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리에서 서울 종로로
:: 소격동 세계의 중심 (1/4)
0.
:: 이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ᅠ구리시에서 ᅠ서울ᅠ 종로구 ᅠ소격동으로 집을 ᅠ옮기게 된다.ᅠ 세계의 중심, 빛이 수렴하는 우주의 중심으로 말이다.
:: 따라서 나는 대전 사투리 영향권 아래에 있었다. 나와 동생, 그리고 할머니는 삼촌을 완전한 입모양으로서 “삼춘”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1.
어떻게, 모르겠다.올림픽 직전 분위기였다. 참고로, 아름다웠고 커다란 했고 운동장 수돗가를 건들던 버드나무, 학교에 있던 버드나무는 사라져 버렸다는 점을 적어둔다. 아무튼 그건 그렇고, 자 이제 그래서 나는 이야기에 채찍을 때리며 조금 빠른 속도감을 내기 위해, “세계는 서울로 서울을 세계로”를 한번 떠올려 본다.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이 말은 대체 무슨 말일까. 물론 특별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 수 있다. 큰 의미가 없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글쎄 내가 이 말에 큰 의미 부여를 하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물론 그렇게 큰 의미는 아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자탈의 사자탈춤처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잘 보면 그렇다는 것인데, 나로서는 이것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으로 이어지게 된다. 어떤 느낌이 그런 식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 “세계의 중심”이라는 것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런 게 있다는 느낌 같은 것에 끄덕인다고 할 수 있겠는데, 뭐 물론 이견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런 이견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이견마저도 이견으로 자신을 향한 중심성을 호소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나는 묻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이 중심성을 말하고 있다고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나는 느끼고 있다. 그런 중심성이 없다면 “이견” 즉 다른 의견을 주장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주장에는 중심이 있다. 주장에는 그것이 아무리 교묘하고 겸손하고 자기 비하에 자신을 낮추고 평범하다 말하며 ‘나는 그저 변두리입니다, 그저 그런 것이라고요!’ 하고 머리를 긁적이고 무릎 꿇는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중심이 새겨져 있다. 영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문신을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미묘한 이야기일 수 있겠는데, 그렇게 보일 수 있겠는데, 꽤나 이상한 이야기라도 나의 의견과 생각을 여기서만큼은 강요하고 싶다. 물론 조금 복잡한 이야기일 수 있고, 그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여기서는 그러고 싶다. 여기 이 글에서는 그러고 싶다. 조금만 말이다. 짧게만 말이다. 여기 짧은 몇 문단에서만큼은 말이다. 이 정도는 누구나 용인해 줄 수 있는 수준 아닌가. 그래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한반도가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태권도의 정권으로 찌르겠다. 독자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때리겠다. 그렇다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안 그런가. 정말 안 그런가. 나한테는 지금 정말이라는 말이 특별하게 들리는데, 한국은 진짜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의 꼭짓점이 아닐까. 정말이지 한국은 요동치는 유라시아 대륙과 요동치는 태평양이라는 바다가 마주쳐 울리는, 마치 고싸움처럼 마주쳐 울리는, 마치 태극문양처럼 소용돌이쳐 울리는, 모종의 꼭짓점이자 태풍의 눈이 아닐까. 근데 정말, 정말이지 정말, 진짜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닌지 영리한 사람이라면 이것에 대해서 길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내 소박한 사견을 이런 식으로 넘어가 준다면, 나는 다음으로 이 한반도, 이 세계의 꼭짓점이자 중심으로 서울을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물론 독자는 여기에서 ‘아, 이 사람은 대체 뭘 하려고 하는 것일까’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 나는 여기 짧은 글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세계의 중심은 한반도고, 한반도의 중심은 서울이며, 서울의 중심은 종로, 그 종로의 중심은 소격동이라고 말이다. 강남은 어디 있냐고? 그쪽은 시골. 거긴 저거 변두리다. 강남이나 잠실, 그쪽은 그냥 아득히 멀리 강 건너 저쪽 저 멀리 저 끝에 있던 에헴 저거한 지역에 불과하단 이야기다. 자 그래서 뭐냐. 나는 구리시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이다. 잠깐 구리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야겠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소격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는지, 우리 집이 어떻게 세계의 중심인 서울, 세계의 빛과 광채 그리고 우주의 오로라가 수렴하는 중심의 중심인 종로, 또 그 안의 중심인 소격동으로 이사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바로 1년 전 유치원 시절 이야기다. 우리 집은 구리시에 있었다.그날 저녁 아버지는 나를 다그치고 있었다. 매우 거칠게 다그치고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특히 입을 어금 다물고 콧김을 내뿜고 있었다. 이미 아버지는 무엇인가를 장롱과 옷가지들을 바삐 살피신 뒤였다. "어디 있어."‘누가 일러바쳤던 것일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울면서 말이다. ᅠ 사실 나는 울지 않기 때문에 그것은 눈에서 나는 국물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눈물이라 할 수 있었다. 결국 물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엄마가 뭐라고 소리치며 나를 빗자루로 때린 뒤에는 더욱 크게 되었다. 입을 벌리고 침을 흘리면서였다. ᅠ 참고로 엄마는 어떤 격정 속에 마구잡이 주변에 잡히는 것으로 나를 때리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할머니와 아버지가, 엄마의 마구잡이 빗자루질을 말리고 나서였다. “바른대로 말해. 아버지는 다 알아!” 울고 있는 나를 두고 아버지는 몽둥이로 바닥을 치며 말했다. 내가 부모에게 종종 맞을 때면 나를 보호해 주시던 할머니도 그때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할머니는 오락실에 가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독특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는데, “어머니 그 얘기가 아니잖아요!”라는 엄마 이야기에 조용해진 뒤였다. 왜냐. 문제는 내가 오락실에 갔다는 것이 아니라, 돈을 훔쳤다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나는 부모님의 돈을 훔쳤다. 훔친 돈은 기껏해야 만 원짜리 하나였는데, 그 돈은 아버지가 우유 대금을 회사에 입금하려고, TV 위에 놓아두었던 이른바 ‘세어 둔 지폐들’ 중 하나였었다. 부모님은 구리시에서 우유보급소를 하고 있었고, 새벽마다 우유배달을 하고 있었으며, 아버지는 배달 후 서울까지 회사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다. “그 돈으로 뭐 했어! 오락실 갔어?!”“예에.”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진지하게 콧김을 내뿜으며 나를 쳐다봤다. 많은 생각이 지나가는 듯했다. 할머니와 엄마는 저마다 한마디씩 뭐라고 말했다. “나머지 돈은 어디 있어!” 아버지가 말했다. 게임은 한판에 50원이었고, 아무튼 하루 만에 2백 판을 다 할 수는 없었다. 사실 그날, 나는 다른 사람이 신나게 게임하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던 중이었다. 돈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에게 과자를 사 먹는다고 받은 돈으로 오락실에서 탕진 한 것이었다. 그때 국민학교 형이 친절하게도 말을 걸어줬다. 자기 일행과 함께 있던 한 형이었다. “오락 안 하냐?” “네?” “구경만 해?” 왜 오락을 하지는 않고 구경만 하냐는 이야기였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국민학교 형들이었다. “돈이 없어요.” “그래?” “50원 줄 테니까 한 판 할래?” 형은 매우 친절한 사람이었다. 손바닥에 건네준 50원짜리 동전에는 보리가 그려져 있었다. 형이 내게 쥐여준 돈으로 나는 오락 한 판을 했다. 원더보이라는 오락이었는데, 신나는 음악 속에서, 멍청한 벌거숭이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각종 나쁜 놈들을 죽이고 이것저것 장애물들을 피하면서 맛있는 것을 먹는 오락이었다. 하지만 별로 해본 적이 없는 게임인지라 나는 일찍 죽었다. 나는 또 형에게 돈을 달라고 해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신나게 버튼을 두드리면서 원더보이를 하는 형들을 쳐다보았다. 일행이었던 옆의 다른 형이 내게 말했다. “돈 없어?” “네”“집에도 없어?”집에는 당연히 있었다. 어른들은 돈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없었다. 용돈이 필요하면 주로 할머니에게 돈을 달라고 했는데, 방금 전 돈도 할머니에게 과자를 사 먹는다고 돈을 얻어와 써버린 후였다. 할머니는 항상 쭈그려 앉아 무엇인가를 하고 계셨다. 아까도 할머니는, 붉은색의 거대한 고무 다라 - 우리는 대야를 다라라고 불렀다 - 배추를 자르고 계시거나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우유보급소는 상가와 가정집이 붙어있는 형태였는데 따로 구획된 부엌은 없었다. 내가 항상 “까까” 하고 손을 내밀면 할머니는 “아이구, 얘는 할머니가 무슨 돈 나오는 기계인 줄 아나 벼-!” 하고 성을 내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바지인지 월남치마인지 같은 것에 손을 문질러 닦고는 안쪽 어디선가 손지갑을 찾아 꺼내 동전을 건네 주었다.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게임을 좋아하게 되면 그 게임을 잘하고 싶어진다. 나는 스케이트보드게임 즉, 원더보이를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실력으로는 무리여서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요했다. 돈이 필요했다는 이야기다. 돈을 계속 집어넣으면서 연속으로 게임을 이어가면 게임 실력을 제대로 쌓을 수 있었다. 지금 나는 당연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형들은 내게 부모님 돈을 몰래 가져다 쓰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몰래.” 이 말에는 매력이 있다. 아무튼 부모님의 돈을 한 장만 가져다 쓰면 오락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꽤나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다. 어른들의 만 원짜리 지폐만 있으면 게임을 200판이나 할 수 있을 것이고, 나는 게임을 계속 이어서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럼 나는 게임 실력을 쌓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 길로 나는 집으로가 돈을 훔쳤다. TV 위에는 많은 만 원짜리가 있었고, 많았기 때문에 그중 하나 정도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유치원생만 되어도 충분히 영악한 법이다. 그리곤 오락실로 가서 돈을 바꿨다. 형들은 나를 반겨 주었다. 오락을 실컷 하고, 집으로 가야 할 즈음에, 그러니까 약간 어둑해질 즈음에, 형들이 내게 물었다. “너 그 돈 어떻게 할 거야?" 하고 말이다. 나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형들은 말했다. "걸릴걸?" 내가 만약에 그 돈을 그대로 바지 주머니에 넣고 집에 가게 되면, 어른들이 니 주머니에 있는 돈이 다 무어냐고 할 것 아니냐는 이야기였다. 진짜 똑똑하지 않은가. 그들은 정말 똑똑한 형들이었다. 나이 몇 살 차이가 이렇게나 현격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지?’하고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러자 눈치를 살피던 형들이 바로 내게 말했다. 그 돈을 바로 오락기 뒤에 숨겨두라고 말이다. “숨겨 오락기 뒤에 그리고 내일 또 하면 되잖아.” 와 천재 아닌가. 그리고 내일 다시 와서 그 돈으로 게임을 하라고 그랬다. 와와 진짜 천재 아닌가. 그렇게 나는 오락실에서 오락을 실컷 하고 남은 돈에 조치를 취했다. 그러니까 오천 원짜리에 천 원짜리에 그 많은 돈을 오락기 뒤에 숨겨 두었던 것이다. 형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당시 오락기 뒤는 좁았고 먼지가 많았다. 오락기 몸체 뒤편은 지저분한 나무 합판이었다. “어디 있어! 빨리! 말 못 해!” “오락기 뒤에.” “왜 거기에 놔뒀어?!” 엄마가 소리쳤다. 나는 중얼거렸다. “어?! 똑바로 말 못 해!” 나는 형들이 거기에 놔두라 했다고 말했다. “어이구! 갸들이 가만뒀겄어!” 할머니도 한마디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형들을 믿었다. 형들이 어른들에게는 그렇게 보일지라도, 착한 형들 아닌가. 내게 돈도 주고, 나 잘 되라고 내게 권했던 것 아닌가. 아무튼 나는 죄인처럼 오락실로 향했다. 어른들을 대동하고 눈에서 나오던 국물을 손바닥으로 훔치면서였다. 당연히 돈을 찾아보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돈이 있을 것 같은가? 영리한 독자라면 당연히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당연히 돈은 없었다. 그곳에 ᅠ 돈이 ᅠ 있을 리 ᅠ 없었던 것이다. ᅠ “걔들이 ᅠ 가져갔지 뭐”라고ᅠ 어른들이 ᅠ 이야기했다. ᅠ ‘이 오락기 뒤가 맞는 것 같은데’ 하고 나는 두리번거리며 생각했지만 그제야 나는 어른들의 말처럼, 형들이 나의 돈을 가져갔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영리한 형아들은, 50원으로 5천 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이었다. 그ᅠ 일이 있고 나서, ᅠ우리 집은 조금 심각해졌고, 어른들은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후 내린 결정은 ᅠ우유보급소일을 ᅠ그만두고 이사를 가는 것이었다. 나름 내 국민학교 진학에 맞춘 것이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우리는 ᅠ구리시에서 서울ᅠ 종로구 소격동으로 집을 ᅠ옮기게 된다.ᅠ 세계의 중심, 빛이 수렴하는 우주의 중심으로 말이다. 그것은 곧 엄마 아빠 결혼 후 9번째인가ᅠ 10번째 우리 집 이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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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끝. 2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