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상황 이후로 교실 책상 마다 가림막이 설치되어 있다. 동재는 오늘도 수업 시간에 자신의 가림막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손가락으로 가림막의 모서리를 쓸어보고, 투명한 면을 훑어 내린다. 올해 나이 13살,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인 동재는 자폐아다. 신체 나이는 또래와 같지만 인지·사고·학습·의사소통 능력이 6살 수준이다. 당연히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힘들다. 난 동재를 2년 연속 담임으로 만나고 있다.
동재를 처음 만났을 때, 동재는 나에게 질문을 ‘자주’ 던졌다. ‘남자 선생님이세요?’, ‘수업 시간에는 조용히 해야 해요?’, ‘작은 목소리로 말해야 해요?’라는 고학년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만한 기본적인 내용을 하루에도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자폐 아이 특성 중 하나인 반향어 사용이었다. 그냥 생각나서, 알고 있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 자신의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 동재는 같은 내용을 계속해서 물어봤다.
동재는 낯선 것을 싫어한다.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굉장히 불안해하고 힘들어 한다. 언젠가 교실에서 놀이 활동을 하기 위하여 책상들을 벽 쪽으로 밀어 놓고 의자로 동그랗게 원을 만들어 앉게 되었다. 갑자기 동재가 일어서서 뒤로 가더니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좌우로 흔들며 비명을 내질렀다.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단 말이에요!” 급기야는 교실 안을 혼자서 뛰어다니다가 청소함 옆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훌쩍인다. 한참을 어르고 달래다가 결국에는 도움반 선생님이 오시고 나서야 진정이 되었다.(동재와 같은 학생들은 도움반에서 국어와 수학을 따로 공부한다.)
수업 중 동재의 태도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동재는 수시로 자신의 눈앞에 놓여 있는 가림막의 양쪽 끝을 붙잡고 소리 내며 흔들었다. 모두가 조용히 공부하고 있을 때, 혼자 즐거웠던 생각이라도 떠오를 때면 ‘히히히’ 거리며 웃었다. 내가 주의를 주면 ‘수업 시간에 친구들 공부할 때 웃으면 안 돼요?’ 라며 되물었다. 일반적인 수업 내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면 자리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흥얼거리며 교실을 서성이고 다른 친구들의 어깨를 손으로 건드렸다.
학생들은 이런 동재를 잘 이해해주고 챙겨 주었다. 지금은 수업 시간이니 조용히 해야 하고 무슨 교과서의 어느 쪽을 펼쳐야 하는지, 급식실에서 줄을 설 때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었다. 자기들끼리 놀고 있다가도 동재가 오면 ‘같이 놀자’고 자리를 내어 주었다. 동재는 이런 친구들에게도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물었다. ‘넌 누구 좋아해? 왜 좋아해? 더 크게 말해야지. 더 크게 말해봐!’ 자신을 살펴 봐주는 친구들이 좋았던 걸까. 그래서 친구가 누굴 좋아하는지 궁금했던 건 아닐까. 친구들 사이에서 마스크 위로 보이는 동재의 눈이 웃기 시작했다.
물론 동재를 불편해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 말라고 해도 다른 학생의 목을 끌어안아 매달리고, 서랍 속 책상의 필통을 마음대로 꺼내서 만지작거린다. 가림막을 잡아 흔들다가 가림막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를 연발한다. 학급 대화 시간에 동재의 이런 모습을 이야기하는 학생들에게는 한 번 더 당부할 수밖에 없다.
“불편한 마음 충분히 알아요. 동재는 여러분들과 어울리고 싶어 해요. 동재로서는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이 여러분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매달리고, 여러분들의 물건을 만지는 겁니다. 이러한 동재 때문에 불편하다면 동재에게 하지 말라고 정확하게 이야기 해주세요. 선생님도 계속해서 신경 쓰고 지도할게요. 다만 우리가 동재를 조금 만 더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다들 알겠지만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가는 곳이잖아요.”
난 동재와의 수업을 위해 그림과 단어 중심으로 구성된 별도의 교재를 챙긴다. 미술 시간에는 옆에 붙어서 단계별로 해야 할 작업을 알려 주고 시범을 보여준다. 체육 선생님이 축구 수업을 하실 때에는 한쪽에서 둘이 발로 공을 주고받는다. 나 역시 동재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똑같은 물음이 거슬릴 때가 있다. 전체 학생을 위한 수업과 한 명의 학생을 위한 수업을 동시에 신경 쓰다 보니 지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작년 이맘 때 읽었던 책들의 내용을 떠올리며 한 번 더 마음을 다잡는다. ‘통합 학급(비장애 학생과 장애 학생이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학급) 교사들과 특수 학급 교사들의 경험담, 발달 장애 학생들의 특성, 지도 방법과 사례, 자폐 학생의 부모들 이야기 …’ 이런 책들을 읽고 내용을 정리하면서 내가 교실에서 동재에게 해야 할 말과 행동, 준비해야 할 수업을 고민했다.
올해 우연히 다시 동재의 담임이 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웃으며 농담처럼 ‘너는 내 운명’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지난 1년 사이, 학교에서의 동재는 많이 성장했다. 반향어는 여전하지만 낯선 상황에서 더 이상은 불안해하며 울고 소리 지르지 않는다. 수업 시간 중 다른 학생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는 말과 행동이 줄었고, 가끔은 수업 주제와 관련된 발표를 하기도 한다. 얼마 전 사회 시간에 6월 민주 항쟁 수업을 할 때였다. 내가 준비한 사진을 화면에 띄우는 순간 동재가 손을 들고 이야기했다. “할 말 있어요. 저기는.... 시청이에요?” 몇몇 아이들이 놀랐고 나는 짧은 설명을 덧붙였다. “맞아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서울 시청의 모습을 담은 사진입니다. 시청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면이에요.” “저... 시청 가봤어요.”
주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자신의 성장과 어우러져 동재는 발전하는 중이다. 동재는 얼마나 더 커 나갈 수 있을까. 동재가 더 많이 자라면 좋겠다. 동재처럼 자폐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바람 중 하나는 자식보다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라고 한다. 동재 부모가 더 이상은 그런 바람을 가질 필요 없이 동재가 혼자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그리고 동재가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도록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 한 번 더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