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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 한 잔과 빵 한 조각에 어떤 해석을 할 것인가

그럭저럭 열심히도 고생한 일본을 떠나면서


하루 우유 한 잔과 빵 한 조각

 

 2016년 4월, 일본에 와서 약 두 달간 생활비가 없어, 빈혈기로 쓰러지면서 버텼을 때의 식단이에요. 너무 살이 급격하게 빠져서 기립성 저혈압으로 대학교에서도 휘청휘청하니, 보다 못한 친구가 종종 고칼로리 음식을 적선해주던 훈훈한 우정이 싹튼 시기입니다.  그 친구와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카톡에는 생명의 은인이라고 저장되어 있어요.  


 다른 글에서 쓴 바 있지만 아무 문제없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21년 1월부터 사업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이 결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건과 경험, 그리고 생각이 있었습니다만, 그중에서도 한 가지. 어떻게든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을 몸소 깨우친 것이 한 몫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전부터 언젠가 사업하겠다고 부모님께 포부를 전달하면, 따뜻하게 미소 지어 주시며 열심히 하라고 응원을 해주시곤 했습니다만, 속마음을 들어보니 "야망은 있으나 배짱이 부족하여 큰 사고는 못 칠 녀석"이라는 두터운 자식 사랑이 있으셨습니다. 저 스스로도 그 말씀을 듣고서 역시 부모는 자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구나- 하며 감탄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에 오기 전 제 연장선에는, 그저 그런 회사에서 월급만 잘 받으면서 "언젠가"를 술안주 삼는, 그런 미래가 있지 않았을까 합니다. 주변에서도, 그리고 스스로도 참 많이 변했다고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어디에나 있는 정말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방황하지도 않았고, 겁이 많아서 탈선을 하지도 못 했어요. 공부는 못 했는데, 유학이라는 수식어로 그럴듯하게 수습했습니다. 취미도 없어서 직업으로 생각할 수 있는 스킬도 없었죠. 물론 문과생입니다. 취미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잠시 생각하다가 "영화랑 음악 감상이요. 게임도 조금... 노래방도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했을 거예요. 그리고 평범하게 가난한 집에서 자랐습니다. 


 집이 가난했으니 내가 열심히 해서 장학금도 받고, 자수성가할 거야! 하는 패기는 있는 듯하였지만, 패기만큼의 독기를 버텨낼 독 내성은 없었고요. 그냥 일단 돈 잘 주는 회사, 심플하게 대기업에 취직해서 크게 걱정 없이 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습니다. 술자리에서도 앞날 푸념이나, 잘 알지도 못하는 경제, 정치 이야기에 맞장구만 치는 사람이었어요. 평범하죠? 그런데 그렇게 평범하게 살던 제가, 좀 덜 평범한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일본에서 살게 된 이야기인데, 이 경험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시발점이 "찢어지게 가난한 자취 생활"입니다.

 

 21세기의 도시, 그것도 선진국에서 굶어 죽을 뻔했다. 간단히 정리하면 그런 이야기가 되네요. 


 하루에 쓸 수 있는 돈이 200엔 정도(대략 2천 원)였어서 빵 하나랑 우유 한 잔이 고작이었습니다. 얼마나 못 먹었으면, 살이 너무 빠져서 광대 밑으로 없던 그늘도 생기고, 앉았다 일어설 때마다 현기증이 나서 다시 주저앉곤 했습니다. 한 달 동안 5킬로 정도 빠졌던 걸로 기억해요. 젊음!이라 할 수 있는 고생이었습니다. 두 달 후부터 조금씩 아르바이트비가 들어오고, 편의점 폐기(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를 받으면서 식사는 어찌 해결(?)했지만, 학비를 모으느라 여유는 계속해서 없었습니다. 


그래도 살아지는구나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게 있어서 많이도 가난하고 분했던 시절을 지나고 생각한 것이 "그래도 나는 살아왔구나"입니다. 돈이 없으면 인생이 끝날 것 같았고, 수입이 적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밥을 못 살 만큼 가난해도 살아낼 수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돈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돈 때문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고 조금 더 삶을 주체적으로 계획해도 괜찮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이르기까지 공부도 경험도 했지만, 그 핵심이 된 경험입니다.)

 




 일본을 떠날 결심을 하고, 일본에서의 생활을 돌아보면서,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면 기억하지 못할 많은 일이 있었고, 나 자신 역시 많이 변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짧은 글에는 다 담을 수 없는 경험과 사건 사고, 그리고 사람들의 가치관, 생활 등 5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에도 사람은 알게 모르게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이야기에서 "일본"이라는 소재는 딱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누구의 삶이든 사건과 사고는 있기 마련이고, 결국은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합니다. 과거에 발생한 사건에 어떤 경험과 해석을 대입할 수 있는가. 그게 핵심이죠. 저에게 있어서는 그게 일본에서의 경험이었고 가장 인상 깊었던 고생이, 찢어지게도 가난했던 학창 시절인가 봅니다.  


 보통은 부정적인 제가 어쩌다 긍정적으로 과거를 해석해서, 지금은 사업을 하겠다고 결심까지 했네요. 자칫 잘못된 해석을 했다면, "다시는 그런 생활로 돌아가기 싫어"라고 느끼고 사업 같은 리스크는 피하려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도 없지만요. 그래도 처음으로 삶을 주도적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두근거림이 있습니다. 분명히 많은 실패를 하겠지만, 그 시간도 다 지나고 나서 좋게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의 지금은 어떤 해석으로 만들어가는 삶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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