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을 이끌어내는 서정적인 잔나비의 노래
"어릴 적 방 문 너머로 엄마와 선생님의 통화 내용을 엿들었어요. ‘우리 애는요, 사랑이 필요한 아이예요 덜 떨어져 봬도 알고 보면 멋진 애예요.’"
대충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어른이 된 지금, 누가 그렇게 내 편이 되어줄 수 있을까요 -잔나비 최정훈-
잔나비의 정규 앨범 [전설]의 대부분은 서정적인 가사가 돋보이는 노래들로 꾸며졌다. 마치 제대로 살아본적도 없는 80-90년대를 만나는 느낌이다.
잔나비의 이번 앨범은 그 이름처럼 '전설'이 되었고, 이 인기를 타고 가요계에도 레트로 열풍이 불어왔다.
앨범 수록곡 '우리 애는요'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가사라기 보다는 '피식' 웃게 되는 매력이 있는 곡이다.
가사를 보고 있으면 내 기억 속 어딘가에 콕 박혀있는 나의 어린시절의 한 순간이 떠오르곤 한다.
이게 내 기억인지 드라마속 한 장면인지 헷갈릴 만큼 또렷한 잔상을 남기는 이 가사들이야 말로 잔나비 노래의 킬링포인트가 아닐까 생각한다.
글_임주현
"어처구니없던 나의 어린 꿈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되던 날
두드러기처럼 돋은 심술이 끝내 그 이름 더럽히고 말았네"
대학교 4학년이 된 겨울, 나에게 그 겨울은 유독 혹독했다. 취준생이라는 이름의 내 이력서는 번번히 외면당했고, 기껏 얻은 면접 기회에도 갑작스러운 사고로 깁스 감은 발을 끌고 다녔다. 그 인턴 이력서에 적힌 5년간의 나의 경험과 노력이 물거품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날도 다친 다리를 부여잡고 한의원으로 향하는 시내 버스를 탑승했다. 어김없이 이어폰을 끼고 구직사이트를 훓고 있는데 눈보다 앞선 노래가 귓가에 들어왔다.
“어처구니없던 나의 어린 꿈 가질 수 없음을 알게 되던 날, 두드러기처럼 돋은 심술이 그 이름 더럽히고 말았네”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던 나의 심술은 바닥을 보였고, 흘러나오는 눈물을 감추기 바빴다. 노래 제목처럼 꿈과 책과 힘 사이에서 투쟁하고 있는 나 자신이 불쌍하면서 남모르게 위로를 받았다. 참 이기적이게도 여러 응원의 말보다 나처럼 힘들어하는 가사를 보며 힘을 얻었다.
하루 하루가 쌓여 나는 더 어른이 되었고 다시 취준생이 되었다. 적어도 이젠 해가 뜨고 다시 지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기로 했다.
글_김서영
"나의 자라나는 마음을 못 본채 꺾어버릴 수는 없네
미련 남길바엔 그리워 아픈게 나아
서둘러 안겨본 그 품은 따스할테니"
나의 친한친구는 누군가를 짝사랑하며 하루하루 마음을 졸인다.
하지만 그 사람과의 우정이 틀어지면 어쩌나 걱정하며 내게 수백번도 넘게 포기할 것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러고나서 하루이틀 후면, 또다시 짝사랑하는 사람과의 추억을 구구절절 말해준다.
누군가를 향한 마음을 종이처럼 비행기를 접어 날려버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쉬울까? 하지만 그럴 수 없기에 매일매일은 아픔이 차오른다. 나의 친구 또한 포기한다는 말은 그냥 하는거라고, 다음날 그 사람 얼굴을 보고, 대화를 하면 또 좋고 집가면 보고싶고 그런다고.
그 때 친구가 알려준 곡이 바로 이 곡이었다.
자신도 그동안 우정이 틀어질까 조금의 여지도 주지않은 채 마음과 행동이 다르게 행동했다고 하였다. 그치만 주저하는 연인들에게라는 제목을 보고 자신같은 사람이 많다는 생각에 왠지모를 용기가 생겼다고 말한다. 또한 단둘이 밥 먹거나 단 둘이 게임하거나하는 기회가 생기면 늘 아닌척 기회를 흘려보냈지만 이제는 그런 기회를 점점 더 늘려나갈거라고. 그렇게 천천히 다가가고싶다고, 그러면 언젠간 연인이 아닐지라도 연인만큼 가까워지겠지.. 하며 희망을 품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난다.
글_윤희원
"이런 내 위로는
그리 간단치가 않아서
이제야 건넨걸요"
유학 보낸 딸, 철거 예정인 집에 숨어 살고, "말도 안 돼"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무례한 면접관까지. <로맨스는 별책부록>의 주인공 '강단이'에게 주어진 설정은 가혹하고, 다소 작위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결국 능력 있는 두 연하남의 도움으로 역경을 헤쳐나가는 여자 주인공의 모습은 기존 한국 드라마의 로맨스 서사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단이의 캐릭터는 시청자에게 '위로'로 다가왔다. 이는 키 크고 잘난 연하남들의 달콤한 말에 감정이입을 했기 때문은 아니다. 강단이에게 붙은 '경력단절녀'라는 타이틀처럼 기혼 여성으로서, 자녀를 둔 여성으로서, 혹은 그냥 '여성'으로서 겪는 어려움을 이 캐릭터는 무리하다 싶을 만큼 모두 담고 있다. 유리 천장, 능력의 과소평가, 주거 불안정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강단이는 고군분투하면서도 이를 극복해 나가려는 의지를 꺾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장면에서는 꼭 이 노래가 흘러나온다. 가사를 곰곰이 곱씹어보면 여기서 위로의 주체도 강단이, 객체도 강단이다. 위로는 늘 힘든 일이지만, 특히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기는 '그리 간단치가 않'다. 만화 주인공처럼 거울을 보며 한 마디 힘찬 말을 내뱉기도 낯간지럽다. 그런 우리에게 이 가사는 위로의 방법을 알려준다. 스스로 '참 가여워' 보인다는 마음 하나로도 우리는 스스로에게 큰 위로를 건넬 수 있다.
글_연인지
“나는 너의 음악이고
그런 마음 한 줄이야
때가 되면 네 마음에
시퍼렇게 남을거야.”
이토록 찬란히 청춘을 표현한 음악이라니. 잔나비의 '전설' 신보 중 나는 이 곡이 유달리 좋다.
나는 청춘이 주는 불명확하지만 어딘가 멜랑꼴리해지는 기분을 좋아한다. 꼬꾸라져도 몇번이고 일어서는 청춘의 열정, 태도 따위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시절 찬란히 빛났던 우리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담을수 있는‘청춘’ 그 자체가 주는 형태가 좋다. 그런 부분에있어, 이번 잔나비의 ‘전설’ 앨범은 전반적으로 청춘의 결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었다 생각한다.
투게더는 팬을 향한 잔나비의 마음이다. 그들을 위해 잔나비는 음악으로써 마음을 전한다. 그리고 역시나 그 방식은 그들답게 직접적이진 않다. 에둘러 짧지만 저릿하게 마음을 표현하고 만다.
때가 되면 시퍼렇게 남을 거라는 말은 어쩐지 이 음악이 오래 내 마음에 남아있는 이유와도 닮아있다. 그들의 청춘 뿐아니라 우리 모두의청춘을 떠올리기 제격인 곡. 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당신이 사랑했던 우리를 도장찍듯, 하나의 잊혀지지않은 이미지로 한켠에 오래토록 기억하기 위해 두고두고 이 음악을 찾아듣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글_김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