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스페인 체류기 - 나 돌아갈래
감기바이러스로 몸이 혹사당하면 미각을 잃는 것 처럼
나는 그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도 힘들어서 그런지
좋다는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심히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이것은 좋은 환경이고 감사할 만한 경험이다.'라고
관념적으로 주입하고 그 순간을 기억하려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평소와 다름 없이 어학원을 다녀온 후 책상 앞에 앉아 생각을 하다가
'이제 여기서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해보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공책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더 적어보려 했으나
지금 있는 이 아름다운 도시도 마음을 울리지 못하는데
다른 것이 욕심이 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된 데는 체류기간동안 너무 많은 장애물이 있었던 게 원인 중 하나인 것 같았다.
집주인은 나를 불러다가
시계 베터리 안빠진다고 부르기,
밤 11시에 유선 전화 설치하기
(한국제품인데 왜 모르냐고 해서 '나 여기서 일 안 한다.'라고 했었다.)
본인이 잠근 문 안열린다고 부르기 등
같은 집에 사는 나에게 이것저것 시켰다.
(손주마냥 부려먹었으면서 돈은 정말 남같이 칼같이 1시간도 늦지 않게 받았다.)
그밖에도 고양이 걸어다니는데 바퀴벌레 있다고 약 뿌리기 등
몇몇 사건이 또 있고난 후, 결국 나는 이사를 감행했다.
물론 집주인이 이삿날 보증금도 안 주고 사라져 버려서
나는 이걸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집 열쇠를 그대로 들고 이사를 가 버렸다.
그리고 나서 치열한 문자 배틀이 있었지만
정작 나를 지치게 한 건 못받은 보증금이 아니라 잘못보낸 보증금이었다.
내 새로운 집주인은 마침 프랑스에서 온 유학생이었고
스페인의 국가번호는 33,
집주인은 프랑스 출신이므로 국가번호가 34였는데
난 그걸 40만원 가까운 보증금을 잘 못 보내고 알게 되었다.
(사실 집주인이 프랑스인인것도 앱을 통해 돈을 잘못보내고 돈이 안왔다고 얘기하다 알았다)
나는 가까운 경찰서에 가 영어를 할 수 있는 형사님이 있음에 감사하며
나를 차단해 버린 돈 잘못 받은 사람을 신고하는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담당 관할지가 달라 경찰서를 셋이나 왔다 갔다 하면서
또, 시 외곽지역에 있는 공장지대 같은 비자발급소에서 한참을 기다리며
(스페인어를 모르는 답답한 외국인이 짜증난다는 취급은 덤이었다.)
내 인내는 끝났던 것 같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한국 전화번호까지 남겨놓고 갔으나
나는 돈을 받지 못했다.
한국이면 지급정지신청이라던가 내가 아는 뭔가를 더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스페인 현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신고밖에 없었다.
그때 인내심과 함께 정리된 마음은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재빨리 학교에 수업 중지 신청을 하고
남은 수업기간 수강권은 일시정지 상태로 갖고 있기로 했다.
그리고 남은 기간동안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해리포터를 쓰는 데 영감을 줬다는 카페가 있는
옆나라 포르투갈에 가기로 했다.
마치 부유하는 사람마냥 힘없지만 바지런히 포르투갈 포르토를 돌아다닌 후
이제 고양이를 챙겨 집에 갈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확인해 보니 그냥 데리고 가면 되는 게 아니었다.
스페인 셰어하우스에 돌아온 그 날,
나는 다음 날 출국을 해야했으므로
집앞 동물 병원에 고양이를 예약도 없이 데려가서는
구충제를 투여하고 서류를 확인 받고
검역센터(아직도 거기가 뭐하는 덴지 정확히 모르겠다)를 향해
택시를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