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찰나 Sep 19. 2023

합법적 게으름

쉬지 못하는 병에 걸린 내가 선택한 게을러지는 방법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 인생에서 가장 게을렀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나의 20대는 궁금한 것도 많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아서,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시도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접고 다른 걸 찾느라 게으를 틈이 없었다. 주위 사람들은 내게 "넌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바쁘게 사는 사람이야."라고 말했고, 솔직히 말해 그 말을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칭찬으로 받아들였던 적이 있었다. 내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강박에 스스로가 시달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건 몇 년 전 김누리 교수님의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나서였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한국인들 모두가 내면에 감독관을 두고 살아간다는 내용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우리는 쉬지 못하는 병에 걸렸다고 친구들과 우스갯소리로 말하곤 했는데 그 이유를 김누리 교수님의 책을 읽으며 명료하게 알게 되었다. 경쟁 사회에서 자라오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내면의 감독관이 우리 모두를 쉬지 못하도록 계속 채찍질을 하고 있다는 걸. 쉬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내면의 감독관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렇게 쉴 때가 아니지 않아? 다들 열심히 사는데 너 혼자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다가는 분명 실패한 인생을 살고 말 거야. 그러니까 나약한 소리 하지 말고 정신 차려.'


이런 말을 듣고 나면 당연히 쉴 수가 없었다. 실패한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히고 싶지 않았으니까. 조금이라도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면 알 수 없는 죄책감이 들었다. 덕분에 나는 주기적으로 번아웃에 빠져 허우적댔고, 열심히 살고 있는데도 나아지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져 우울할 때가 많았다.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찾아올 때마다 내가 선택한 건 한국을 떠나는 일이었다. 장기 여행으로든 일 년 살이든 한국을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있으면 내면의 감독관을 외면하고 조금은 게을러질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에겐 열심히 사는 방법 대신 게으르게 사는 방법이 필요한 건 아닐까. 조금은 게으르고 싶어서, 아니 사실은 그저 여유롭게 살고 싶어서 또다시 한국을 떠날 방법을 찾는다. 쉬지 못하는 한국의 안정적인 삶보다 여유로운 해외에서의 불안정한 삶이 내가 원하는 삶이라고 느껴진다. 원래 인생은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


작가의 이전글 우리는 왜 살아야 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