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이 글쎄 어제저녁에 주무시다가 실수를 하셨어. 응. 어제 새벽에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리길래 나가 보니 어머님이 속옷과 잠옷 바지를 빨고 계시더라고. 응 그랬다니까. 혹시 치매면 어떡하지?"
친구와 전화로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느낌이 이상해 뒤를 돌아보니 방 앞에 어머님이 서 계셨다. 분명히 방문이 닫힌 걸 확인하고 통화를 시작했는데 어머님이 내게 할 말이 있으셨는지 열었나 보다. 나는 너무도 당황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손이 떨려서 '왜 말을 안 해'라는 전화기 너머의 친구의 물음에 대답도 없이 끊어 버렸다.
"어머님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응 바늘에 실 좀 꿰어 줘. 몇 번이나 했는데 실이 구멍에 안 들어가네."
"어머님 꿰맬 거 있으면 내가 할게요."
"아니다.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어. 바늘구멍이 당최 보여야지. 이래서 늙으면..."
바늘귀를 꿰면서 내 입을 큰 바늘로 꿰매고 싶을 정도로 부끄러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어머님이 주무시다가 실수를 하셨다. 처음 있는 일에 어머님은 당황하셨고, 어쩔 줄 몰랐다.
"어머니, 어제저녁에 된장찌개가 짜서 물도 많이 드시고 과일도 수박을 드셔서 그랬나 봐요. 그럴 수도 있죠 뭐."
"아비한테는 말하지 말라."
"네 걱정 마세요."
어머님 앞에서는 그렇게 말해 놓고, 난 안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친구에게 전화를 했었다. 친구는 친정엄마가 치매를 몇 년째 앓고 계셔서 경험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물어보고 싶었다. 그 통화를 하는 중에 어머님이 방문을 열고 계셨는데 내가 통화하는 걸 들었는지, 다행히 듣지 못하셨는지 별말씀이 없으셨다.
어머님의 표정을 하루 종일 살펴봤는데 평소와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 좋아하는 드라마도 안 보시고 누워계시는데 평소와 다른 것도 같았다.
'들으신 걸까? 아니야 평상시에도 귀가 어두워 작은 소리는 잘 듣지 못하시니 이번에도 못 들었을 거야.' 그렇게 믿고 싶었다. 결혼하고 십오 년이 넘게 어머님과 지내면서 미운 정, 고운 정 많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 '실수'를 친구에게 쪼르르 전화로 푸념을 하는 결과가 됐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저녁에 잡채를 했다. 어머님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다. 고기를 넣지 않고 시금치와 버섯, 당근과 양파를 넣었다. 간장, 참기름과 설탕을 조금씩 넣어 적당히 삶은 당면의 물기를 빼고 뜨거울 때 섞었다. 참깨를 넉넉하게 뿌려 한 접시를 내어 드리면 금세 뚝딱 비우실 만큼 내가 만든 잡채를 좋아하셨다.
"오늘 무슨 날이야? 웬 잡채야?"
퇴근한 남편이 식탁에 앉자마자 젓가락을 들며 물어봤다.
"그냥."
글쎄 내가 잡채를 갑자기 왜 한 걸까? 각자 채소를 다듬어 볶고 삶아야 하고 양념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서 가족들 생일이나 명절 등 특별한 날에나 하는 음식인 잡채였다. 어머님께 너무도 죄송해서 맛있는 음식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었을까. 그럼 어머님이 그 음식을 맛있게 드시면 용서가 되는 걸까.
어머님이 그날 친구와의 통화를 들었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그 당시에나 이후에도 노여움이나 별말씀이 없었으니 '못 들었을 거야'하고 믿고 싶은 내 마음만 남아 있다. 그날 내가 걱정했던 건 혹시 어머님에게 '치매'가 찾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밤에 실수를 하는 횟수가 잦아졌고, 몇 년 뒤 어머님은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노인들이 실수 한번 한 게 치매의 시작이었을지도 아님 그냥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뭐가 진실이던 내가 성급하게 친구와 전화로 이러쿵저러쿵했던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 장면은 내 인생 꼭 지우고 싶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어머님은 3년째 요양병원에 계신다. 이젠 치매가 심해져 가족들의 이름을, 얼굴을 차례로 잊어버렸다. 그리고 씹는 것 마저 잊어서 콧줄을 낀 지 몇 개월이 넘어간다. 어머님이 치매로 좋았던 기억을 잊는 것이 안타깝고 아쉬웠다. 하지만 그때 그 일, 첫째 며느리가 친구와 전화로 어머님 흉을 보던 그 기억만은 제발 제일 먼저 잊고, 행복했던 기억은 오래오래 간직하시길 바라고 또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