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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공방 Apr 28. 2024

오긴 왔는데 좀 망한 것 같다.2

우당탕탕 스페인 체류기 - 말이 안 통해요

나 자신이 겸손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건만,


스페인 발렌시아에 와서


사실 몹시 오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 하는 사람이 한 사람은 있겠지.'


라고 무턱대고 했던 내 예상이


바르셀로나를 떠난지 하루 만에 박살이 났기 때문이었다.


대놓고 관광지였던 바르셀로나와는 다르게


중소도시 발렌시아는 주로 스페인어만 통했다.






파파고를 열어 치열하게 싸워야만 했던 집주인만 영어를 못했던 게 아니었다.


나는 학교에 가기 전 일주일이 남았었는데 

(좀 쉬다가 가자는 취지였다)


흔히 해외에 가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마트로 향했다.


한국에선 잘 가지도 않던 마트에서 빵에 발라 먹을 포션 버터를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았다.


그래서 또 파파고를 켜고 '버터'를 찾아보니 '만떼끼야'라는 단어가 나왔다.


정말 여러모로 버터와는 동떨어진 단어였다.


나는 마트 직원에게 [난 외국인이고 스페인어를 못합니다]라는 표정으로


'Where is 만떼끼야?'라고 물어봤고


마트직원은 딱봐도 말 못하는 외국인인 나를 굉장히 호의적으로 대하며


온지 얼마나 됐는지 물었고


나는 'Dos dias.'(2일이요)라고 짧게 대답했다.

(버터는 유제품 보관 냉장고에 있었다)


물론 모든 에피소드가 이렇게 귀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처음 갈 때 기간을 정하지 않고 갔기 때문에 장기 체류를 준비했는데


그러자면 비자발급, 은행업무, 핸드폰개통 등 할 일이 많았다.


학교나 핸드폰은 비교적 쉽게 해결됐지만,


은행의 경우(아직 해외 수수료 제로의 신용카드가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시내 한 중간에 있는 은행이니 한명이라도 영어를 하겠지,


라고 무턱대고 갔는데, 정말이지 한 명도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초반에 파파고를 읽으며 열심히 업무를 처리해 주려던 것과는 비교되게


몇 번 방문하자 피곤해 하는 것이 보였고


ATM사용법이 한국과는 달라서 물어보자


다른 사람까지 불러서 ATM이 너무 어렵다고 하네! 라며 불만을 늘어놓았다.


나중에 계좌를 없애러 갔을 때는 내 얼굴만 봐도 지겨워 하는 게 눈에 보였다.


바쁜데 일을 더해주는 나라는 존재가 달갑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분명 열심히 살아온 사회인이었는데


해외에 나가 말이 안 통하니 모지리, 짐덩어리 취급을 당한다는 게 


참 견디기 힘들었다.



어자피 공부도 안했으므로 기초반에서 스페인어를 시작하는 것은 예정된 결과였으므로 괜찮았다.



그러나 몇달을 시시때떄로 날 불러대며 들들 볶는, 


심지어 방에 마음대로 들어오는,


내 고양이에게 호의적이지도 않은,


집주인이 이삿날 보증금을 안돌려 주고 잠수를 탔을 땐 


내가 스페인어로 할 수 있는 욕이 없다는 게 너무 한스러웠다.


그래서 경찰서에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겨우


보증금은 돌려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경찰서에 가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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