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에요(이에요)! 왜냐(왜냐)! 이제 외국에서(에서) 손님들이 많이 오시기 때문이에요(이에요)! 여러분(여러분)! 손님이 오시면 청소를 잘 해둬야겠죠(해둬야겠죠)?”


  

수많은 아이들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나마 “네~!” 하고 대답했다. 그래도 재동국민학교 학생들은 대답의 천재들이었다. 시원찮은 대답이더라도, 대답이 있어야 할 자리는, 일단 확실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장 선생님은 왜 이리 목소리가 작으냐고

다시 대답을 시키고 종용할 만도 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물아일체,

정확히는 훈화(薰化) 삼매경.

교장 선생님은 자신의 연설에 몰입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과자봉지나 아이스크림 봉지는(봉지는)! 길에다가 버려서는 안 되는 것이에요(안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뭐라고 그랬죠(그랬죠)? 길에서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고 그랬죠(그랬죠)? 길을 가다가 남이 버린 봉지가 있으면 또 줍는 어린이가 되어야겠어요 안되어야겠어요(되어야겠어요 안 되어야겠어요)?"


  

"되어야겠죠(되어야겠죠)? (네~!) 그래야 착한 어린이고 재동의 어린이가 되겠지요(되겠지요)? (네~!)”



반복적인 격정 어조에,

아이들의 대답 소리는 제법 커져가고 있었다.

학교 담장까지 대답 소리가 반사되어 울렸던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벌써 자신의 연설만으로도 재동 어린이들이 과자봉지를 줍는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재동국민학교 학생들, 그 착한 학생들, 이 어린이들이 길거리에서 과자봉지를 줍는 모습이 자신의 비전 속에서 선명히 그려지자, 교장 선생님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소를 지었다. 우렁찬 대답 소리를 들으며, 단상 위 교장 선생님은 마이크 뒤에서 시큼한 아래턱을 하고, 작고 조용히 웃어 보였다.

 


교장 선생님은 교양이 있어 보였고, 실제로 교양이 있었으며, 엄격해 보였으면서도, 동시에 어린이를 사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교장 선생님은, 자신의 학생 어린이들을 사랑하고 있었다.

  


‘애들 현실을 잘 모른다’라는 인상을 약간 받기도 하였지만, 그럼에도 교장 선생님은 높은 이상이 있고, 그것을 비교적 건강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름의 수준 높은 원칙이었다.



훈화가 끝나면, 전교생은 교가를 불렀다.

“취운정 활터에서 힘을 기르고~"



"야! 우리 형이야! 우리 형이래! 크하하하."

  


남준혁은 교가 때의 소음을 활용하여, 나와 학고재를 번갈아 바라본 다음, 지금 앞으로 불려 나가 맞은 사람이 자신의 형이라고 자랑을 해댔다.   

  


오토바이 신문배달부가,

탈것 뒤로 잔뜩 신문을 쌓아두고는,

운동장에 들어서기도 했다.

  


"옛 궁에 거문고로 마음을 닦던~"

  


오토바이의 앞에 달린 철망 바구니에도,

오리주둥이처럼 바짝 접힌 신문 뭉치가,

가득히 꽂혀 있었다.

이것은 어떤, 규칙적인 하루 일과 같은 아침 날의 풍경이었다.



이 풍경에 어딘지 교가가 들어맞았다.



아저씨는 시동을 끄고 있었고,

손에는 신문지 몇 부를 움켜쥐고 있었다.

아이들은 큰 소리에 하나같이 입을 벌리고 있었고,

아저씨는 서둘러 교무실 쪽을 향하고 있었다.



극소수의 아이들만이, 가사 속의 ‘취운정’이 어디인가 하고 생각했다. 물론 취운정이 어디인지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빛나는 화랑정신 이어나가자~."



다행히 아이들은 화랑이라고 하는 것은 알고 있었고, 화랑 관창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신라 군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 전 가사에서, 거문고가 악기라는 것도 알고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교가 후반 막바지 그쯤에서 아이들의 목소리는, 좀 더 또렷해진 것도 같았다.



신문 배달부 아저씨가,

현관문 안쪽으로 조그맣게 들어가는 것이,

바라다 보였다.



"우리는 재동학교 나라의 새싹~!”



* * *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재동국민학교의 한 컷이다.  



이것이 나의 세계,

애틋했던 나의 세계,

애틋하고 멍청했던

내 어린 날의 나의 세계 가을날의 한 컷인 것이다.



(제1장 끝. 제2장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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