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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한커피 Sep 13. 2020

언니가 "고맙고 미안하다" 고 말했다

언니도 형부도 조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언니네 무슨 일이 생겼을 거란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동안 가끔 흘리는 말을 되짚어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형부는 십오 년이 넘게 대형학원에서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쳤다. 나름 실력도 인정을 받고, 소문도 나서 개인 과외도 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을 학원 선생으로 가르치다가 언젠가부터는 학원을 직접 운영해 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언니에게 자꾸 그런 얘기를 내비치고, 언니는 반대를 하는 입장이었다. 학원가도 경쟁이 심하고 유명 브랜드에서 개인 학원까지 포화 상태다. 과목별 선생에 임대료까지 따져보면 웬만큼 학생들을 모으지 않으면 유지하기 힘들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형부는 일을 진행했고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중소도시에 학원을 차렸다. 가진 것이 없으니 대부분 빚을 지고 시작하는 일이었다.




학원은 처음에는 마음먹은 대로 아이들도 많이 들어오고, 동네에 소문이 나서 운영이 잘 되었다. 그런데 근처에 다른 대형학원이 생기고, 아이들은 한정되어 있는데 서로 경쟁이 붙어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고 했다. 이때부터 언니는 말을 아꼈다. 어쩌면 형부가 언니에게 학원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상황을 말해 주지 않았던 것 같다. 말을 못 했던 것일지도. 그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던 노하우로 자신 있다며 시작했던 일이 잘 안되니 네 식구의 가장으로서 어떤 마음일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엎친데 데 덮친 격으로 거기에 올해는 시작부터 코로나 사태로 상반기를 보내고, 방학이 끝나 2학기를 시작하는데 상황은 진정되지 않고 오히려 심각해지고 있다. 그나마 어려움을 겪던 학원이 훨씬 더 어려워지고 있을 것이다. 언니와의 전화통화에도 언젠가부터는 "형부 학원은 요즘 어때?"이런 말은 금기어가 되었다.

며칠전 언니의 딸들이 우리 집에 왔다. 근처에 살고 있는데 와이파이가 끊어져 수리기사를 불렀는데 2일 후에나 가능하다고 했다며 인터넷 강의를 우리 집에서 듣겠다고 해서 오라고 했다.
"이모, 인터넷 강의도 들어야 하고 학자금 대출 신청도 해야 해."
이번에 대학생이 된 큰 조카가 말했다. 언니는 절대 하지 않았을 말이라 몇 가지를 더 물었다. 형부의 사업이 어려워져 2학기 등록금은 대출을 받아서 내야 한다고 했다. 공대라 등록금도 비싼데 성적 장학금을 받지 못했고, 국가장학금은 나중에 나오니 일단 480만 원이라는 돈을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이모가 빌려 줄게."
큰 조카는 대답을 못하고 엄마한테 물어보겠다며 방으로 들어갔다. 얼마 후 거실로 나와서 전화기를 나에게 내민다.
전화기 너머로 저쪽에서 언니가 말했다.
"빌려줄 수 있는 돈이 있니? 금방 갚지 못할 수도 있어."
"괜찮아. 마침 적금 탄 돈이 있었어. 천천히 갚아도 돼. 진작 말을 하지."
언니는 조금 뜸을 들인 후 말했다.
"고맙고 미안하다."
울먹임이 섞여 있었다.

언니에게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 십오 년 전 부모님이 차례로 돌아가신 후 언니는 내게 언니이자 엄마이고 아빠였다. 몇 살 차이도 나지 않으면서 "같이 살고 있는 시어머님 잘 모셔라. 제부 좋아하는 김치 했으니 가지러 와라. 아이 감기 걸리지 않게 옷 따뜻하게 입혀라..." 등의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내가 시댁일이나 남편에게 속상했던 일도 털어놓을 수 있고 맘껏 흉을 볼 수 있는 든든한 친정 울타리였다. 묵묵히 들어주고, 일을 해결해 주는 사람이었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 역할을 한 셈이다. 그래서 더욱더 언니에게 닥친 힘든 상황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언니에게도 이런 힘든 일을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정 엄마'같은 사람이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견디고 있었을까. 동생이라면서 늘 전화해서는 툴툴대고 불만이나 얘기할 때 '나도 내 얘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해'하고 마음속으로 외치지 않았을까. 언니의 절박한 외침도 듣지 못할 때 혼자서 외롭지 않았을까.


조카가 집으로 돌아가고 저녁때쯤 문자가 왔다.

"이모, 아무리 조카라도 500만원을 이렇게 쉽게 보내줄 수 없었을텐데 너무 고마워. 학자금 대출이라는 게 내 명의로 은행에 빚 지는 거라서 너무 무섭고 두려웠는데 이모 덕분에 요즘 고민됐던 게 해결된 것 같아. 내가 공부 열심히 해서 금방 갚을게. 진짜 너무너무 고마워 이모"

이제 스무살, 만으로 18세의 나이에 학자금 대출로 빚을 지게 된 아이의 두려운 마음이 느껴져 눈물이 날뿐이었다.


언니네 가족은 지금 절벽에 서 있는 심정으로 높은 파도가 내는 철썩 소리를 온몸으로 듣고 느끼며 아파하고 있는 중이다. 형부가 미웠다. 아니 형부도 힘겹게 거친 파도를 헤쳐 나가는 중이겠지. 그들이 지금의 이 힘든, 높고 험한 태풍을 잘 견뎌 내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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