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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그라미 Nov 22. 2019

에피소드, 담배는 피워봤나?

내 남자 이야기(34)

https://brunch.co.kr/@goldstar10041/53

윤 부장을 만난 것은 30여 년 전이다. 육가공 제조업체로 잘 알려진 (주)태**산의 영업부장이었던 그와의 만남은 신출내기 장사꾼이었던 나에게는 꼭 뚫어야 하는 유통 경로였다. 겁이 없었던 나는 다짜고짜 처음 만나는 자리에서 질문을 퍼부었다. 물건을 얼마에 줄 수 있는지, 물량은 얼마나 가능한지. 갑과 을이 뒤바뀐 우스운 상황에서 그는 침착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참 어설픈 만남이었다.


그는 몰아붙이는 나를 한 숨 돌리기라도 하듯 담배를 권했다.

"담배 한 대 태웁시다. 그리고 천천히 이야기해요. 생각보다 젊구만."

"네. 괜찮습니다. 방금 막 피우고 왔어요."


나는 담배를 배우지 않았다. 피우려 노력은 해 봤지만 혓바닥을 자극하고 목구멍을 따갑게 하는 연기에 질려 입에도 대지 않는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라니. 당시에는 사업과 영업을 위해서는 술, 담배는 기본으로 할 줄 알아야 하던 때였다. 기선을 잡는 것 중의 하나로 치부되었던 시대. 어떻게든 담배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사업하는 사람이 방금 피웠다고 안 피우나? 내가 흰머리도 나고 겉늙어서 어려운가 본데 괜찮으니 한대 피우세요. 편하게 의논합시다."



그렇게 30여분 동안 서로의 입장을 조율하며 결론을 내릴 때 즘, 윤 부장은 다시 담배를 권했다. 이번에는 막무가내로 손가락에 담배를 끼워주며 불까지 붙여줄 태세였다. 나는 이미 그가 피워댄 매캐한 담배 연기를 한 껏 들이마신 터라 가슴이 답답하고 눈이 따끔거리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늦가을 추위에 창문이 꼭꼭 닫힌 사무실은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윤 부장은 아는지 모르는지 어정쩡하게 받아 든 담배에 라이터를 들이대며 불을 붙여주는 친절함까지 보였다. 담배를 피워 본 적 없는 나는 윤 부장이 들고 있는 라이터 불 끝에 담배 끝부분을 제대로 초점을 맞추지 못해 담배 옆부분을 태우고 있었다. 게다가 어떻게 빨아들이는지 몰라 담배라는 놈은 전혀 불이 붙지 않았다.


본 것은 있어서 라이터를 받아 담배에 간신히 불을 붙였지만 담배 필터를 타고 입으로 들어온 연기로 인해 목은 타들어 갈 듯한 따가움과 역겨운 냄새로 생연기만 입 밖으로 내뱉었다.


"푸하하하!"

그는 내 모습이 웃긴지 한참을 웃었다.

"아깝게 생담배 피우지 말고 그냥 목구멍으로 연기를 넘겨요."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려 담배 연기를 입 안으로 끌어당겼다.

"일단 김 사장, 사람도 괜찮아 보이고 열정도 있어 보이니까 샘플로 몇 박스 줄게요. 거래처 돌려 보고 초기 물량 결정되면 다시 연락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입안의 연기를 내뱉으며 급하게 인사했다.

"네~? 감사합니다.과장..님... 켁켁켁... 콜록콜록 으웩!"

목구멍으로 잠시 넘어갔다 올라온 연기로 눈물과 함께 기침이 쏟아지며 헛구역질도 해댔다.

"김 사장! 담배 못 피우는구만. 하하하 그럼 못 피운다고 말하지 그랬어요. "

"아니...요... 제가 끊었다가 다시 피....웩~ 콜록콜록..."



담배 하나로 객기를 세우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런 젊음이 좋아 보였는지 윤 부장은 이후로 지속적으로 연락을 이어가며 만남을 이어갔다. 12살 위였던 윤 부장은 명문고 출신으로 잘 나가는 동기들이 주변에 많았다. (주)태**산 대표도 고교 동창이었고 모 그룹 손자를 비롯해 잘 나간다는 사람들이 죄다 그의 친구이자 동기 같았다. 이제 막 풋내기 장사꾼으로 유통업게에 뛰어든 나에게는 거대한 기둥처럼 보였다. 그리고 윤 부장은 젊음과 열정으로 똘똘 뭉친 나를 인생의 굵은 동아줄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윤 부장과의 만남은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할 잘못된 만남이었다. 그러나 어쩌랴. 그것이 운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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