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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나 Dec 10. 2022

아시안 여성이 그렇게 만만한가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겪은 황당한 일들

어제 오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느라 하루 종일 제대로 된 한 끼도 먹지 못했던 나는 호스텔에 체크인을 하자마자 호스텔 직원이 추천해준 레스토랑으로 굴라쉬를 먹으러 갔다. 레스토랑에 도착했을 때가 딱 저녁시간이었어서 그랬는지 이미 가게 안팎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있었고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몇 명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혼자 여행 중인 나는 당연하게도 "나 혼자야"라고 대답했고, 내 답변을 들은 직원이 이렇게 되물었다. 


"남자 친구도 없고, 가족도 없이 혼자라고?"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지금 이게 내가 돈을 내고 먹으러 온 레스토랑에서 들을만한 질문인가. 젊은 여성이 혼자 레스토랑에 오는 게 그렇게 이상해 보이는 일인 건가. 부다페스트의 인식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당황스러웠다.


나의 당황스러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는데, 오늘 아침 브런치를 먹으러 갔던 카페에서 기대 이상으로 맛있는 음식과 내가 좋아하는 로열 얼그레이 티를 마시며 핸드폰을 하고 있던 중에 갑자기 자리를 안내해 줬던 직원이 내게 삿대질을 하며 핸드폰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또다시 내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한테 핸드폰을 하지 말라며 밥 먹을 땐 밥 먹는 거에 집중해야 한다고 훈계질을 하는 백인 남성이 늙어서 미친 건가. 내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지금 나한테 핸드폰 하지 말라는 거야?"라고 되묻자 "밥 먹을 때 핸드폰을 하면 맛을 온전히 즐길 수 없잖아. 음식에 집중해야지."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정말 순간적으로 욱해서 심한 말을 할 뻔했지만, 옆 테이블의 외국인 남성이 쳐다보고 있기도 했고 내가 여기서 언성을 높여봤자 내 에너지만 소모될 뿐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았기에 "나한테 그걸 설명할 필요 없어. 나도 알아."라고 맞받아쳤다.


그는 "내가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 그런 걸 수도 있지만, 90년대부터 핸드폰을 사용해 왔고 핸드폰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거 너도 알잖아." 라며 자신이 왜 나에게 핸드폰을 하지 말라고 말했는지에 대한 부연설명을 구구절절하게 했지만 이미 기분이 상해버린 나는 맛있게 먹고 있던 브런치를 끝까지 다 먹지도 않은 채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어려 보이는 아시안 여자가 아니었다면 당하지 않았을 무례한 언사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만약 내가 중년의 백인 남성이었다면 혼자 레스토랑에 갔을 때 가족도 없고 여자 친구도 없이 혼자 왔냐는 말을 들었을까. 만약 내가 중년의 백인 남성이었다면 그 직원이 삿대질을 하면서 핸드폰을 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들은 절대 그러지 않았을 거다. 아니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이틀 연속으로 이런 일들을 겪고 나니 나이 든 백인 남성이 일하는 가게에는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무례함으로 인해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내가 겪은 일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고 말하지 못한 게 너무 후회가 됐다. 그들이 또 다른 아시안 여성에게 비슷한 언사를 내뱉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종종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을 만나곤 하는데, 이번에 겪은 일처럼 말도 안 되는 일을 겪고 나면 아시안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내가 만났던 혼자 세계를 여행하는 아시안 여자 친구들을 떠올리며 그들도 분명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두 번쯤은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내가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백인 남성의 방해를 받고 나니 서구권에서 아시안 여성으로 사는 것의 피곤함을 십분 이해하게 된다. 이런 세상에서 아시안 여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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