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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Jan 03. 2022

또다시 먹구름이(01)
​브로커의 삶

내 남자 이야기(60)

구치소에서 돌아온 후 그야말로 백수신세로 전락했다. 할 일 없이 빈둥거릴 수 없어 일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시내를 방황했다. 텅 빈 호주머니를 만지작 거리며 뭐든 돈이 되는 일이라면 뛰어들 태세였던 나는 다행히 동네 반장 아저씨의 물건 납품을 도와주게 되었다. 빈털터리였던 내가 술 한 잔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쌈지 주머니를 찬 셈이었다.


반장 아저씨는 남대문 시장에서 지갑, 벨트 등 가죽 제품을 OEM으로 제작해 납품을 하고 있었는데 나름 인지도가 있는 제품이었다. 나는 아저씨의 공장 제품을 보험회사 판촉물이나 기업 선물 기획안을 제안하며 납품을 추진했다. 아저씨의 권유로 시작한 가죽제품 납품 영업은 나에게 있어서는 도전이었고 막다른 골목에서 마주한 생존이었다.




반장 아저씨는 자신의 친자식도 아닌 나를 위해 최전방까지 면회를 따라온 사람이었다. 아마 대한민국 군인 가운데 자대 배치 후 첫 면회에 동네 반장 아저씨가 최전방까지 따라온 경우는 나밖에 없을 것 같다. 아직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때르르릉~~~

"통신 보안 군단 비서실 000 중위입니다"

"통일! 군단 본부대 일직사관 김00 중사입니다! 방금 비서실 신병 김00 이병 가족 3명 면회가 접수되어 연락드렸습니다."


"수고 많다. 그런데 김이병 가족 중 누가 면회 오신 건가?"

"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좀... 이상하긴한테..."

"왜, 말 못 할 사정이라도 있는 건가?"

"아닙니다. 기록이 좀 이해가 안 가서 말입니다"

"누군데?"

"저, 글쎄. 관계가 반장 아저씨랍니다!"

"뭐...?"

전화를 받고 난 후 000 중위는 황당하다는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김이병, 자네 사회 있을 때 무슨 통장 같은 공무 일을 했었나?"


아무튼 나로서는 황당한 첫 면회의 경험이었다. 반장 아저씨는 나를 쫌 예의 바르고, 인물도 훤하고, 효자가 될 놈이라고 생각하며 나름 자랑스럽게 여기셨던 것 같다. 당신 아들은 면회 한 번 안 가셨던 분이 최전방까지 날아오신 걸 보면...




아저씨의 일을 돕기 전에는 그야말로 비참했다. 차마 돈 달라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아 몇 시간을 망설이다 겨우 2천 원을 받아 들고 약속 장소로 향할 때도 있었고, 강남에서 응암동에 있는 집까지 걸어서 들어온 적도 많았다. 한강 다리를 건너 꼬불꼬불 집으로 향하는 그 6~7시간의 시간들. 다리가 아프고 수치스러운 마음의 상처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아직 나에겐 젊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젊으니까 견딜 수 있었다.


모든 경제 활동은 물론 인간관계마저 사막처럼 황량하게 변해버린 나에겐 그 어떤 누구도 찾아오지 않았고 도움을 청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다 결국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던 윤 부장을 찾아가기로 했다. 질기고 긴 악연이었지만 달리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https://brunch.co.kr/@goldstar10041/53


윤 부장의 친한 동기가 **생명 상무이사로 있었기 때문인데 그는 당시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보험 박사로 그에게 부탁을 하기 위함이었다.

"형님, 저 죽는 거 말고는 이 방법밖에 살 길이 없어요. 도와주시면 영업, 납품 제가 다하고 마진 생기면 나눠 드릴게요. 지금 어려운 고비만 넘어가면 반드시 일어날 수 있어요!"


결국 윤 부장이 다리를 놓아 **빌딩 38층에 있는 상무이사를 만났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생명 지점과 설계사 명단을 건네받을 수 있었다. 당시 수천 개 지점과 수만 개의 보험 설계사 명단은 극비 중에 극비였다는 걸 감안한다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소득인 셈이었다.


이후로 나는 매일 **생명 지점을 찾아다니며 제품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물론 본사 상무이사의 명함을 팔고 다니기도 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제품 자체가 워낙 고가인 데다 기존에 이미 거래하던 업체들이 있었기 때문에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상무이사님이 미쿡에서 공부하고 박사 땄다더니 한국 물정을 잘 모르시는구만. 이런 젖비린내 물씬 풍기는 후배를 밀고 계시니 말이야. 그냥 우리 회사에서 거마비 드릴 테니 회사 경영이나 잘 하시라 그래.."

"김 사장도 잠시 줄 대고 빨대 꽂았나 본데, 그렇게 물건 넣어 봐야 별로 돈 안 될 텐데... 적당한 선에서 타협합시다! 지갑 벨트 제품은 우리 쪽 카탈로그에도 올린 거라 부딪히지 말고.."


수십 년 동안 단물 쓴 물 다 경험한 전문 판촉물 업체들과 경쟁이 될 리 만무했다. 그렇게 소위 빽 좋은 인사들로부터 듣는 비아냥 소리는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머리를 처박고 싶을 정도로 아프게 파고들었다.


보험 설계사들에게 직접 영업을 하며 죽을힘을 다해 다리에 힘이 풀리지 않도록 버텨내던 시절, 한 보험 설계사를 통해 앞으로 도움을 많이 받을 거라며 경찰 신문 기자를 소개받았다. 내 인생의 또 다른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만남. 그의 정체는 이내 곧 드러났다. 그는 부동산과 채권 브로커였다. 햇빛은 나를 비껴가기라도 하는 걸까. 따뜻한 햇살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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