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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Nov 21. 2019

윤 부장, 잘못된 만남

내 남자 이야기(33)

https://brunch.co.kr/@goldstar10041/52


권 사장의 고의 부도로 연매출 25억에 달하던 회사는 풍비박산이 났다. 도망갔던 권 사장의 구속 수감으로 일단락 지어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 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특히 직접 발로 뛰며 영업을 하고 발주를 넣고 모든 물량을 관리했던 나로서는 수많은 거래처에 대한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가게 되었다.


공장 관계자들은 어떻게 해서든 공장이 돌아가게 해 달라고 졸랐다.

"김 소장님. 직접 영업을 하셨기 때문에 물건 받는 거래처가 많잖아요. 이 기회에 독립해서 공장이라도 돌아가게 해 주세요. 직접 물건을 받으신다면 무리가 되더라도 물량을 조달할게요."


부도 이후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들고 무서웠다. 죄지은 것도 없이 경찰 조사에 불려 다니는 것도 모자라 소식을 접한 거래처들이 매일 전화를 해 대며 찾아왔다.

"김 사장! 너 부도 낼 거라는 거, 미리 알고 있었지!!"

"김 사장이 발주했으니까 김 사장이 갚아! "

"어차피 망해서 길거리에 나앉을 판이니까 차로 치여 죽여버리고 나도 깜방 가던가, 아니면 사람 시켜 죽여버릴 거야!"


한없이 경험이 부족한 28살의 나에게는 정말 매시간이 숨을 조이는 듯했다. 정말 지긋지긋했다. 사업이라고 시작한 이래로 한 번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이제 유통이라면 온갖 정나미가 떨어져 오줌도 싸기 싫을 정도였다.


나에게 선택권이란 두 가지였다. 독자적으로 다시 시작하던가, 화난 업자들의 손에 죽던가. 또 다른 선택권이 있었던가? 젊음이란 질기도록 살고자 하는 갈망을 부추겼다. 등 떠밀리다시피 다시 식자재 유통을 시작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고의부도를 낸 권 사장을 대신해 조금이라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책임감이 고개를 들었다.


전국에 퍼져 있는 거래처에 재주문을 요청하고 밤새 가공 공장을 돌렸다. 그리고 아침에 물건을 싣고 전국을 돌며 물품을 납품했다. 그렇게 6개월을 매일같이 전국을 누비고 돌아다녔다.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집에 들러 옷을 갈아 입고 대부분 고속도로 휴게소에 트럭을 세우고 쪽잠을 잤다. 그나마 여유가 있는 날에는 사우나를 이용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 젊음을 무기로 신뢰를 쌓고 영업 노하우를 쌓아가는 동안 통장에도 자연스레 잔금이 쌓여갔다. 몸은 말할 수 없이 피곤했지만 마음은 안도감과 함께 행복감이 스며들었다.

"그래. 역시 하니까 되는구나."



이제야 깨닫는 것이지만 사람은 누구를 만나는가에 따라 올바른 판단력이 형성되고 삶의 질이 결정된다. 그러나 내 인생 전반기에는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 윤 부장이 있었다. 아마 그와의 인연도 내 운명 속에 잦아 있는 업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의 마음속에 살짝살짝 고개를 쳐들고 있는 자만심을 부추겨 세우고 사탕발림 같은 혀에 속아 판단력을 잃어버리게 했던 만남. 그는 권 사장을 소개해 준 장본인이었다. 그는 다시 한번 악마의 속삭임으로 나의 자제력과 판단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김 사장. 넌 할 수 있어! 전에 권 사장이 노름한 것 말고 한 게 뭐 있냐. 자네가 다 이룬 거지. 그리고 김 사장 자네가 제일 큰 피해자야! 그러니까 이제 뺏기지 말고 직접 뛰어들어. 6개월 동안 네가 해 낸 일 좀 봐. 엄청나잖아. 나도 옆에서 팍팍 밀어줄게."

"부장님은 권 사장이 놀음꾼이라는 걸 알고 있었잖아요. 권 사장을 소개 한 사람도 부장님이고 법원 증인 출석도 부장님이 부탁해서 간 거고. 전 돈도 없고 열정도 없고 이제 사람도 지긋지긋해요! 그냥 내버려 두세요!"

"나만 믿어. 내가 다 도와줄게. 야! 내가 누구냐! 너 냉동차 없어서 지방 못 갈 때 내가 공장 차량 빼내서 너 도와준 사람이 바로 나야. 기억 안 나?"


초창기 혼자서 맨 땅에 헤딩하며 발버둥 칠 때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명함을 뒤적이다 몇 번의 안면을 핑계로 어렵사리 차량을 부탁했던 것을 윤 부장이 여러 번 도와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여기까지 왔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전국을 다니며 영업을 하는 내가 답답해 보였는지 아무런 상의 없이 창고 임대계약을 하고 계약서를 가지고 왔다.

"자네가 결정을 못하고 미적대고 있으니까 내가 보증금 넣고 자네 이름으로 계약서 작성했어. 일단 밀어붙여보자고. 보증금은 나중에 천천히 갚아. 잘 되면 나도 자네 회사 지분 가지고 노후 준비 좀 할 거야. 지금처럼 영업만 해서 뭐 남는 게 있나? 내가 운영하는 것처럼 열심히 도와줄게"


그의 끈질김과 집요함, 그리고 추진력. 거기다 나는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쌓여있던 범칙금을 내지 않아 운전면허 정지까지 통보를 받았다. 주문은 계속 밀려들어 오고 면허는 정지상태.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진퇴양난 격이었다. 모든 것이 억지스러운 조합이었다. 분명 횡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이끌림으로 나는 지긋지긋하기만 한 식자재 종합 유통 사업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그동안 악착같이 모아 놓은 통장 잔금 1억을 탈탈 털어 회사 모양을 만들어 갔다. 사무실 집기와 대형 냉동고, 냉동 차량, 소매 물류차량 등을 구입했다. 그리고 사람 볼 줄 모른다며 영업 부장과 소매 담당 등 몇 명을 윤 부장의 사람으로 소개했다.



나는 그 후로 윤 부장의 악연으로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다. 색다른 경험. 지리산 댕기 동자,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역술인, 여의도 김영삼 전 대통령 조상 묏자리를 봐주었던 풍수지리관, 명동 롯데 백화점 12층 정자 지리산 역술가 등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도 다 윤 부장 작품이었다.


회사 이름도 함부로 짓는 게 아니라며 찾아간 12층 역술가는 회사 이름을 작명해 주고 50만 원을 챙겼다. 당시 복채 비가 3만 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비싼 이름값이었다.

"현금입니다. 세어 보세요"

"맞겠죠... 세종대왕님 용안은 항상 앞으로 해야 후손 된 도리입니다."

결국 한 장 한 장 넘겨 센다.


회사 이름은 (주)대원유통 이었다. 그리고 내 이름은 젊을 때는 좋지 않다며 '민*'이라는 이름으로 바꿔 부르라고 했다. 하여간 이런 특별한 경험으로 나는 본명 대신 15년간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내가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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