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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한커피 Sep 27. 2020

밥 물을 맞추며

매일 하는 밥 물 맞추기도, 오래된 우정도 잘 들여다봐야


저녁때 밥을 하려고 하는데 물이 많은 것 같아 약간 덜어냈다. 순간 '너무 적은가?' 해서 소주컵으로 반잔 정도 더 넣었다. 그렇게 한 번을 더 넣다 뺐다를 반복하다가 웃어 버렸다. 결혼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고 밥을 해도 얼마큼을 했는데 밥 물의 양 조절이 이렇게 고민인 거지? 한심하기도 하고, 나이 들어가면서 판단력이 흐려지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이 들 수록 건강이 걱정되어 흰쌀만으로 짓는 것도 아니고 잡곡을 많이 섞은 지 오래되었다. 현미, 귀리, 보리, 현미찹쌀도 들어가고 검은콩도 넣었다. 2시간 정도 불렸다. 여기에 묵은쌀이냐 햅쌀이냐의 차이에 전기압력밥솥과 가스레인지에 하는 압력솥도 조금씩 밥이 되는 환경이 다르니 할 때마다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한다고 중얼거려본다.


수많은 시간을 통해 경험을 했으니 어떤 환경이 닥친다 하더라도 밥 정도는 눈 감고도, 그까짓 거 대충 쌀 넣고, 물 부으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맛있는 밥이 완성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오늘처럼 고민하고 물을 넣었다 뺐다 하면 주부 자격이 없는 것 아닌가. 쌀을 씻고 난 후 얼마나 쌀과 잡곡을 불렸는지 복기를 할 정도라주부 자격이 없는 것인지도. 아니 재능이 없는 것인가.

사실 밥이라는 게 은근히 까다롭다. 국이나 찌개는 간을 보면서 짜면 물을 더 넣고, 싱거우면 소금이라도 넣으면 된다. 하지만 밥은 한번 뚜껑을 덮으면 그런 과정 없이 결과물이 나와 버리니 처음에 잘 맞춰야 한다.


예전에 어머님과 살 때는 변명거리가 있었다. 유난히 질게 밥이 된 날은 "어머님이 진 밥을 좋아하셔서 오늘은 어머님에게 맞췄어"했다. 물이 적었는지 된밥이 되었을 때는 "어머님, 오늘은 아범 취향에 맞게 했어요"라고 남편 핑계를 대고 넘어갔다. 어머님이 요양병원에 계신 지금은 그게 통하지 않으니 진밥을 싫어하는 남편의 입맛 아니 밥맛을 염두에 두다가 너무 된 밥이 될 때가 있다. 김 빨지기를 기다려 한 손에 밥주걱을 들고 밥솥 뚜껑을 열었더니 윤기, 찰기, 물기까지도 없어 보이는 퍽퍽한 밥이 나를 반길 때는 당혹스럽다.


밥 짓기가 사람과의 관계와 비슷할 때가 있다. 오래 만났으니 이제는 눈짓만으로도 다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친구가 있다. 평상시대로 그까짓 거 대충 말하고, 진지하지 않았고, 친구의 마을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우리 보낸 시간이 얼마인데, 내가 너를 얼마나 잘 아는데... 큰소리쳤는데 그 친구는 힘든 시기였다. 말을 하고 싶어서 신호를 보냈는데도 난 내 생각만을 하고, 친구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받아줄 거라 믿었다. 친구는 나보다 여유가 있고, 상황이 늘 나 보다 나아서 더 행복할 거라 단정 지었다. 내가 그 친구에게 늘 받는 입장인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친구도 아픔을 나에게 얘기하고 싶었고, 늘 행복한 것은 아니었는데 난 들들 어 줄 마음이 없었다.


친구가 그동안 가정적으로나 친정식구들과도 힘든 일을 보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후에도 난 이기적인 태도를 보였다. 친구의 말을 들어주고 위로해주면서 '설마 나에게 실망하고 마음 다친 친구와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걱정을 먼저 했다. 친구가 힘들었던 그동안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마음을 써주지 못했다. 내 마음에는 '이 정도 했으면 됐어'라고 하는 이기심도 있었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참 내가 이기적인 친구였다는 걸 알았다. 친구에게 내 이런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동안의 우정이 물거품처럼 사라질까 걱정이 되었다. 이미 잘못 지어진 된밥처럼 말이다. 아니 고두밥에 되어 너무 퍽퍽해 쌀을 씹어 넘기기 거북한 사이가 된 것은 아닐까. 밥물 하나도 신경을 써야 하는데 인간관계를 너무 내 멋대로 쉽게 생각한 것 같다.


20년을 매일 하던 밥도 물 하나 맞추기 힘들어 매번 고민하고 망설였으면서 인간관계에는 왜 쉬운 잣대를 들이댔을까. '이만 큰 하면 내 마음 알아주겠지'하는 속단을 내리고 상대방은 더 많이 해주길 바라는 시커먼 속내를 어쩌면 좋을지. 하지만 된밥을 살리겠다고 물을 약간 넣고 다시 한번 돌려보니 영 못쓰지는 않을 것 같다. 우리에게 그런 차선의 선택이 있고, 또 밥을 할 기회가 내일도 있으니까. 오늘이 끝이 아니니까 다음엔 좀 더 잘할 확률이 높을 거라 믿는다. 밥도 인간관계도 말이다. 

내일은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야지. 이제는 어설픈 위로 따위보다는 그냥 옆에 있어 주고 싶었다.

"친구야. 내가 진짜 돌솥밥 맛있게 하는 맛집을 알고 있는데 우리 같이 갈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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